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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랑교육이랑

결혼 후 성씨(姓) 를 바꿀 것인가

 

 

 

 

학생 이름 하나가 어느 날 문득 명단에서 보이질 않는다.
수업엔 여전히 얼굴이 보이는데 어째 이름만 사라졌을까.


알고 보니 Johnson이었던 그 아이 성씨가 Bailey로 달라져 있었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아이의 성씨도 바뀐 것이다.
I am so sorry to hear that.
이혼이란 게 더는 낯선 시대가 아니라 하나 사춘기 아이들에겐 여전히 버거운 일 아니겠나.
아픔 들춰낸 것 같아 내심 미안한 마음이 살금 든다.


결혼해도 자신 고유의 성씨를 유지하는 한국과는 달리
이곳 캐나다를 포함,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같은 대개의 영어권 국가에서는
원할 경우 결혼과 동시에 자신의 성씨(last name/surname/family name)를
배우자의 것과 연계시킬 수 있는 몇 가지 선택사항을 주고 있다.


성씨를 아예 남편 것으로 바꾼다든가,
하이픈(-)을 사용해(혹은 않거나) 부부 성씨를 둘 다 넣기도 하고,
maiden name/birth name(여성의 결혼 전 성씨)을 중간에 넣어 미들네임으로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자신 고유의 성씨를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이민 세대들도 예외는 아니라서,
예컨대 Wong-Jiang(중국계) 라던가 Kim-Shin(한국계) 같은 성을 접하기도 한다.
좀 낯설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한편 의아도 하다.


성 바뀐 이름을 그저 사교 목적으로만 케쥬얼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이름 변경이라는 복잡한 절차를 감수해야 한다.
여권이나 사회보장번호 등의 연방정부 관련한 모든 법적 자료는 물론이고,
의료보험증, 운전면허증, 은행서류 등도 손을 봐야 하는 것이다.
절차의 번거로움도 번거로움이지만 소요기일이 보통 일 년 가까이나 되고 보니,
미리 알았더라면 굳이 바꾸진 않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이런 여러 복잡한 이유로 정부에서도 가능하면 이름 변경을 권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곳 캐나다를 보자면,
성씨를 바꾸는 신부가 80-85%나 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결혼시 남편 성을 따르거나 연계시키는 것이 일반적 관례로 행해지고 있다.
하지만 결혼시 성씨 변경은  전혀 법적 요구사항이 아니다.
바꾸는 사람 입장에선 '배우자와의 동질감 내지는 가족애를 느끼기 위해서'가 가장 큰 이유라는데,
90%를 넘어섰던 수십 년 전보다 요즘 그 수치가 점점 낮아지는 걸 보면
“대학학력을 가진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자기 본래의 성씨를 고수하는 수치가
2배에서 4배까지 높다”는 하버드 조사결과와 전혀 무관하지만은 않은 듯하다.


성씨를 바꾸는 일은 비단 자신 고유의 정체성을 지키느냐,
아니면 남편과의 동질성을 따르느냐 만의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전과 후가 개인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심각히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지에 실린 어느 호주 대학 부교수 여성의 경험담을 한역으로 요약해 소개해 본다. ->원문 클릭 

 

 

 

내가 결혼을 한 것은 박사학위가 끝나기로 된 일 년 반 전인 2006년 12월이었다.
당시엔 결혼 전 성씨인 Geurin 으로 된 학술발표가 두 개 밖에 되지 않았고, 출판물은 없었다. 
앞으로 어떤 이름을 사용할지를 정하라든가 했던 조언도 있었고,
그를 통해 몇몇 선택 여지가 있음도 알았다.
결혼 전 성씨인 Geurin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곧 남편이 될 사람의 Eagleman으로 바꿀 것인가,
그도 아니면 가운에 하이픈(-) 을 넣어 그 둘을 다 사용할 것인가.
무얼 선택하든 이후로의 내 학문적 커리어 상의 내 정체성이 될 것이었다.


결정을 내리는 데는 주저가 없었다.
철자를 틀리거나 잘못 발음하는 사람들 때문에 26년간 날 짜증 나게 했던 성씨,
그걸 쓰레기통에 집어 던지고, 발음하기도 쉽고 쓰기도 쉬운 새 성씨로 바꾸니 진짜 기뻤다.


28개의 학술 기사와 11개의 챕터, 42번의 국내외 발표회, 국제기조연설 등을 해낸
그 8년 끝에 난 이혼을 하게 된다.
남편과 내가 처음 그런 결단을 내렸을 당시엔
그의 성씨를 끝까지 유지하리란 부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성씨를 바꾸는 건 내 커리어 상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간 나는 내 모든 커리어를 남편의 Eagleman 성씨로 쌓아올려 왔고,
그건 스포츠 경영 분야에서 사람들이 나를 알고 있는 내 유일한 이름이다.
결혼 전 Geurin으로 성씨를 되돌린다면 그게 나란 걸 사람들이 어찌 알 것이며,
구글 학술검색 같은 서비스를 통한 내 학술 인용 분석에 관해선 또 어찌 되는가.
구직시 조사위원회에서 내 이름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런 많은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과 커리어는 내게 말 할 수 없이 중요한 일이고, 내 정체를 형성하는 큰 부분 아니던가.
전문 분야에서 점점 높아지고 있는 내 명성을 생각해서라도
남편 성씨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별거 몇 달이 지나자 내 결정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커리어 측면에서 보자면 결혼 후의 성씨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말이 되지만,
개인적 관점에서는 어떤가?
전 남편 성씨를 갖고 있다는 건, 그와 그의 가족, 그리고 우리가 함께했던
지난 8년간의 시간이 나와 항상 연결돼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와 내가 이혼 과정 내내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오곤 있지만,
한편 나 자신 새 삶을 찾고 30대 싱글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재발견하고자 노력 중 아닌가.


결혼 전 성씨인 Geurin 으로 되돌아가는 일은 마치,
어쩜 내가 결혼 동안 잃었던 나 자신 일부를 되찾는 것만 같은 당연한 일로 느껴졌다.
내 삶 대부분을 Geurin으로 보냈거늘,
왜 지난 힘든 기억을 떠올리는 이름을 단지 일 때문이라는 이유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이 맹렬한 내부 논쟁은 몇 달간 계속되었다.
Geurin으로 돌아가길 원함을 나 자신 직감적으론 알고 있었지만, 머리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구글을 뒤져봐도 결혼하면서 이름 바꾸는 학자들에 대한 글은 있었지만
이혼시 어찌해얄 지에 대한 경험적 얘기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학자들에게 묻기로 했다. 
친한 친구들, 그리고 의견을 높이 살만한 멘토들과 선배학자들과도 상담했고,
커리어적 측면에서 고집스런 견해를 지니지 않은 학계 외부 사람들과도 이야길 나눴다.


대화들을 통해 내가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 것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게 편한 이름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내 이름을 무엇으로 정하든 내가 Geurin과 Eagleman이 동일인이란 걸
동료 학자들이 깨달을 때까진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Geurin으로 완전히 돌아가기 전에 약간의 브랜드 작업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와 대화를 나눈 이들의 생각은 대체적으로

'커리어란 한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구성하는 한 부분일 뿐이기에
그것이 나머지 삶을 위해 사용될 이름 결정을 좌우지해선 안된다'는 거였다.
과거를 뒤로하기 위해선 Eagleman 에서 벗어나 Geurin 으로 다가서기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3월 17일에 이혼이 확정되었다.
두 성씨 간의 연계를 위해 당분간 중간에 하이픈을 넣어 사용해오고 있다.
하이픈이 들어간 Geurin-Eagleman으로 3개의 학술기사가 출판되었거나 인쇄 중이고,
3번의 학술 발표를 한 상태다. 
올 6월에는 또 하나의 프레즌테이션과 함께
내 분야 최대의 한 학회에서 리서치 상을 받기로 되어 있다.


훼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아도
하이픈으로 연결된 두 이름의 연관성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발음하기에도 벅찬 Geurin-Eagleman 을 짧은 기간이나마 사용함으로써
그렇지 않았으면 힘들었을 Geurin 으로의 궁극적 전환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오는 7월엔 남편 성씨 Eagleman 을 완전히 빼버릴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이는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결혼 전의 성씨를 회복하기로 한 내 결정이 모두에게 옳은 일이라고도,
내 커리어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를 이미 다 알고 있다고도 하지 않겠다.
그저 이 이슈에 대한 내 허심탄회한 사연이
비슷한 곤경에 놓인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Andrea N. Geurin-Eagleman  
(호주 Griffith대학-스포츠경영 부교수)

 

 

 

 

 

 

 

 

 

 

 

 


 

한때 자신의 birth name을 간직하기 위해 걸라이엇 싸움과도 같은
처절한 법정 투정을 벌이던 여성들이 있었고,
그 힘든 성과에 기념비적 의미까지 부여됐던 시절이 있었다.
본래의 내 것 챙기기가 점점 권해지고 자연스러워지는 이 시대,
자신이 로마에 산다고 해서 굳이 퇴색된 '구 로마법'을 고집스레 따를 필요가 있을까.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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