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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

안개바다

 

 

 

 

 

 

"이 숫자가 뭔지 잠깐 들여다 봐주겠어요?"


방학 특강기간 동안 교육청에 웤스테이션을 마련했던 지난 여름,
개인 친분이 있는 교육청 페이롤 (급여담당) 스탭이
깨알같이 작은 숫자들로 빼곡한 리스트를 들고 와서는 내게 하나만 봐달란다.
은퇴를 곧 앞둔 베트런이니만큼 그의 시력 또한 예전같지 않음이다.


Reading glasses 가 아직 없으시냐 물으려다 혹 실례라도 될까 싶어 그만 두고는,
방학특강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교육청 문을 나서면서,
늦은 여름휴가를 떠나고 없는 그녀의 빈 책상위에
큼지막한 magnifying glass(돋보기) 를 작은 선물로 올려놓고 왔다.

 


잊고 있었는데...
개학과 함께 학교로 출근을 하니 그녀로 부터 '땡큐' 이메일이 일찌감치 도착해 있다.
"돋보기 너무 고마워요. 지금 일하면서 사용중인데 정말 편하네!"
별거 아닌것으로 땡큐노트를 받기엔 좀 멋적다.


그리곤 이후로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그녀의 '사용소감' 이메일이 날라온다.
"그 돋보기를 사용해서 서류를 읽고 있는데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다시한번 고마워."
"지금도 그거 사용중이거든, 너무 잘보여서 진짜 좋다."
"크리스가 한번만 빌려달라고 해서 투니 하나 내놓으라고 한 후 빌려줬당~ 하하."


몇푼 안되는 돋보기 하나에 불과한데....
가슴에서 무언가 훈훈한 감정이 아지랭이처럼 솟는다.


그냥 혼자 씨익 웃으며 넘어가려다 답변 이멜을 보냈다.
"Cheers to you & your magnifying glass!"

(그대와 돋보기를 위하여 건배!)

 

 

 

 

 

 

밴쿠버의 지난주는 내내 하얀  안개도시.
운무속을 헤치며 출.퇴근을 하고 운무속 일몰을 맞는 몽롱한 시간들.
수업시간 교실 유리밖으로 펼쳐지는 황홀한 장관에 자꾸 눈길이 가는 학생들 마음.
"안개에 관한 descriptive essay 한편 써서 제출하고 갈 것."

 

 

 

 

 

 

산에 솜이불을 두른 것 같다.
구름이 아닌 황홀한 안개바다다.
저 천길 아래로 드문드문 보이는 초록빛 나무와 들판, 그리고 집들.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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