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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와의 추억

케이는 출산 중

 

 

 

 

매년 봄기운이 짙어지는 이맘때면 그렇듯,
케이의 구애 행위가 올해도 얼마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재작년쯤인가에 버진메리 모양으로 뜬금없이 알을 잉태해 저희 부부를 황당하게 만든 이후로,
무정란 만들어 건강을 희생시키는 일이 또 있어선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봄날, 엄마를 짝인 양 여기며 홍홍거리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야말로 빗자루 몽둥이를 코 앞에 들이대며 정신줄을 화들짝 원위치시켜 놓곤 해왔는데,
덕분인지 이후로 번식기를 무사히 넘기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케이가 며칠 전부터 다시 꽝알 반란을 시작한 겁니다,
정도는 다를지언정 우리 사람과 닮아있는 그 진통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을 직접 목격하며
새든 사람이든 만물 탄생은 참으로 경이롭고 신기하다는 감동을 받습니다.


평소 때 같았으면 해 질 녘까지 거실에서 머물려 했을 지지배가
이날따라 밥을 먹자마자 허겁지겁 서둘러 제 방에 데려다 달라 하는 모습이 좀 미심쩍어
방에 들여놓고는 잠시 녀석 동태를 살펴보려 새장 앞에 앉았습니다.


제집으로 들어가자마자 바닥을 향해 직활강 하더니
온몸을 바닥에 널브러지듯 대고는 꿈쩍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아뿔싸 출산 모드구나 직감했지요.


숨죽이고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려니
시계 초침 같은 소리가 어디선가 간헐적으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소리 출처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나서야
그게 케이 몸 어딘가에서 나는 소리란 걸 알아차렸습니다.


산통을 감내하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떨군 모습,
한참을 그리 있더니 비척비척 일어나 앞뒤를 잠시 왔다 갔다, 다시 주저앉습니다.
부리로 엉덩이 부분을 어루만지는 것이
아마 고통을 다스리느라 그런 게 아닐까 싶구요,


그렇게 십분 쯤 흘렀을까,
아... 꽁지깃 사이로 하얀 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Push... push... 힘줘라 힘 줘, 조금만 더...
에고, 곁에서 바라보는 제 배에 덩달아 힘이 주어집니다.


그러다 양 날개가 갑자기 독수리 기지개 펴는 양 쭈욱- 뻗쳐집니다,
그러면서 알이 쑤욱 빠져나옵니다.
알이 나오고서도 케이는 지친 듯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바닥에 대고 있습니다.


에그, 수고했다 케이야......
안쓰러움과 대견함의 속삭임이 절로 나옵니다.
손주 본 친정어무이가 딱 그 짝일 듯합니다.

 

 



 

이렇게 다시 알을 낳기 시작한 케이는 이틀 후에 둘째 알을 낳았습니다.
짝이 있었더라면 교대로 알을 품으며 먹이도 서로 물어다 줄 텐데
그럴 짝이 없으니 어미인 제가 그 역할을 맡아야지요.
수시로 데려 나와 먹이를 먹여 다시 들여보냅니다.
평소 같으면 제집 들어가기 싫다 버틸 녀석이
이런 기간이면 밥만 허겁지겁 먹고 다시 들어가기 바쁘니, 역시 모성은 위대합니다.


둘째를 낳고도 계속 새장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걸 보며
아직 더 낳을 기세구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 이틀 후엔 셋째 알을, 또 이틀 후엔 넷째 알을,
지금까지 꽝알 4형제를 낳은 상태입니다.
앵무새는 대개 네 알 이상을 낳는 일은 드물기에
케이가 재작년인가처럼 올해도 이쯤서 그치겠지요.


바닥에 널브러져 알을 품다가도 뭔가 불편한 게 많은지,
여기저기 신문지 조각을 옮기고 포개고 깔고 하며
황량한 새장 바닥을 조금이라도 푹신이 꾸며보느라 안간힘을 쏟는 눈치에 죄책감이 듭니다.
왜 아니겠는죠,
애초에 번식을 기대했다면 미리 새장 안에 적당한 산란 둥지를 꾸며줬겠지만,
어떡해서든 케이의 산란을 방지하려는 상황이었기에
새장 바닥을 여지없는 불모지로 만들어 놓았던 겁니다.


어차피 저리될 것인데...
아무리 야멸차게 대해도 암컷의 본능, 그 자연 섭리를 어찌 막을 수 있을까요.
다음번 번식기에는 짝은 안 만들어 주더라도 푹신하고 편안한 출산공간은
만들어 주리라 맘 먹는 중입니다.


무정란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알을 품는 케이의 수고로움도 수고로움이지만,
자칫 알이 깨져 내용물이 흘러나오고, 그걸 케이가 얼떨결에 먹기라도 한다면
살머넬라 위험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케이가 밖에 나와 밥 먹는 사이 낳은 알을 모두 살짝 치워버렸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감쪽 같이  사라져 버린 제 알을 찾아
새장 바닥을 온통 헤집고 다니는 케이 모습이 마치
잃어버린 자식 찾으러 눈물 콧물 바람으로 거리를 헤매는 어미 모습 같습니다.
에효....

 

 

이번에 낳은  꽝알 4형제 (왼쪽은 일반 달걀)

 

 

 

몇 해 전, 케이가 첫 알을 낳기 시작한 그때의 경이로움을 담은 제 지난 포슽을 아래에 다시 올려 봅니다.

 

 

못 말리는 딸내미

(2012년 3월)


꺄아악!  자갸 자갸, 빨랑 일루 와밧!


평소 같았으면 이른 아침 제 엄마 기척 나기가 무섭게 자길 새장에서 꺼내달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를 케이 지지배가 어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도 새죽은 듯 조용... 하길래
쟤가 왠 일로 이 엄마 늦잠을 다 도와준디야? 하며 케이방이 있는 작은 침실로 살금 들어갔지요.


Hello~ 하며 문을 여니, 횟대에 앉아 있어야 할 지지배가 웬일인지 저답지 않게
새장 바닥에 철퍼덕 앉아 뭘 뒤적뒤적하다 끔벅끔벅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데
헉, 그 옆에 떨어져 있는 작디작은 하얀 알!


아내 비명에 놀라 뛰쳐 들어온 남편, 상황을 곧 파악했다는 듯
"알 낳았네?  난 또 뭐라고.  근데 왜 글케 소리는 지르구 난리냐 간 떨어지게."


"아니, 시집은커녕 남자앵무 구경도 못 하고 자란 아가씨가 혼자  알을 절케 덜커덕 맹글어 낳았는데
그게 놀라 자빠질 일 아녀?"


절케 덤덤하고 차분한 모습이라니, 킁.
사실 놀라기도 했지만 신기함이 더 컸을 겁니다 제겐.
케이 입양 이후 나름대로 공부하여 쌓은 앵무 지식이 돌팔전문가 정도쯤은 됐고,
그렇기에 무정란을 낳는 앵무가 그리 드물지 않다는 걸 모르던 바도 아녔지만
막상 상황을 직접 접하고 보니 얘기가 달라지더란 말입니다.

 

 

 

 

 

사실 케이가 요즘 제 엄마 보기를 연인 보듯 홍홍 거리며 유난히 재롱을 부리기에
에고 또 짝짓기철이 왔나 보다... 했던 중이긴 했더랬습니다.


며칠 전에는 바닥 청소를 하려 새장을 열어보니, 어머낫,
바닥에 깔아둔 신문지들을 파스타 페터치니 모양으루 갈기갈기 길게 쭉쭉 찢어
그 넓은 새장 바닥을 완전 쿠션 만점인 안락한 초대형 둥지로 탈바꿈시켜 놨지 뭡니까.
거기다 털갈이하느라 뽑아놓은 자기 솜털들을 신문지 조각들 사이사이에
얼기설기 정교하게도 끼워놓은 모습이라니!


이런 모습은 케이 네.다섯살 쯤 부터 짝짓기 철이면 자주 보아왔기에 새삼 놀랄 것은 없었지만, 
제 엄마도 못 알아보고 구애하는 모습이라던가 
둥지를 다듬고 꾸미는 정도가 그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던 거였습니다. 


참 안쓰러운 생각에 마음도 아프고...
완벽한 애완조를 평생 유지하겠다는 우리 사람들 욕심만으로
지능이 인간 유아와 같음이 입증된 저런 영리한 앵무새들을 짝없이 싱글로 생을 마감하게 하는 일이
너무 이기적이고 잔인하다는 죄책감이 한 두 번 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설마설마하다 막상 떠억하니 저렇게 저 혼자 무정란을 낳아 놓은 모습을 모니
그냥 죄책감으로만 넘어갈 일이 아니란 생각마저 듭니다.


그렇다고 짝을 맺어주고 함께 키우면 되지... 결정할 만큼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짝을 갖게 되면 많은 경우 그 애완성을 잃기가 쉽거든요.
번식을 목적으로 하는 브리더들이 아닌 다음에야, 애조가들이 기대하는 것이
바로 앵무새들의 사람아기 같은 애정과 재롱이기도 하고,
특히나 앵무새가 일단 알을 낳고 나면 몸이 많이 약해서 수명이 단축되는 게 가장 큰 우려지요.


참고로, 울 케이 같은 인디언링넥 중형앵무들은 보통 25-40년, 혹은 50년 넘어서까지
살기도 합니다.  코카투나 머커 같은 대형앵무류 중엔 100세 넘어 산 기록도 좀 있고요.
 

 

케이가 최초로 낳은 첫 알 (2012년 3월)
 

낳은 알과 함께 새장 바닥을 깔끔히 청소해 놓은 지 하루 만에
케이는 또 다시 신문지를 부리로 정교히 썰어 둥지를 꾸미는 중입니다.
배도 아직 불룩해 보이는 거이... 에고...  아를 또 낳을라나 봅니다....흑.


케이가 어쨌든 몸을 저리 계속 풀게 생겼으니 산모는 산모 아니겠어요?
알을 만들어내느라 온몸의 칼시움이 빠져나가기에
영양분을 보충해서 충분히 회복게 해줘야 하는 건 사람과 똑같거든요.

히유... .미혼모 딸내미 산후 뒷바라지를 제가 단단히 해야 할까 봅니다.


 
케이가 둘째를 낳았어요~~~~~


며칠 전 첫 알을 낳고 나서도 여전히 아랫배가 볼록해 보일길래, 또 날라나 부다... 싶었다가,
며칠 하도 뽈뽈 돌아다니는 모습에 아니구나 생각했더랬지요.
아, 그런데 조금 전에 새장을 열어보니 바닥에 둘째 알을 또 떠억 낳아 놨지 뭡니꺄?
제 부리로 박박 찢어놓은 신문지 조각들을 알 주위에 빙  둘러 덮어놓은 모습.


드물게는 무정란을 몇 개씩이나 낳는다던데, 울 케이가 암래두 그럴라나 봅니다.
요즘 먹이도 잘 안 먹어 억지로 입 벌려 떠 넣다시피 하는 중인데,
둘째 알을 낳고 나선 뭔 생각이 달라졌는지 그나마 밥도 안 먹고 알을 제 몸으로 품기 시작합니다.


흑.....  아그야, 건 무정란이라는디 우짤끄냐....

 

 


이어진 케이의 둘째, 셋째, 넷째

 

 

그 해, 케이는 결국 독수리 4형제를 맹글었던 것입니다.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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