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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얘기저얘기

운수 베린 날

 

 

 

                        

 

 

씨애틀을 향해 달린지 세 시간이 다 돼 가는 중이었다.
아직 삼십 분쯤은 더 가야 하는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집 출발하기 전에 급히 먹었던 식사가 뱃속에서 서서히 반란을 일으키나 보다.


급한 김에 중간 커피샵이나 개스바의 대중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응급상황이 아닌 이상엔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


좀 더 빨리 달려봐, 하며 남편을 재촉해 아슬아슬 목적지에 도착한다.
큰 시누이 부부의 triathlon (철인3종경기) 우승 축하행사가 있어 초대받은 방문이다.
거실은 이미 와 있는 손님들로 온통 북적북적이다.


시누이 부부와 사돈 식구들에게 아는 척하는 둥 마는 둥, 화장실로 달려갔다.
인테리어에 많은 투자를 하는 시누이라 화장실마저 사용하기 부담스러울 만큼
왕비 방처럼 예쁘고 우아하다.


급한 김에 일단 변기 커버부터 올리고 절 하는 자세로 몸을 구부리는데,
앗, 티셔츠 주머니에 대충 꽂아 두었던 손수건과 썬글래스가 순간 변기 속으로 뚝 떨어진다.
하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은 없다.


한참을 웩웩거리며 변기 고해성사를 끝낸 후 어질어질한 기분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끼는 썬글래스라 포기하기엔 억울해, 힛, 여차여차해 건져내곤
손수건은 그대로 포기한 채 변기 물 내리는 센서에 손을 갖다 댄다.


웅웅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손 씻고 옷매무새 고치며 한참을 있으려니 뒤에서 물소리가 계속 난다.
뒤돌아보니 헉, 변기 물이 내려갈 생각을 않고 빙빙 돌며 위로 올라오는 거다.
손수건 때문에 막힌 게 분명하다.


큰일 났다!
갖가지 웩웩 토해낸 음식찌꺼기를 머리에 얹은 더러운 변기 물이 점점 올라온다.
저러다간 물이 넘쳐버릴 게 뻔하다.


하얘진 얼굴로 메뉴얼로 플러슁 할 방법을 찾으려 여기저기 둘러보는 사이,
어떻게 해.... 어머... 어머...
변기 물이 순식간에 넘치기 시작한다.  


이 집도 우리 집과 마찬가지로 화장실 바닥이 카펫인 구조다.
물 빠지는 장치가 없다는 얘기다.


물은 폭포처럼 넘쳐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카펫을 적시며 화장실 바닥을 덮기 시작한다.
폴폴 냄새를 풍기며 그 위로 동동 떠다니는 내 반쯤 소화된 음식시신들.


이런 낭패가 없다.
지금 밖에선 손님 웃음소리로 시끄럽고,
어느 순간 누군가의 화장실 급히 마려운 신호를 받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저 홍수를 멈추지 않으면
변기 물이 화장실 문턱을 넘어 거실 플로어로 흘러 들어가기는 시간문제.
누구를 부르기에 난감한 광경이지만, 그렇다고 혼자 해결할 방법은 없다.


내 절실함이 텔레파씨로 전해졌던 걸까, 그때 마침 천사 같은 남편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린다.
"하니, 아 유 오케이이?"
 

아흑, 오케이가 머여, 당장 드와바바랏 쟈가!


벌어진 광경에 잠시 황당해하지만, 역시나 그렇듯, 침착한 목소리로
"내가 해결할 테니 자기는 걱정 말고 나가 있어." 하며 타올을 건네준다.


미안함과 불안한 마음에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어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문 앞에 까치발 들고 있으려니
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에긋, 시누이다.


결국 상황을 파악한 시누이, 그의 남편이 이어 달려오고.
두 사람은 별문제 아니니 걱정 말라며 나와 남편 등을 밖으로 떼민다.


두 사람을 화장실에 가둔 채, 거실을 매운 손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마음은 계속 화장실에 가 있다.


한참을 기다리다 상황이 궁금해 화장실 문을 빠꼼 열어보니
카펫이 거둬진 화장실 바닥에선 온통 뿌려진 세균 세척제 냄새가
내 토한 음식의 시큼한 냄새와 섞여 제3의 기체로 진동하고 있었고,
마치 화학물질 제거팀 모양으로 방독매스크와 고무부츠, 고무장갑을 양손에 끼고
그 위를 두 사람이 땀 비 오듯 흘리며 쓸고 닦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버리고픈 심정이다.
축하객으로 와서는 오자마자 이런 대형 사고를 치다니, 쩝...

 

도와줘

 

시누이 부부 덕분에 화장실 사고가 어쨌든 마무리되고,
이제 모두가 저녁 식사 테이블에 둘러앉을 시간이다.


삼십여 명쯤 되는 사람들이 두 테이블로 나뉘어 앉고, 이어 음식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식사 시작에 앞서 두 부부의 우승을 축하하는 건배를 하자며 포도주잔을 각자 집어드는데,
내 글래스가 위치를 벗어나 테이블 가운데 쪽으로 가 있는 거다.


끄응 하며 몸을 반쯤 일으켜 내 포도주잔을 잡으려 손을 뻗치는데...

그 순간, 옆에 있던 포도주병을 툭 건드리고 만다.

  
쓰러진 포도주병은 서럽다는 듯 하얀 테이블보 위로 붉은 포도주를 콸콸 쏟아내고,
건배를 하다만 사람들의 시선이 졸지에 집중되며 여기저기서 냅킨을 건네준다.


이룬...
벌게진 얼굴로 고맙다며 건네준 냅킨으로 테이블보를 톡톡 누르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오른 팔꿈치로 옆 사람 포도주잔마저 넘어뜨리고 마는 나.
이젠 식사테이블이 온통 포도주 빛이다.
 

아, 너 오늘 왜 이러니 증말...

 

미안2

 

사고를 연달아 두 번이나 친 면목으로 기가 완전히 팍 죽어
쥐 죽은 듯 구석에 조용히 앉아 사람들 대화를 경청하고 있으려니,
제 방에 갇혀있던 쥔장 부부의 영리한 애완견 '코라' (Pembroke Welsh Corgi) 가
감금 해제를 맞아 제 방에서 뛰쳐나오며 나를 알아본 듯 반갑게 달려온다.


기특한 마음에 벌떡 일어나 녀석을 향해 걸음을 성큼 내딛는 순간,
아차, 발바닥에 뭔가 밟히는 느낌.


찌끄덩... 찌익... 우당탕 꽈당!
발레 하듯 양다리를 십자로 뻗으며 거실 바닥 위로 길게 나동그라져 버리는 나.


사람들이 달려오고,아 유 오케이 하며 눈 동그래진 얼굴들이 내 앞에 겹치는데...
엉덩뼈에 금이 가는 아픔이 있다 해도 '또!' 하는 처절한 민망함에 견줄까.

아, 나 오늘 정말 왜 이러냐구...

 

메롱

 

일일 최다 실수의 신기록을 그렇게 세운 후, 힘없이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one bad hair day after another! (만사가 꼬이는 날)" 하며
자책의 궁시렁을 입에 달고 있는 내게 짝지가 한마디 한다.


신경 쓰지 마.  Who cares. And it's not your fault. 


맞다. 내가 몇 번이나 사골 쳤는지 누가 신경이나 쓴데?
먹은 게 탈이 난 것도, 손수건이 변기 속으로 빠진 것도,
포도주병과 잔이 내 손가는 언저리에 있던 것도,
쓰잘데 없는 것이 뜬금없이 마룻바닥에 놓여있던 것도,
다 내 잘못은 아니지, 아니지 말구. 흐흐.


울 남편은 고슴도치 남편인갑다 싶어 속으로 흐뭇해 하며
오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러 사온 모카를 입에 가져 댄다.


순간, 차가 출렁.
어푸어푸, 입 언저리와 콧구몽으로 쏟아져 버린 뜨건 커피.

 

흐... 완전 운수 베린 날였다.

**

 

 

 주말 오후, 스탠리 팍의 자연 서식지인  'Lost Lagoon' 의 한여름 물가 정경을 렌즈에 담아보았습니다.

 

 물가를 바라보며, 반은 졸며, 반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새덜 데이트 하는 거 첨 보세욤?

 

 졸려 죽겠는데 우씨...

 

 

 

저 방금 이발소에 댕겨왔거덩요.

 

 관광객들로 보이는 일본 학생들.

 

 파란 속셈을 깃털속에 감추고...

 

 

 비둘기 양,  나도 끼워주세요~

 

 

 재벌 전용 침대

 

 

 

 

 에고... 얘야... 많이도 먹었구낭....

 

 

졸려 죽겠는데 케머라 들이대고 난리야, 아흑...

 

 자는 척 하면서 볼 거 다 보는 넘.

 

 저두 자는거 아니란 말예요.

 

 

 

 

 자갸, 내가 잘 지켜줄텡게 자기는 멋진 방에서 편히 있어~

 

 

줄 먹이를 미쳐 못가져와서 미안해 죽겠다며 속상해 하시는 할무이.

 

 에혀... 물로라도 배 채워야지 뭐..

 

 갸우뚱~ 지금 저 찍으시는거예요?

 

백조 체면이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발라당~~ 아, 시원하다~~~

 

 백조가 노는 곳에 까마귀야 가지 마로라~

 

 

 엄마와 아기 오형제의 물가 나들이~

 

 자 오늘은 엄마랑 단체 수영 연습날이다~

 

얘들아~ 엄마 꽁지 놓치지 말고 꼭 잘 붙들고 와야 한다~

 

오형제 녀석들, 제법 귀여운 걸!

 

꼭 공룡시대 '시조새' 같죠?

보호 조류인 캐나다 Great Blue Heron 이랍니다.

 

 

 눈을 부라리는 모습, 무셔라.

 

얘, 너도 나처럼 Bad Hair Day 였니?

 

 

"When I'm Sixty Four"
The Beatles


When I get older losing my hair
Many years from now
Will you still be sending me a valentine
Birthday greetings, bottle of wine?
If I'd been out till quarter to three
Would you lock the door?
Will you still need me, will you still feed me
When I'm sixty-four?

 

You'll be older too
And if you say the word

I could stay with you

I could be handy, mending a fuse
When your lights have gone
You can knit a sweater by the fireside
Sunday mornings go for a ride
Doing the garden, digging the weeds
Who could ask for more?
Will you still need me, will you still feed me
When I'm sixty-four?

 

Every summer we can rent a cottage in the Isle of Wight
If it's not too dear
We shall scrimp and save
Grandchildren on your knee
Vera, Chuck & Dave

 

Send me a postcard, drop me a line
Stating point of view
Indicate precisely what you mean to say
Yours sincerely, wasting away
Give me your answer, fill in a form
Mine for evermore
Will you still need me, will you still feed me
When I'm sixty-four?
Ho!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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