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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쌈하며놀기

빠르고 앞서가고 쿵쾅대고

 

 

 

 

"살 좀 더 쪄도 될것 같은데 엘슨상."
복도를 지나치려니 친한 여동료교사가 짖굳은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아니, 지금 남 말 하시남요?"
눈 찡긋하며 나도 웃으며 맞장구를 친다.


다리에 살집이 적은 편이라 오늘같은 바지차림 날엔 그게 눈에 띄는지
주위로 부터 그런 말 듣는게 처음 아니긴 하다.


중간 휴식 벨이 울리고 교실을 빠져나와  다시 복도를 걷고 있으려니
아까 전의 그 동료 목소리가 그의 반쯤 열려진 교실문 사이에서 나를 향해 흘러나온다.


"와우, 지금보니 엘셈 걸음이 엄청 빠르네?!" 
"예, 저 걸음 무척 빨라요, 남편도 잘 못 따라와요 하하.  오랜 습관이라서리."
"엘셈 몸집 날렵한 이유가 있었네 있었어. 하하"

 

 

 


 

 

사실 내 걸음속도는 무척 빠르다.
오랜 습관인 탓도 있고, 뭐든 생각나면 가능한 빠른 속도로 바로 후다닥 해치우고 마는 성격이다보니
세월아 네월아 하며 터벅터벅 걷는 여타사람들을 보면 보는 내 속이 터질때가 많다.
저러다 해야 할 일 다 까묵는거 아녀?


제때에 빨리빨리 과제물 제출을 안한다거나 말과 행동이 굼뜬 학생들이
제일 맘에 안드는 이유도 바로 같은 맥락일지 모르겠다.


걸음속도만 빠르면 그래도 다행이다.
또 뭐냐면 내 걸음걸이가 천방지축 가관이라는 거다.
요부분은, 결혼전엔 울 친정어무이한테서, 결혼후엔 남편으로부터 들어오는 난픽션이자 팩트인 거신디,
빨리 걷다보니 자세고 뭐고가 나올 겨를이 없다.
양팔은 병정들의 행진처럼 앞뒤로 핫둘핫둘, 다리는 넉넉히 벌린 보폭으로 씩씩하게 쿵쾅쿵쾅.
예컨대, 물 가득 담긴 컵을 내 머리위에 올린채 걸어보라고 하면
십중팔구는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완전 물바가지쓴 형상에 빈 물컵을 머리에 달고 있을게 분명하다.


"자세 또 나온다 나와~"
넘 심하다 싶을땐 내게 리마인더를 쏴달라던 내 간곡한 부탁에 협조의 노력을 보여주는 남편.

 

 

 

 


아무튼 내 이 고질적 빠른 걸음속도로 인해 부부싸움을 한 적마저 있었으니,
나란히 샤핑카트를 밀며 걷다 무엇에 홀린듯 어느새 저혼자 저만치
종종걸음으로  바삐 걷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놀라서  뒤돌아 보면
저멀리 남편이 카트를 옆에 끼고 이리저리 날 찾아 헤매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어떨땐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버려 마킷안에서 서로의 셀펀으로 미씽퍼슨 추적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거다.


파킹한 차에서 내리며 그날따라 그의 엄숙한 사전경고가 주어진다.
"오늘은 절대 나와 카트를 버려두고 혼자 마구 앞질러 걷기 없기다 알았지?"


에공... 그런데 예의 그 버릇이 어디로 가겠는가.
순간순간 힘겹게 속도조절을 제법 잘한다 싶었는데, 끝내 또 사고를 친 것이다.
남편은 뒤에 버려두고 혼자 열심히 카트를 바삐 밀며 무엇에 쫒기듯 앞으로 전진 또 전진.

 

헉, 클났다!

황급히 놀라 뒤돌아보니 저 멀리 멈춰선 성난 황소모양의 짝지 모습이 보인다.


"굼 자기도 내 속도에 맞춰 빨리 따라오면 될거 아녀!"
"즐겁자고 하는 샤핑을 왜 도망자처럼 그리 급히 해야 하냐구!" 


그리하여 그날은 둘 다 씩씩거리며 빈 손으로 돌아왔다는 거다.


물론 지금도 세번 중 한번쯤으로 그 버릇이 완전히 고쳐지진 않았다.
속도가 점점 빨라질라치면 바로 뒤에서 경고음이 그에게서 들려오고,
난 씨익웃으며 뒤걸음질쳐 폴짝 그의 팔에 팔짱을 낀다.
요런건 좀 봐주야지이~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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