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케이와의 추억

삼세판

 

 

 

 

 


어제저녁에도 케이와 한바탕 주거니 받거니가 있었지요.
언젠가 그 지지배의 지저분시런 버릇을 고치느라 하마터면 제 눈이 밤탱눈 될뻔한
사연을 올린 적도 있지만 ("케이와의 전쟁"),
그 후로도 여전히 일단 먹다 제 손을 떠난 음식 찌꺼기는 마치 지뢰인 양 거들떠보지도 않던
백설공주급 위생관념은 어디로 사라지고,
이젠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이 먹거리만 보면 사정없이 달려드는 겁니다.


어젯밤 우리의 삼세판 사연은 이렇습니다.
하루 세끼에 간식을 다 챙겨 먹고 나서도 호시탐탐 먹거리를 물색하는 케이,
횃대 위에 앉아 아래를 쭈욱 훑어보다
놀이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자신이 먹다 버린 음식찌꺼기가 눈에 포착됩니다.


바닥 한번 쳐다보고 나 한번 쳐다보며
슬그머니 한발 한발 바닥을 향해 내려가는 예의 그 비밀스러운 행동,
그러다 불호령 떨어질 듯 호랑이처럼 부릅뜬 제 두 눈과 마주치지요.
흐미, 들켰네...
하듯 룰루랄라 고개를 먼 산으로 돌려 딴청을 하며 다시 횃대위로 올라갑니다.


오 분쯤 흘렀을까...
티비를 보느라 제가 잠시 한눈판 틈을 타
이 녀석이 다시 슬금슬금 바닥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하는 게 곁눈으로 포착됩니다.
'아놔, 내가 너를 몰라?!'


중간쯤 내려왔을 때 '딱 걸렸쓰!' 하며 제가 Hey! 소리를 빽 지릅니다.
옆에 있던 남편이 깜짝 놀라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
에효, 제 목청이 컸긴 컸나 봅니다.


고함에 화들짝 놀란 녀석, 꽁무니에 불이라도 붙은 양 후다닥 횃대로 복귀합니다.
그리곤 계속 째려보는 제 이블아이가 못내 무서웠는지
눈치를 살살 보다 엉덩이를 쳐들고 고개를 뱅뱅 돌리며 애교를 피우기 시작합니다.
티끄르르 티끄르르~~

 

 

 



'이 정도 고함이면 이제 저도 알아들었겠지.'
나름 회심 미소를 지으며 주방을 향해 잠시 자리를 떴습니다.


그런데.... 십분 쯤 후 거실로 돌아와 보니
오 마이 마이, 그새 케이가 무언가를 손에 쥐고 아주 맛나게 얌얌 먹고 있는 게 아닙니까.
아까 자신이 먹다 바닥에 내동댕이쳐 제 응가 위에 구르던 베이글 조각이었던 겁니다.
내가 잠시 뒤를 보인 사이 기회는 이때다 하며 냉큼 바닥으로 내려가 얼른 집어 온 거지요.


"아니, 너!"
나 없는 사이 일을 끝내려다 현행범으로 들킨 케이,
성난 내 얼굴과 마주치자마자 손에 든 남은 빵부스러기를 바닥으로 부리나케 떨어뜨립니다.
그리곤 입을 쩌억 벌리며 고개를 끄덕끄덕, 꺼억 소리를 냅니다,
마치 한 번만 봐 줍쇼~ 하듯, 쥔장 벼락 내리기 전에 치는 녀석의 선수인 셈입니다.


이런 케이의 식탐은 그 대상이 자신의 먹다 버린 음식만이 아닙니다,
식사 때가 되어 남편과 식탁 준비를 할라치면
마치 자신에게 맴버로서 함께 식사할 권리가 애초부터 있던 듯
당당히 횃대에서 내려와 테이블 사방을 배 내밀고 어슬렁거립니다.
그러다 음식이 올려지면 이것 저것 맛본 후
맘에 드는 아이템 하나 골라 의기양양하게 덥석 물고 가는데요,
암튼 다릿심은 강호동이라서
어떨 때는 제 몸집보다 두 배도 더 넘는, 예컨대 닭 넓적다리 같은 그런 음식들도

질질 끌고 횃대로 용케도 올라갑니다.
 

사실 요즘 들어 이런 식으로 제 허가 찔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어떤 날은 연거푸 너.댓번을 계속 엎치락뒤치락 하기도 한다니까요,
훔치려다 들키고 – 다시 시도하다 또 들키고 – 또 시도하고... 또 들키고...


"나 이 말만은 안 하고 싶었는데, 너 bird brain 이야 증말!"


암래두 그냥 넘어가선 안 되겠다 싶어 벌칙 차원에서 녀석을 제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비어있는 작은 침실에 혼자 동그마니 놓여있는 케이의 단독주택,
취침시간인 밤이 아니면 홀로 떨어진 제집에 갇혀있기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녀석이지만,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처절한 대가임을 잘 알 만큼 아이큐는 또 있는지라
이런 날은 한 시간이든 열 시간이든
감금 해제까지 구시렁 없이 제집에서 쥐죽은 듯 자숙합니다. 흐흐.

   
그런데....
왠지 제가 이긴 것 같은 기분이 안 드니 어떻게 된 걸까요.

 

**

 


케이의 끝도 없는 잡식성 먹성을 증명하는 증거 사진들을 일부 공개합니다~

 

 

나를 닮은 예쁜 체리~

 

 

쌔먼 (연어) 뼈다귀 속을 빼먹는 재미가 솔솔한 케이양

 

 

파스타도 메인 메뉴중 하나구요,

 

 

오린지는 언제 먹어도 맛나요~

 

 

쵸컬릿을 마다하는 앵무가 있을소냐!

 

 

 

 

쌀과자 야미 야미~

 

 

말랑말랑 닭다리 무릎뼈는 케이가 좋아하는 넘버 원 메뉴

 

 

닭고기 비빔밥

 

 

 

 

요즘같은 계절엔 시원한 수박이 최고~

 

 

예쁜 짓 할태만 포상으로 먹는, 온갖 씨드들이 뭉쳐진 앵무새 전용 특별간식예요~

 

 

피부를 생각해 야채도 가끔 먹어주야지~

 

 

꺼억~ 물, 물 좀 갖다 주세여~

 

 

알맞게 잘 익은 달콤한 켄털롭야요~

 

 

간식 포테이토칲

 

 

 

 

에그 샌위치

 

 

연어

 

 

Tofu (두부)

 

 

 

 

 

 

블루베리

 

 

 

 

와일드베리잼이 발라진 토스트

 

 

헤이즐넛과 쵸컬릿 크림이 발라진 토스트

 

 

베이비케럿

 

 

 

 

역시 영양가로는 닭다리가 최고~

 

 

 

 

 

자, 이제 배도 부르고... 오는 건 졸음 뿐...

 


물론 위 사진들은 케이의 식사메뉴 중 극히 일부에 해당할 뿐,
저희 부부가 먹는 음식은 빠짐없이 다 먹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케이 지지배가 얼마나 많은, 별별 것을  먹어 치우는지 이젠 대충 짐작 가시지요?^^

 

 

 - 엘리 -

 

'케이와의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Peekaboo~  (0) 2015.09.05
케이는 출산 중  (1) 2015.03.19
케이의 억하심정  (0) 2014.05.31
어떤 크리스마스 선물  (0) 2013.12.27
K의 요즘 하루  (0) 2013.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