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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

사나이답게 크는 일이란

 

 

 

 

 

남성다움.
사나이답게 크는 일.


남성性 (masculinity) 에 대한 여러 영어사전 뜻풀이를 보자면
"남성에게 자고로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전형적 특성" 이라고 돼 있을 뿐
그 성격적 특성이 어떤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사전은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다소의 차이를 두고라도 남성성/여성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정관념이
서양 각 사회에서도 역시 존재한다는 뜻이 아닐런지.


"자신의 남성성이 위협을 당한다 혹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느낄 경우,
남성은 과도한 마초(macho)적 행동으로 그 열등감을 overcompensate(과잉 보상) 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

코넬 연구 결과는 성역할의 극단적 고정관념 혹은 기대가 부르는 비효율, 비건설적인 면을 시사하기도 한다.


'칼 융' 의 Anima와 Animus 개념, 즉 남성안의 여성속성, 여성안의 남성속성.
이를 간과한 채 순전히 남성적이고, 순전히 여성적인 그런 99.99% 순도의 각 성 역할만을 여전히 기대한다면
언젠가는 과도한 여성 몸부림을 하는 돌연변이 machona가 마구 생기지 않을까.


태어날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리고 임금이 죽었을 때,
이렇게 딱 세번을 일생에 운다는 사내대장부.
그 나머지 울음을 모두 안으로 꾹꾹 꼭꼭 누르고 밟고 감추며 살려니...
아 에제라...


『남성이 한번 이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1시간에 2만원.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경우 추가로 5천원을 받고 30분 더 있을 수 있다.
탁자 위에는 눈물이 잘 나오지 않을 때 쓰는 남성눈물촉진제도 있다.
98.5%의 물에 염화나트륨이나 염화칼륨 등의 염류와 알부민...
눈물선을 자극하는 남성호르몬 '안드로겐(엔드러전)'이 첨가됐다고 한다.
'당신은 어떤 주제로 울겠습니까'라는 메뉴판을 열자 눈물의 코드들이 순서대로 적혀 있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아들, 친구 이야기, 군대 이야기, 아내 이야기, 딸의 결혼식...』
남성의 눈물엔 향기가 있다 중에서

 

 

어느 사설 교육기관에서 ESL반을 맡고 있는 에이미는
중국에서 갓 이민온 지 얼마 안되는 소위 '기러기 엄마.'


5세 된 아들 하나를 데리고 캐나다에 먼저 랜딩을 해
중국서 직장 마무리를 짓고 있는 남편과 합류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삶의 기반을 잡는 중이다.


아직 언어 적응기를 갖느라 예민한 시기인 아들아이 문제도 그렇고,
자국인 중국에서 고등학교 영어선생을 십 여년간 해왔던 베테랑 그녀지만,
캐나다 정식교육 코스를 거치지 않은 그녀가 가질 수 있는 직장이라곤 일부 사설 ESL 선생자리.
물론 그 조차도 비교적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라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ESL 외에 다른 파트타임 좝을 몇개 더 가진

그녀의 24시간은 눈코 뜰 새 없는 바.쁨.
하루하루의 모든 스트레스와 지친 마음은 자정 넘은 시각
남편과 전화 한통화 울음으로 다 털어버린다고.

 

 

 

어느 밤에는 리처드(아들) 에게 잘 자라며 긋나잇 키스를 해 준 후 방에 불을 끄고 나오는데
"엄마... 불 끄지 마. 문도 닫지 말고요... 무서워 ..."

하더란다.


"사나이 입에서 무섭다는 말이 나오면 어째!
사나이가 그깟 어둠이 무섭다고 하면 안되지. 무서워도 꾹 참는게 사나이지!"
하며 기어코 불을 끈 후, 문을 꼭 닫고 나왔다고.


"애가 이 곳에 오더니 점점 겁장이가 돼 가는가 봐요.
사내자슥 입에서 무섭다 겁난다는 소리가 자주 나오고..."


"에이미...
제가 보기엔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들아이가 굿굿하고 씩씩하게 두려움 모르는 터미네이터같은

천하무적 남성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엄마 마음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중국사회나 다수 동양사회나 시대가 아무리 달라졌다한들
남성의 눈물은 창피한 나약함, 여성의 눈물은 감성달린 무기란 그 편향적 사고는
제가 아는 한 아직도 분명 존재하는 듯 하고, 그 기울어진 사고를 상황.대상과 관계없이 적용한다는 것은
너무 잔인하고 옳은 방법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예요.


사내자슥은
슬퍼도 눈물 흘리지 않아야 하고
아파도 비명소리 내지 말아야 하고.
오죽하면 미래소설 속 '남성 눈물방' 이란게 다 탄생했을까.


깜깜한 밤에, 아직은 타국인 이 곳에서
낯선 친구들과, 낯선 언어. 아빠도 없이 엄마랑 단 둘이. 힘든 거 당연한 거예요.
밤에 문닫힌 깜깜한 방에 홀로 있음이 두려운 거, 그거 정말 당연한 거예요.
이제 겨우 5살 꼬마인걸요.
무서운 걸 무섭다고 말하는 거, 자기 감정에 충실한 거, 그거 창피한 거 아니쟎아요.
사내아이라고 뭐가 다르겠어요."

 

 

그러고 보니 정말 그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어떤면에선 상당히 진보적 마인드를 가진 부모라 자부해 왔는데
이럴때 보면 불시에 튀어 나오는 자신의 사고 뿌리는 어쩔 수 없는가 보다고.
오늘 집에가서 리처드에게 다시 말해줘야겠다고.


너도 깜깜한 밤에 혼자 있는게 무서운가 보구나.
그래 이해하고 말고... 엄마도 그렇거든...
무서운 걸 무섭다고 말하는 것,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는 것, 그거 창피한 거 아니라고.
아빠가 지금 곁에 없이 혼자 모든걸 다 처리해야 하는 이 엄마도
너처럼 무섭고 두려워서 몸이 덜덜 떨릴 때가 너무나 많으니까...
라고.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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