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혼자놀기

남편 귀 뚫다

 

 

 

 

주말, 볼일이 있다며 외출한 남편에게서 전화가 띠리리 온다.
"나, 지금 들어가는 중야~"


얼마 후 현관밖에서 인기척이 나는 걸 보니 이제 막 도착했는가 보다.
주방에서 커피를 만들고 있는데 짜잔! 하며 어느새 그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금세 왔네.  볼일 잘 보구 왔어?" 하며 뒤돌아 보니
두 눈 깜박깜박하며 고개를 길게 빼고 새초롬히 다문 입술에
장난기 가득 담은 얼굴을 하고선 아주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서 있다.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헤어 스타일이 달라진 것도 아닌 것 같고,
셔츠를 사 입은 것도 아닌 것 같고,
목걸이가 바뀐 것도 아닌 것 같고,
암만 살펴봐도 하나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갸우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자니
"이긋, 잘 살펴봐~" 하며 얼굴을 내게 가까이 들이대고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데...


오잉?
왼쪽 귓불에 반짝반짝하는 은빛 동글뱅 두 개!


"앗, 자기 귀 뚫었구나?!"


사실 나란 사람은 평소 남편의 두툼한 목걸이를 예찬할 정도로
남성 액세서리 환영론자 아니던가.
그런데 막상 한쪽 귀에 구멍을 것도 두 개나 뚫어 반짝이 두 개를 콩 박은 모습을 보니
갑자기 퍼억! 허를 찔린 기분인 거다.


잠시 멍해져 있는 내 모습에 남편이
"왜? 별로야? 도루 가서 취소하고 오까?" 하며 히죽 웃는다.


취소는 무슨 취소, 뚫린 구멍을 다시 메꿀 재간이라도 있간디?
"아냐, 와우~ 멋지다. 잘했어 잘했어."


그런데 가만 보니...
귀고리 한 모습이 뭐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한 개 보다는 두 개가 더 세련돼 보이는 것도 같고. 흐.


 

 

 

 

저녁 식사를 대충 끝낸 남편이 화장실로 간다.
귀 뚫린 자리가 아물 때까지 하루에 세 번씩 꼬박 두 주 동안 전문소독제로 세척을 해야 한단다.
학생 때 일찌감치 피어싱을 했던 나지만
저렇게 호들갑스러운 소독 과정은 없었는데, 암튼 요란스럽기는.ㅋ


잠시 조용하다 싶더니 화장실에서 남편의 다급한 구조 요청이 들려온다.
자갸, 핼푸 헬푸!


달려가 보니 소독을 하느라 귀를 만지작거리다
귀고리 고정핀 (back clutch) 하나가 어디론가 빠져 달아난 거다.
그 깨알 만한 뒤꼭지를 찾아 화장실 바닥을 두 사람이 온통 기어 다니다시피 하고...
히유, 드디어 찾아냈다.


찾아낸 귀고리 뒤꼭지를 다시 끼우긴 해야 하는데
뜨끈뜨끈 벌개진 귓불을 잡고 힘을 주려니
끼우기도 전에 벌써 아얏~ 소리부터 내는 그 엄살, 암만해도 내 손이 덜덜 떨린다.

아플까 봐 나 못하겠어.  자기가 알아서 끼워.


아파도 자기 손으로 끼우는 게 더 낫겠다 싶었는지
귀고리 꼭지를 받아 들고는 이리 콕, 저리 콕 해보는데,
웬 귀고리 침이 저리도 짧디야 
꼭지를 힘주어 꾸욱 누르지 않으면 도대체가 들어가다 만다.


네가 하니, 내가 하니 그렇게 서로 핑퐁 게임을 하다
에긋, 또 꼭지가 손에서 빠져나갔다.


두 사람, 다시 낮은 포복(졸도) 자세로 바닥을 열심히 기어 다니고,
간신히 내 손에 잡힌 뒤꼭지,
이쯤되면 슬슬 짜증이 날라하니
에잇,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빨리 해치워 버리자.
아프건 말건, 벌개진 귓불을 쭈욱 잡아 당겨 꼭지를 귀고리 침에 대고
꾸욱...꽉.... 눌러버렸다.


아악!

안돼

 

 

 

밴쿠버 VanDusen Botanical Garden

 

 

 

 

 

 

 

 

 

 

  

  

 

 

 

 

 

 

- 엘리 -

 

 

 

'혼자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Open Casket에 대한 소회  (0) 2013.12.01
그대 울지 마라  (0) 2013.11.24
한 치 앞  (0) 2013.09.30
솔직한 품평  (0) 2013.08.17
빈집 털이  (0) 2013.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