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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랑동화랑

까마귀와 간조(干潮) 밧줄

 

 

 

 

 

 

 

 

 

아주 아주 오랜 옛날,
천지가 막 창조되어 모든 게 새로웠던 그때엔 밀물과 썰물이 없었답니다.
그럼 어떻게 생겼냐고요?
아마도 까마귀가 알고 있지 않을까.

 

 

 

 

 

 

 

 

 

까마귀 하면 한국이나 유럽 다수 국가에서처럼 죽음 혹은
불길함의 전조인 몹시 부정적 피조물로 여겨지는가 하면,
저의 레이븐 설화 "옛날옛적에 까마귀가 남자와 여자를..." 에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북미.캐나다 북서부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Honour(명예와 특권) 과 Derision(조롱.어리석음) 이 두 가지를 다 포함한
대표적 상징물이기도 합니다.
말레이지아나 베트남, 그리고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도 그러하다지요.

 


 

레이븐(큰까마귀)은
까마귓과로 무지갯빛 광택이 나는 검은 털과 크고 묵직한 부리가 특색이며
몸 길이가 56~69cm로 까마귀류 중 가장 대형.

 


레이븐은 캐나다 북서부 원주민 설화에 가장 주된 캐릭터로
그에 얽힌 이야기는 실로 셀 수가 없습니다.
항상 쉴 새 없이 분주하고, 엄청난 호기심에,
그러다 금방 싫증 내고 심심해져 또 다른 모험을 감행하고, 사기꾼도 되었다가
천진난만한 철부지 아이로, 반성 모르는 범죄자 모습으로.
그러고 보면 마치 우리 자라면서 접해 온 안데르센(안더슨)이나 이섭이야기속의
여우.늑대와 아주 흡사한 면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설화 속 레이븐이 이들과 다소 다른 점이 있다면
음식과 성에 대한 그의 왕성한 욕구가 자아내는 츄러블이라 할까요.
어떤 면에선 이들 원주민의 성.음식 문화와도 아주 별개이진 않을 듯.


아래에 이어질 제 한글버전 "레이븐과 간조 밧줄"을 깊게 음미해보면
레이븐이 상징하는 '특권'과 '어리석음' 두가지 성격을 살짝 엿볼 수 있을 겁니다. 
 

 

 

 

  

 

 

 

까마귀와 간조(干潮) 밧줄 
 
 
아주 아주 오랜 옛날,
천지가 막 창조되어 모든 게 새로왔던 그때엔
레이븐과 최초의 인간들이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지.
지금과는 모든 게 달라서 밀물과 썰물이란 것도 없었다는데.


종종 기슭을 따라 물 속에서 올라온 대합조개나 게들을 잡아
맛난 식사를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뿐이라,
그 깊고 거대한 바닷속엘 들어갈 엄두를 누가 내겠냐 말이지.


먹을거리가 점점 부족해진 사람들, 그리고 레이븐.
레이븐 이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미 얘기했듯이 그 탐욕이 엄청나서
제 좋아하는 것이라면 남 생각 안 하고 다 차지하는 배불뚝 욕심꾸러기라.
이러한 녀석이 그 퉁퉁한 배를 쫄쫄 굶기게 생겼으니 이 아니 큰일인가!


세상근심 다 짊어진 피조물처럼 바닥에 주저앉아 온갖 궁리를
쥐어짜던 레이븐.  그러다 스르르... 깊은 잠에 빠져 버리는데...


이 욕심쟁이 말썽꾸러기 레이븐은 둘째 치고
선량한 최초의 인간들이 허기에 지쳐가는 모습을 애처로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Great Spirit (북미 네이티브의 최고신.주신主神),
레이븐 꿈속으로 들어가


"내 사랑하는 인간들이 굶주림으로 고통을 받고 있구나!
레이븐아! 이 세상 제일 끝으로 가거라. 
그곳에 가면 거대한 바다의 가장자리가 나오느니,
거기엔 작은 동굴이 하나 있을 것이다.
그 동굴 안에는 노파가 있고, 그 노파가 바로 물의 높낮이와 
들고 남을 조절하는 '간조(干潮) 밧줄'을 손에 쥐고 있느니라.
 

그 노파로 하여금 밧줄을 놓게 할 방도만 있다면
막아놓은 바닷물 기둥이 무너져 내려 물속에 숨겨진 모든 먹을 것들이 드러날 것이고
너와 인간들은 더는 굶지 않아도 되게 될 터인 즉,
그러나 간조밧줄을 쥔 노파의 손아귀 힘이 엄청나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모쪼록 너의 영특한 머리와  잔꽤를 최대한 이용하여 성공하길 바라노라..."

 

 

 

 

 

꿈에서 깬 레이븐은 곧 최초의 인간들과 자신의 굶주린 배를 위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를 깨달았겠지.

레이븐은 날고 또 날았대.
세상에나, 열 나흘 밤과 열 나흘 낮을 날아 세상 끝, 바다 가장자리에 있는 그 동굴을
드디어 찾아낸 것이라!


동굴 안에는 예측대로 노파가 앉아 있었고,
그녀의 무릎을 가로질러 손에 꼭 쥐어진 밧줄이 보였거든.


앞으로 불쑥 내민 배를 쓱쓱 문지르며 동굴 앞에서 레이븐은 큰 소리로,

"음....   그 대합조개들 맛이야말로 세상의 으뜸이로구나!
암, 그렇고말고! 츱츱."


동굴 안에서 이 소리를 들은 노파는 몸을 앞으로 약간 빼며,
"레이븐, 레이븐!  그 대합조개들을 어디서 났는데?"


못 들은 척 한 레이븐,
배를 쓱쓱 문지르며 다시 동굴 앞을 왔다 갔다 하며,
"음... 정말 맛나더라니까! 아, 또 먹고 싶네!"


조금 더 앞쪽으로 몸을 빼며 노파는,
"레이븐, 레이븐! 도대체 그 대합조개들을 어디서 났냐니까는?"


역시 못 들은 체, 배를 문지르며
"아! 정말로 더 먹고 싶어 못 참겠구나!"


궁금해 못 참겠다는 듯 이번엔 더 앞쪽으로 몸을 구부린 노파,
바로 이때, 레이븐이 노파의 눈을 향해 모래를 뿌린 거라!


갑자기 앞을 볼 수 없게 된 노파,
눈 속의 모래들을 꺼내려 몸부림을 치는 도중 손에 쥐었던 밧줄이 사르르 풀린 거야.
그러자 바닷물들이 뒤쪽으로 무너져 내리고
졸지에 바다의 바닥 일부가 고스란히 드러났겠지.


너무나 기뻐 어쩔 줄 모르는 레이븐은
그 즉시로 열 나흘 밤과 열 나흘 낮을 다시 훨훨 날아 집으로 갔다지 뭐야.
 

행복과 기쁨에 가득 찬 마을 사람들은 이 모든 게 레이븐과 Great Spirit  덕분이라며
칭찬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레이븐 역시 너무나 행복하고 뿌듯하지 않았겠어.
 
 

 

 

 

바다가 차려주는 진수성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배를 채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레이븐과 인간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바다 기슭에 있는 먹을 것들이 서서히 말라 죽으며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는 것이었어.


"레이븐! 저 바다 음식들이 모두 말라 죽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좀 해 봐!
이러다간 먹을 게 하나도 남지 않아 우린 모두 굶어 죽게 될지도 몰라!
좀 도와줘 레이븐!"


레이븐은 다시 긴 여정을 날고 또 날아 세상 끝, 바다 가장자리에 있는 그 동굴로 갔대.
갔더니, 이런 웬걸,
그 노파는 아직도 눈에 들어간 모래들을 꺼내려 몸부림을 치고 있는 거였어.  
레이븐 인기척을 듣자,


"레이븐, 레이븐 네냐?  네놈이 날 속였구나!
내 간조 밧줄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제발 내 눈에서 이 모래들 좀 꺼내 다오! 제발..."


"그래요. 내가 할머니를 속였어요.
내가 좋아하는 바닷속 맛난 것들을 다 가지고 싶어서
바닷물이 뒤로 빠져나가도록 제가 방법을 쓴 것이랍니다.
그러나 이제 그 바다 것들이 죽어가고 있군요.
우리 인간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있고요.


당신 눈 속의 모래들을 닦아줄 테니 우리를 도와주시겠어요?
당기고 있는 간조 밧줄을 때때로 놓아 주세요.
그러면 사람들이 굶주림에 고통받지 않을 것이고
기슭에 몸 드러낸 바다 것들도 오랜 시간 물 없어 말라죽지 않을 터이고..."


"날 도와만 준다면 내 그렇게 해 줄 것이야!
인간들을 굶주림에서 구해 주겠어!"


레이븐은 노파의 눈에서 모래들을 깨끗이 닦아준 후
간조 밧줄을 그녀 무릎 가로질러 손에 쥐여 주었대.
노파의 밧줄은 이제 일정 시간 간격으로 손에서 놓이기 시작했고
이로부터 지구의 밀물과 썰물이 시작된 것이라...

 

 

 

 

 

"The Great Spirit is all powerful.

He taught us how to live, to worship, where to go and

what food to carry, gave us seeds to plant and harvest.

He gave us a set of sacred stone tablets into which

he breathed all teachings in order to safeguard his land and life.

In these stone tablets were inscribed instructions,

prophecies and warnings."

 

 

 

 

 

불펌 금지
엘리 "픽션 난픽션" / May 21,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