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랑교육이랑

한국대학의 지나친 서류의심

 

 

 

매년 이곳 캐나다 12학년(고3) 학생들의 대학 입학 신청 기간이면
필요한 자료 지원에 교사와 카운슬러들이 모두 분주하다.
나라마다 대학마다 요구서류들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거의 모든 게 온라인을 거치는 요즘이다 보니
입학 신청에서부터 결과까지 많은 절차가 온라인과 이메일을 통해 비교적 신속히 이뤄진다.


그런데 이런 대세에도 불구하고 많은 paperwork(서류작업)를 포기하지 않는 곳이 있다.
바로 많은 한국의 대학들이다.
시간이 몇 배로 소비되는 종이문서도 종이문서지만,
해외지원자들의 서류 진위에 대한 의심도 도가 지나치다.
해당 문서가 누구의 손으로 어떻게 작성된 것과 관계없이
사소한 서류 하나하나에도 학교장 직인을 찍어 진품 확인을 해 주어야 한다.


지원자 이름만 해도 그렇다.
충분히 구분 가능한 여러 차별화 된 자료에도 불구하고
단지 영어 닉네임이 하나 더 추가돼 있거나, 대.소문자가 구분돼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이름 확인서를 별도로 작성하여 역시 학교장 직인을 찍어주어야 한다.
확인서에 한글로 적힌 한글이름까지 넣어 달라고 할 경우엔 더없이 황당하다.
"내가 한국인 아니었으면 어떡할 뻔했니?"


재학과 졸업 여부는 또 어떤가.
Transcript (성적증명서) 같은 몇 가지 공식서류만 보면 한눈에 파악될 것을
한국 대학에서는 예외 없이 '재학증명'과 '졸업예정증명' 형태의 서류를 별도로 각각 요구한다.
그런 추가 서류들을 요구하는 대학은 한국 말고는 아직 한 번도 접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이곳 스탭들 사이에서
'한국대학 지원자 한 명이 요구하는 서류 작업량이 다른 나라 대학 지원자 100여 명분 보다도 더 많다'란

말이 나올 정도일까.


"왜 그 많은 서류를 굳이 페이퍼로 제출하라는 거지?" 
하도 이상스러워 언젠가 한국대학 지원 학생에게 물으니
"위조와 해킹 우려 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한다.

 

 


돌다리 짚고 넘어가기 식을 뭐라는 건 아니다.
열이 못 막는다는 도둑 하나처럼, 속이려 든다면 어떤 방법을 써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학생은 학교를 믿고, 학교는 교사와 학생을 믿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기본이 무너져서는 안된다.
학교가 지원자를 못 믿고, 담당 교사나 학교 행정부도 못 믿고,
그저 믿는 것이라곤 도장 찍힌 수많은 서류뿐이라면
그건 상식적 사고와 믿음 선에서 온라인으로 신속히 서류전형을 하는
여타 많은 해외 대학들의 판단과 교육 철학마저 우습게 보는 격이다.


컴퓨터에서 컴퓨터로, 온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연결돼
관계자 클릭 몇 번이면 서류 진위 증명과 함께 필요 자료 순간 이동이 서로 이뤄지는
이런 신속한 추세에 한국대학들이 합류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무얼까.
학교 관계자가 아닌 학생들만을 상대로 하려다 보니 그런가,
아니면 구체적 통신망이 미흡해서인가 생각해 보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아이티 선진국 한국 아니던가.


아이티 선진화 말이 나왔으니 말이다,
교사 추천이 필요하다며 종이양식을 건네주길래
컴퓨터로 입력 가능한 fillable electronic form (전자양식)은 없는지를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나 자신이 직접 각 대학 웹사이트로 들어가 해당 폼 찾기를 시도했다.


그런데 이거 도대체가 못 찾겠는 거다.
해외지원자를 위한 영문버전 사이트에 해당 양식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잡듯 온종일 웹사이트만 누비고 있을 여유는 없다.
결국 몇대학은 양식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서야 했고,
적잖은 시간 소비 끝에 다행히 해당 양식을 찾은 대학도 있긴 했으나
해외지원자를 위한 영문양식이 '한글버전 사이트'에 '한글명'으로 링크돼 있었다.
내가 외국인이었다면 눈뜬장님이 됐을 일이다.
운 좋게 찾아냈다 해도 게중엔 fillable이 안되는 빛 좋은 개살구였거나,
일부만 입력 가능한 엉성하기 짝이 없는 양식도 있었다.

 

 

 

 



물론, 이곳 일부 학생들을 통한 경험이기에
이런 문서 찾기 어려움이라든가 온라인 양식의 엉성함, 지나친 페이퍼웤 같은 문제점들이
일부 대학과 일부 전형에 한정된 것일 수는 있다.
하지만, 소위 내로라하는 탑 10 명문대들이 바로
지금까지 나열한 경험의 주 대상이었단 걸 고려해 볼 때
기타 대학이라 해서 특별히 다르리란 믿음은 솔직히 생기지 않는다.
내 추측이 틀렸다면 참으로 다행이고, 또 틀렸길 바랄 뿐이다.


사실 제일 못 믿을게 그야말로 '종이짝'이다.
학교장이 아니라 대통령 직인이라도
관계부서 간의 직접적이고 긴밀한 커뮤니케이션 보다 더 믿을만 할 순 없을 것이다.

 

 

 

- 엘리 -

'문화랑교육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 후 성씨(姓) 를 바꿀 것인가  (0) 2015.05.03
특혜  (0) 2015.04.07
국적 바꾸는 아이들  (0) 2014.12.20
리틀 테디  (0) 2014.07.31
오리사랑이 빚은 비극  (0) 2014.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