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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쌈하며놀기

김밥이 어쨌다구

 

 

 

 

"에잇, 글지 말구 한 개만 먹어봐, 자, 아~ 해~"
"글쎄 싫다니까아아- !"
남편의 거의 비명에 가까운 고함이다.


이것이 무슨 시츄에이션인고 하니,
남편이 약 10개월쯤인 올 연초에 금연을 선언했더랬다.
"나 담배 정말 끊을라구 해."
"잘됐네...(시큰둥)"


"담배 끊는다니까는!"
"응, 잘해보라구."
"우씨, 와이프가 돼갖구 무슨 반응이 그래?!"


일전에 올린 "담배 끊어주기 전쟁"에서도 말했듯 남편의 금연 선언이 어디 한 두 번이래야 말이다.
아니, 그깟 담배 하나를 대체 왜들 글케 못 끊는지,
학생 때 친구들과 집 화장실에서 한 모금 몰래 콜록콜록 피우다 콜콜 잠든
마리화나가 전부인 나로선 정말 이해가 안 가는 거다.


그랬는데...
그러던 남편이 정말 담배를 Cold Turkey로 따악! 끊어버린 것이다.


처음 얼마간은
"나 아직도 담배 한 개도 손 안댔어, 잘했지?"
하며 노트에 별 한 개 받아온 유치원 꼬마처럼 있는 생색 없는 생색 다 내는 모습에
나 역시 유치한 마미가 되어
"울 남편, 차암 잘 했어욤~" 을 해주기도 했었다.


그런 그의 금연은 내 예상을 뒤엎고
한 달이 넘어가고 두 달, 석 달, 반 년이 지나 일 년이 다 돼 가고 있었다.
그가 정말 go cold turkey 를 한 것이다.


Cold Turkey 란  담배나 약물, 알콜 같은 습관성 대상을 끊는 방법에 있어
점차적으로 혹은 의학보조제 도움을 받아가며 줄여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 자르듯 어느 날 갑자기 뚝 중단해 버리는 행위를 말하는데,
속전속결의 장점이 있는 반면, 금단 증세 같은 고통을 동반하기도 한다 한다.
 

담배 한 갑이 며칠분이던 남편의 흡연량이었기에 견디기 극심한 금단증상까지야 아니겠지만,
그래도 무의식 속에 쉼 없이 찾아오는 악마의 속삭임, '딱 한 개비만..' 을 물리치기란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감사

 

금연이 시작되면서 그의 식욕과 달콤한 군것질에 대한 대체욕구가 솟아났다.
그래도 금연이 우선이지, 하며 그는 리스트 맨 아래로 다이어트를 미뤄놓았는데,
 이제 일 년이 다 돼가는 이쯤이니 금연도 일단은 성공인 셈 아닌가.


그간 금연 댓가로 얻은 보너스 체중을 제거할 시기가 왔음을 남편이 선언한다.
본래 식성이 좋은 사람인지라 음식 욕구를 자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
다이어트를 좀 도와달라고 아내인 내게 특별 부탁까지 한다.
왜 아니겠는가, 배부르단 사람에게 '딱 한 입만 더'를 권하는 아내가 아니던가.
 

그랬는데...그날 김밥 사건을 사고뭉치 아내가 기어이 일으키고 만 거다.
오랜만에 간 한국마켓에서 환상의 김밥 두 줄을 사가지고서는
조수석에 앉아 야금야금 집어 먹기 시작하는데.
음식 젬병 아내가 못 해줘서 그렇지, 신혼 때 울 친정어무이가 가끔 해주시던
힌국식 김밥을 얼마나 좋아하는 그이던가.


혼자 쩝쩝거리고 있기도 미안하고 해서
"하나 먹어볼래?"
"됐어."


"무지 맛나. 딱 하나만 먹어봐~"
"됐다구."


"그래도 한 개만 응? 자, 아 해~"
"글쎄 싫다니까아아-악!"


귀청이 반쯤 떨어졌다 다시 붙었을 쯤에서야 번쩍 제정신이 들었나,
눈물까지 찔끔 나온 눈으로 씹던 김밥을 대충 꿀꺽 삼킨 후
남은걸 주점주점 샤핑백에 도로 집어넣고는 서운함과 민망함에 고개를 푹 떨궜다.


집에 도착하자 풀이 있는 대로 죽어 있는 내게 남편이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식욕을 애써 참는 중인데 밥도둑을 글케 권하면 어떡하니.
당신이 내 다이어트를 도와줘야쟎아, 안 그래...?"
(김밥을 고열량 '밥도둑'이라 한다더란 말을 남편은 기억하고 있었다.)


맞다, 제발 음식을 권하지 말아 달라고, 그게 도와주는 거라고
남편이 몇 번이나 내게 부탁을 했던가.
한번 그러마고 했으면 두 번 묻지 말라며 정색을 했던 게 오히려 나였던 걸.

이렇게 한번씩 레슨을 치루고서야 그 다짐을 상기하다니... 


이제 더는 '내 요리가 맛 없나 보구나 흙.' 하는 한물간 레퍼투아로 접시 비우게 하지 말고
고열량 맛난 것을 몰래 숨어 혼자 먹다 체하더라도
남편이 더 날렵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다면
새해엔 더욱 매몰찬 아내가 되어도 좋지 않겠나.

 

홧팅2

 

멋진 크리스마스 라이트 장식으로 불 밝혀진 이웃 한바퀴~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중인 친구 커플,

아내에게 먼저 남편이 ~

 

 

이번엔 아내가 남편에게~

저 큰 선물보따리 속에 든 것은 ----> Dyson Ball 진공청소기였습니다.

평소 청소 담당인 남편이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브랜드라는.^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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