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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얘기저얘기

캠핑, 플랜하다

캠핑 플랜은 일찌감치 정해졌다. 

 

3월의 봄방학은 코비드로 인해 결국 개학을 맞지 못한 채 온라인 수업으로 이어지고

남편은 남편대로 외부 일정이 전화와 화상회의로 모두 전환되면서

최소한의 외출만을 제외한 우리 부부의 일상은

컴 모니터와의 대화가 대부분이었다.

 

스트레스 점점 쌓여갈 무렵,

남편이 깜짝 플랜을 내놓는다.

 

그: 우리 캠핑 가자!

나: 언제?

그: 7월 중순, 당신 여름방학 때..

나: 어디로?

그: 멀리 떨어진 섬으로.

 

기세 등등한 코비드도 7월의 뜨거운 열기면 한 풀 꺾일 테고

어떤 식으로든 일상 탈출이 필요하기도 했다.

 

몇몇 친구들에 연락해 합류할 멤버를 구성했다.

멤버라고는 하지만 같은 캠프그라운드로 가는 것일 뿐

친구들은 친구들끼리 우리는 우리끼리

각각 독립 캠프 사이트를 꾸리기로 한다.

 

여느 때 같았으면 단체로 한 곳에 모여 텐트 여러 개 치고

왁자지껄 모든 행동을 함께 했을 테지만

이번 캠핑은 그야말로 휴(休) . . . 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온라인 예약사이트를 열었다.

모두들 코비드 탈출만 고대하고 있던 걸까,

캠프 사이트는 겨우 스팟 하나만 아슬아슬 남겨둔 채 모두 매진 상태였다.

좋은 스팟 선택의 여지는 없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운이 좋았다.

 

당신도 무척 좋아할 거야.

작년에 가봤던 친구들 말로는,

화장실과 샤워시설도 잘 돼 있다대.

 

사실 집 외의 외부 화장실 사용을 꺼려하는 남편에게 있어

캠핑에서의 화장실 시설은 아주 중요한 조건인 거다.

 

7월까진 아직 두 달쯤 넉넉하다.

준비물 리스트를 작성한 우리는

틈틈이 캠핑 도구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그런데...

남편이 온라인과 스포츠용품점을 문턱 닳도록 들락거리며

하나씩 둘씩 새 캠핑 아이틈을 사들이기 시작하는 거다.

 

둘씩이나 되는 캠핑용 식탁을 놔두고

‘이건 디자인이 기가 막히다’며’ 새 식탁을 사 오질 않나,

 

이미 다섯이나 되는 캠핑의자,

특수 타이태니엄 재질이라 새처럼 가볍다며

하늘하늘 ‘별 보기 흔들의자’ 두 채가 주문되어 도착했다.

 

알록달록 예쁘고 신기한 디자인의 캠핑용 식기며 신상 조리도구들은

벌써 오래전부터 그에게 꽂힌 넘버 원 케티고리고,

 

Lamps & Flashes 마니아인 남편은

이미 셀 수 없이 많은 그것들을 놔두고 또 무언가 새로운 것을 구입한다.

 

“자갸, 그만 좀 해.

그거 당장 취소 안 하면 나 무지 화낼 거야!

대체 캠핑을 가자는 거야, 소꿉놀이를 가자는 거야?”

 

그간의 경험이 그렇지 않던가,

온갖 준비를 해간들 사실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은 몇 개뿐이다.

정 없으면 집에서 쓰던 거 챙겨 가면 될 것을

집에 있는 세간살이보다 많을 지경인 저 도구들을

다 어쩌자는 건지 참.

 

 

 

아내 잔소리가 눈치 보였던지

남편은 이때부터 몰래 산 물건들을 살금살금 창고에 숨겨 놓기 시작한다.

 

그렇게 숨겨둔  물건을 아내에게 들키기라도 하거나

본인이 헷갈려 장물들을 얼떨결에 공개 하기라도 하면,

 

“이거 몇 년 전에 사놨던 거야, 새 거 아니거든” 라던가,

“저번에 보여줬잖아” 라던가

“우리 지난 캠핑 때 썼던 건데, 기억 안 나?” 식으로 무작정 우겨댄다.

 

 

아내에게 들키지 않도록 좀 잘 숨겨두던가 하지,

아이처럼 참 엉성하기 짝이 없는 남편이다.^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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