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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

뾰족구두와 로옹드레스


 

 

 
 
 

고무신이라고요... 그건 한번도예요.
엄니 뾰족구두는 몰래 몰래 많이 신어봤지요.
치렁치렁 드레스도 살짝 걸쳐보구 장미빛 립스틱도 덕지덕지 칠해보구...


아부지가 미국서 한 때 작은 사업을 하셨었는데
프랑스로 나가는 여성 숙녀복을 만드는 일이었어요.
물론 나중에 조금 더 커서 안거지만요.


그 당시엔 아부지가 왜 그런 치렁치렁한 온냐들 로옹 드레스를
집으로 자주 가지고 오시는지 잘 모른채
그저 눈에 쏘옥 들어오는 알록달록 칼라들의 내 키 한 배 반은 더 크고 긴, 맞지도 않는 옷을
'함 입어보니라...' 하심에 그저 신이 잔뜩 나곤 했더랬지요.


옷이 날 입어버린 모양으루다,
엄마 뾰족구두 위로 올라가 억지로 키를 한뼘 더 세우며
이봐라, 아주 쪼끔밖에 안 크쟎냐...
며 입게 해달라고 박박 떼를 쓰는 제게 엄마는
사이즈를 맞게 줄여서 입혀야겠다시며 수선을 맡기셨고요.


그런데 몸에 맞게 고쳐진 짧아져 버린, 뿐인가요,
본래의 모습이 아예 사라진 그 짧은드레스가 왠지 눈에 안 차더라고요.


입이 십리 밖으로 튀어나온 내가 엄만 우스웠던지,
그 다음부턴 아부지가 가지고 오시는 옷들을 모두 서랍장에 그대로 넣으시며,

"이담에 숙녀가 되어 키가 많이 자라면 이 로옹드레스들을 모두 꺼내 입니라..."
하셨더랬어요.

 

 

 

 

 

한해 두해.....
많은 해가 지나 제가 어느덧 숙녀가 되었고
새 서랍장 깊은곳에 차곡차곡 보관된 그 옷들을 어느 날엔가 펼쳐보니
이미 '구닥따리'도 보통 구닥따리가 아니게 됐는데다가
이룬... 좀까지 슬어서 좁쌀만한 구멍이 사방천지에 뽕뽕 나 있지 뭐예요.


그럴 줄 알았더라면 줄여서라도 입게 해달라고 할 걸...
짧아진 드레스라도 그냥 마구 입어 버릴 걸...

 


또, 저 시집가면 주신다고 이미 그 때부터 예쁜 그릇들도 엄만 모으기 시작하셨는데
제가 시집오면서 단 한개도 가져오질 못했어요.
그릇들이 좀 무겁나요,
거서 여까정 운반비가 대형배꼽이 될 운명인데다
요즘 플래스틱 일회용 식기들도 엄청 예쁘게 잘 나오쟎아요,
차라리 그게 제 눈에 더 찰 지경이라서,


"이 예쁜것들을 내가 어떻게 가져가, 양심이 있지...
걍 엄마가 다 쓰세요..."


입에 침을 뚝뚝 흘리며 인심을 쓰는 척 하고 왔지요.
.....

....

 

 

이제는 병약해지신 몸으로 빛바래진 그 예뻤던 그릇이며 접시며,

뾰족구두와 로옹드레스들을 바라보며

다신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 회상에 간혹 눈시울 적시실게 눈에 선합니다...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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