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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얘기저얘기

캠핑, 그래도 추억

친구들은 남편을 찾으러 떠나고

대책 없이 그저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비취라인을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리셉션이 잡힌다던 한 일행의 말이 생각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해변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미약하나마 시그널이 뜬다.

남편에게 전화를 시도해 보지만 곧 신호음이 끊긴다.

이번엔 텍스트를 보내 본다. 성공이다.

 

캠프 직원이 왔었어. 손 세척용 물로 설거지 해도 된다네.

걱정되니까 나한테 전화 좀 해 줘.

 

차가 처박혔어. 도움 청하는 중야.  근데 이 섬엔 견인차가 없대.

 

친구들이 지금 자길 찾으러 가는 중야. 10분 전에 떠났어.

대체 지금 어디야? 친구들이 물어볼 걸 대비해서.

 

내 위치를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모르겠어.

 

 

답답한 마음에 이번엔 전화를 걸어보자 의외로 연결이 된다.

먼저, 찾으러 간 친구 차를 봤나부터 물으니 아직이란다.

리셉션이 불안한 데다 도움 청하느라 바쁘다며 일단 전화를 끊자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재작년 응급실에서 스텐트 시술을 받은 남편은

비상용 스프레이와 약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상황이었기에

연락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결국 한 시간 반쯤이 더 지난 밤 11시가 다 돼서야

남편은 지친 모습으로 친구들과 함께 차를 몰고 돌아왔다.

 

덜덜 떨고 있는 날 보며 남편은 불부터 피우기 시작한다.

미처 느낄 새 없었던 허기가 이제야 몰려온다.

캠핑 첫 저녁을 이대로 굶을 순 없는 일 아니냐며 이어 남편이 바비큐 준비를 한다.

 

이 시간에?

 

다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는지 사방은 고요하고,

철썩철썩 쏴아... 파도소리를 스테리오 우퍼처럼 들으며

이마엔 헤드램프를 두른 채 모닥불 앞에 앉아

코로 들어가도 모를 바비큐 치킨을 둘이 먹기 시작한다.

 

대체 무슨 일이었던 거야?

 

어느 친절한 빌리지 사람이 직접 토막까지 내어 공짜로 바리바리 챙겨준

firewood를 가득 싣고 돌아오는 길이었단다.

차 두 대가 교차하기엔 넉넉지 않은 좁은 길에서 눈치 없이 디민 어느 SUV와 마주쳤는데,

자진해서 길을 터준다며 남편이 갓길로 후진을 했다가

결국 겉만 살짝 흙과 돌로 덮였던 진흙 구덩이에 속아 뒷바퀴가 쑤욱 빠져버린 거다.

 

미안했던 SUV 커플의 최선을 다한 견인 노력과

지나는 차들의 시도도 있었지만 결국 실패한다.

 

할 수 없이 토우츄럭을 수소문 해보니

섬 내엔 토우츄럭 같은 건 아예 없어

훼리요금과 장거리 이동 비용 모두를 우리 부담으로 해서

저 멀리 나나이모나 밴쿠버로부터 불러야 한단다.

그나마도 지금 부르면 내일 도착.

 

궁리 끝에 그 커플의 SUV를 얻어 타고 시내로 다시 나가

Firewood를 잔뜩 챙겨준 그 집으로 가 자초지종을 말하니,

그 사람이 온 동네 사람에 전화를 넣어 견인 가능한 츄럭을 섭외하고,

드디어 몇몇을 대동해 현장으로 돌아와 견인을 시도해 보지만 결과는 실패.

바퀴 두 개가 대책없이 진흙탕 속으로 파묻혀 버린 상태였던 거다.

 

결국 현장에서 속수무책으로 두 시간여를 기다려,

마침내 외지에서 볼일을 마치고 귀가한 그 남자의 19살 조카가

탱크 같은 화물차를 로보캅처럼 몰고 나타난 것으로 견인은 급기야 성공한다.

무려 다섯시간 만의 쾌재다.

 

어이 반 웃음 반인 우리의 한밤중 만찬은 새벽 두 시가 다 돼서야 끝이 났다.

 

 

이른 아침, 소곤소곤 소리에 잠이 깼다.

텐트 밖 온 세상이 온통 하얗다.

손을 뻗으면 몽환 같은 하얀 물안개가 비처럼 젖어 든다. 안개비다.

 

만지면 잡힐 듯 방울방울 떠다니다

비처럼 내려앉아 내 손을 적시고 얼굴을 적시던

내 지난 십 대, 어느 새벽 해변의 그 꿈결같은 물안개처럼.

 

다음날부터 남편은 그토록 고대하던 낚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친구와 머리를 맞대고 뜨거운 한낮의 태양 볕 아래서

고무보트에 에어를 넣고 맞춤 제작해 온 장비들을 조립하며

몇 시간 뻘뻘 땀을 흘린 끝에 드디어 완성된 보트는

남편과 친구와 그들의 낚시 장비를 싣고 바다로 향한다.

 

“Have fun~~~”

 

저 멀리 파란빛 바다 한가운데서 조금씩 작아지는 배를 보며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사르르 잠에 빠졌다.

얼마나 됐을까, 저벅저벅 소리에 눈을 뜨니

낚시를 나갔던 남편과 친구가 낚싯대를 매고 해변으로 올라온다.

그런데 표정이 좀 아니다.

 

“왜 벌써 와요?”

 

참 내... 보트에 구멍이 났단다.

정확히 말하면 보트 이음새에 작은 균열이 생긴 거다.

고작해야 두 세 번 탄 새 보트인데.

 

도대체 시작부터 지금까지 되는 게 없다.

보트가 저리됐으니 이제 우리에겐 낚시 없는 캠핑이 되는 거다.

 

배 없이 그냥 낚시하면 되지 않나 싶지만,

바다로 나가 낚싯대를 드리고 하는 낚시와 해변에서 던지며 하는 낚시는 그 장비가 다르고

남편은 보트 낚시에 올인할 작정으로 오직 관련 장비만 가져온 터라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 많은 낚시 장비를 챙기면서 플랜 B를 대비한 다른 낚시 기어를

어떻게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나’ 싶었지만

이미 친구들로부터 한 소리 들은 남편에게 나까지 부채질할 순 없었다.

 

여분의 낚싯대를 들고 온 친구들이 해변으로 남편을 잡아끌지만

김이 샐 대로 새어버린 남편은 끝내 노우를 하고 만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캠핑 내내 낚시 없이 지내다 가겠다고?

아쉰대로 걍 친구꺼 빌려서 해.

 

며칠간 조르고 달래는 나와 일행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남편은 드디어

시늉이라도 내겠다며 맞지않는 자신의 낚싯대를 집어 들었고,

한나절 뙤약볕에 벌겋게 된 남편의 종아리에 뒤늦은 썬 스크린 크림을 잔뜩 발라주며

나도 사진기를 들고 쭐래쭐래 따라간다.

 

Coho(연어의 한 종류) 한 마리가 걸려들면서 남편에게 드디어 발동이 걸렸다,

투덜투덜 손가락만 빨면서 보내야 했을지도 모를 우리의 캠핑은

그리하여 또 한 번의 기사회생을 하며

도무지 끝이 없을 것만 같던 우리의 좌충우돌도

바람 반 태양 반, 파란 바닷물빛과 어우러져 평화롭게 마무리된다.

 

 

자갈로 살짝 덮어 둔 연어를 보겠다며 그 속을 비집고 있는 꼬마아가씨.

  

비록 가져간 베이비 물티슈들로 샤워를 대신하고,

불편한 이동화장실을 피해 하루에 한 번씩 섬 시내로 나가

관광안내센터의 쾌적한 화장실을 이용한 후 돌아오곤 했지만,

많은 교훈을 얻었던 우리의 이번 캠핑.

 

사실 남편은 몇 주의 캠핑을 가기 위해 전에 없을 만큼 바빴었다.

부재중 일정을 모두 앞당겨 마무리 하고자 했기에

아침 눈 뜨기 무섭게 시작해서 자정 지나 새벽 두.세시까지

백투백 화상회의와 작업실을 들락거리며 생전 없던 코피까지 흘렸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피곤함으로 바짝 예민해진 남편의 신경은

준비기간 내내 나와의 몇 마디 의견차이로도 쉽게 말다툼을 만들어냈다.

 

안쓰러움과 미안함으로 매번 이해하고 넘어가 보지만

살얼음 걷기 끝에 욱하는 감정이 솟아 급기야는 내가 한마디 하고만다.

 

“You’re like a ticking time bomb!”

 

 

 

“몇 주 캠핑을 위해 당신이 미리 처리해야  할 일이 그리 많을 줄 알았다면,

그래서 당신 신경이 그리도 예민해져 내내 티격태격하게 될 줄 알았다면

다음부턴 그런 장기 캠핑 죽어도 안 가련다 했었어.

그런데 이렇게 끝나고 보니 내년 여름에 또 가고 싶은 거 있지. 히히.”

 

캠핑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에게 한 말이다.

 

 

p.s.

귀환 후 남편은 그간 줄 서 있던 수많은 일을 처리하느라

또다시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고,

나는 캠핑다이어리를 블러그에 올리며

얼마 남지 않은 여름방학을 아쉬워 하고 있다.

 

 

긴 캠핑스토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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