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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랑동화랑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할까

 

 

 

 

 

오늘, 내일... 하며 그간 온갖 핑계로 미루고 미뤄오던 운동,
짝지를 다그쳐 드디어 근처 츄레일 하이킹을 시작으로 본격적 실행에 들어갔다.
레이크 츄레일로 세 번째 하이킹였던 엊그제는 약간 늦은 시각에 집을 나서서인지
숲길을 걷다 보니 금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다.


조금 불만 섞인 말투로,
"담부턴 절대 오후 늦은 시간엔 안 나올 거야, 이봐 쟈거들도 없는 게 으스스하쟎아."


"뭐가 무서워, 일케 그리즐리베어 만한 내가 떠억 버티고 있는데."
하며 두 팔로 자기 가슴을 쿵쿵 두드린다.  
그게 베어여, 킹콩이쥐. 큭.


그저 조금 빠른 속도로 가볍게 걷다 달리다 하는 정도이긴 하지만,
이런저런 대화와 농담 주고받으며 왕복 두 시간여 하다 보면
어느새 온몸에 땀이 흐르며 허벅지가 뻐근해져 온다.
영락없이 오길 잘했다 생각이 든다.


"톨스토이의 왜 그 '패험' 있잖아, 토지 욕심 무척 많은..." 
하며 타고난 스토리텔러인 짝지가 대화 보따리를 푼다.
"응, 그 스토리. 근데 난 땅 욕심, 재산 욕심 같은 건 별루 없더라."
"나두 그래."
"그래두, 좀 더 넓은 정원이 있음 좋긴 할 거 같아, 작은 파티 정돈 열 수 있는."
"응, 나두."


걷는 내내 '패험'으로 시작한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만약에 땅이 거저 생긴다면 그걸 팔아서 여행 가자 우리."
"어디로?"
"큐바(Cuba) 로."
"하필 거긴 왜?"
"모히또(Mojito) 먹으러."
"그려, 우리한텐 그저 먹는 게 최고다. 크크."

 

 

 남편의 모히또 

 

 
리오 톨스토이의 "How Much Land Does a Man Need?" 는
땅 소유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모든 걸 잃는 한 남자에 관한 단편소설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를 읽어 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캐나다에선 세컨더리(중.고등) 학생들 English 수업시간에 에세이 교재로도
사용되는 문학작품이기도 하다.

 

**


주인공 패험(Pahóm) 은 소작농으로, 가진 땅이 충분치 않음이 불만인 사람이다.
"땅만 많이 가지고 있다면 난 악마도 두렵지 않을 거야!"
악마 (Satan) 가 자신의 뒤에서 그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그가 알 리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한 여성이 자신의 토지를 팔러 내놓았고,
마을 소작농들은 제각기 능력 닿는 만큼의 땅을 사들인다.
패험 자신도 땅 일부를 구매하여 더욱 열심히 일해 빚도 갚고 더욱 안락한 삶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점점 심해지는 패험의 땅에 대한 집착은 곧 이웃과의 심한 마찰을 낳고,
건물에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이 나돌기 시작한다.
우연히 알게된 '어느 농부'의 소개로 다른 공동체의 더 큰 경작지로 이사한 그는
이곳에서 더 많은 작물을 키워 꽤 많은 재산을 모으지만,
임대한 토지에서 작물을 키워야 하는 것이 그를 짜증스럽게만 한다.

 

 


마침내 그는 일년을 내내 걸어도 다 다다를 수 없을만큼 광활한 땅을 가지고 있다는
버쉬키어족에 대한 얘기를 '어느 상인'에게서 듣게 된다.
"양처럼 순하고 착하지만, 일할 생각 같은 건 아예 안하는 무식한 사람들이지요."
그는 협상 가능한 최저 가격으로 그들의 비옥한 땅을 최대한 사들일 참으로 그들을 만난다.


족장은 아주 특이한 제안을 그에게 한다.
그 제안이란;
천 루블을 내고 동틀 무렵에 걷기 시작하여,
그가 원하는 만큼의 넓은 지역을 그가 가는 길따라 쭉 삽으로 표시해가며 걷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날 해 질 녘까지 그가 출발한 지점으로 되돌아와 도착하게 되면
그가 걸으며 표시한 모든 지역이 다 그의 것이 될 것이고,
해 질 녘까지 출발지점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면
그의 돈은 물론, 아무 땅도 차지하지 못하게 되는 조건이었다.


상당한 거리를 커버해낼 수 있다고 믿은 그는
그에게 주어진 일생 최대.최고의 엄청난 흥정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바로 그날 밤 패험은
버쉬키어족장, 그리고 자신이 우연히 만났던 그 상인과 농부가
차례로 그의 눈앞에 둔갑하듯 나타났다 사라지며
마침내 깔깔 웃고 있는 악마의 발아래서
시체로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주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패험은 땅에 표시해가면서 저물녘 바로 직전까지 최대한 걷고 또 걸었다.
이렇게 훌륭하고 비옥한 땅이라니!
이 땅은 이래서 놓칠 수 없고, 저 땅은 저래서 꼭 탐이나고....
그러나 종료 시각이 다가오면서 
자신이 출발지점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음을 뒤늦게 깨달은 그,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버쉬키어족을 향해 젖먹던 힘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헉... 헉...
숨은 턱까지 차고, 타 들어가는 입술에 푹 젖은 셔츠와 바지,
심장은 망치로 쳐내리듯 박동쳤고, 다리는 제 것이 아닌양 무너져 내렸다.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산등성을 보며
아, 결국 모든걸 잃고 마는 구나....절망하는 순간
"와우~ 대단하오!"
추장의 부축을 느끼고서야 패험은 자신이 출발지점에 마침내 도착한 것을 알게 된다.
모두들 그가 얻어낸 엄청난 땅에 아낌없는 환호를 보낸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꿈'이었다.
꺽.. 울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
달리느라 힘을 너무나 소비한 패험은 피를 토하며 결국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그의 하인은 그가 눕기에 충분할 만큼의 구덩이를 파고 그를 묻는다.

Six feet from his head to his heels was all he needed.
그에게 필요한 전부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고작 6피트였을 뿐이다.

 

 

 

Burnaby Lake (아이폰 사진)

 

 

 

 

 

 

 

버나비 마운틴에 있는 토템폴 조각.
Kamui Mintara 혹은 Playground of the Gods 이라 불리며,
밴쿠버 버나비시와 일본 Kushiro 시와의 자매결연을 기념해 세워진 것이다.
일본 호카이도 섬의Noburi Toko 와 그의 아들 Shusei Toko 의 작품이라 한다.

 

 

 

 

 

 

 

 

 

 

 

 

 

 

 

 

 

 

 

 

 

 

 

 

 

 

 

 

 

 

 

 

 

 

 

 

 

 

 

 

 

 

 

 

 

 

 

 

 

 

 

아내는 열심히 먹이로 새들을 가까이 유인하고 남편은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노부부

 

 

 

 

 

 

 


아기 거위들이 풀을 뜯는 동안 고개를 꼿꼿이 든채 눈 하나 꿈쩍않고
망을 보고 있는 거위부부 모습이 마치 영국 버킹햄의 Royal Guard 을 연상케 한다.

 

사람들에겐 관심도 경계도 거의 없는 캐나다 야생거위들,
치열한 영역다툼으로 잠시라도 선을 넘을라 치면 서로들 난리가 난다.


 

 

 

 

 

 

Salmonids (연어과 물고기류) 서식지역으로 보호돼 있는 Eagle Creek

 

 

 

 

 

 

How Much Land does a Man need?
사람에겐 과연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고작 6피트 -- 내 몸 하나 묻을 곳.
소설 제목에서 제시한 이 질문에 대한 아이러니한 대답인 것이다.

 

 

They've got no idea what happiness is,

they don't know that without the love

there is no happiness or unhappiness for us -- there is no life.

 

- Leo Tolstoy - 


 

 

2012년 5월 22일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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