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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얘기저얘기

어떤 긴급 상황

 

 

 

 

 

며칠 전 퇴근길이었어요.
집 가까이에 이르러 하이웨이를 막 빠져나가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차 어디엔가에서 달달달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겁니다.
다른 차에서 나는 소리겠거니 하며 무시하고 가려니
그 소리가 점점 커져 이제는 탕탕탕 꽹과리 소리를 연출합니다.
아무래도 내 차인 것 같았습니다.


소리로 봐선 타이어 펑크는 아닌 것 같고...
앞차에서 떨어뜨린 물건이 내 차 어딘가에 덜거덕 걸렸나?


비상등을 켠 후 차를 갓길로 세우고는 차 뒤쪽으로 가보니
딸려오거나 걸려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타이어도 멀쩡합니다.


조금 미심쩍긴 했지만 바로 옆 차에서 난 소리였다는 결론을 내리곤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시동을 걸고 출발하기 무섭게 예의 그 탱크 굴러가는 소음이 또 시작되는 겁니다.
함께 달리는 차량은 주위에 없었습니다.


내 차가 분명하구나.
일단 집에 가서 확인하자 싶어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웬걸, 속도가 빨라질수록 그 소리도 점점 커지는 것이
이러다간 차가 순식간에 폭발할지도 모를 지경이었습니다.


급히 비상등을 반딱반딱 켜고 갓길로 차를 다시 세우고는 잠시 가슴을 진정시킨 후
남편에게 빛의 속도로 전화를 걸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집 전화도, 휴대폰 #1, 2, 3 도 모두 묵묵부답입니다.
남편은 이런저런 이유로 휴대폰이 여러 개고, 특히 휴대폰 #3은 완전 비상시에만 이용하는 번호인데
그것마저도 응답이 없는 겁니다.


'이긋, 왜 전화를 하나도 안 받는 것이얏...'


남편과 연락이 될 때까지 여기 갓길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겠구나
하며 대책 없는 심정으로 차에 들어와 있으려니
드디어 휴대폰에 신호가 옵니다.

 

"비상전용 휴대폰은 폼으로 갖구 댕기는 거얏!"
하며 상대가 대꾸할 겨를도 안 주고 다다닷 해 버렸습니다.


"런드리룸에 있느라 전화벨을 못 들었어. 무슨 일 있어?"
오랜만에 일찍 귀가해서 세탁기를 돌리고 있었던가 봅니다.
다짜고짜 밀어붙인 것이 조금 미안스럽긴 했지만 지금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닌 겁니다.


뜬금없는 소음이 어쩌구 폭발 일보 직전이 어쩌구 해감서
엄살 49.9%쯤을 섞어 도저히 운전불가한 긴급상황을 만들어 놓고는
중고백마 탄 슈렉 구조반이 올 때만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십오 분쯤을 가슴 졸이고 있으려니 드디어 남편이 나타납니다.
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으로 차에서 폴짝 내려서는 내 나름의 돌팔진단을 남편에게 전해줍니다.
차에 뭐 매달린 것도 없구,
타이어도 멀쩡하구,
암래두 엔진 쪽에 이상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그래? 하며 차 뒷바퀴쪽을 들여다보던 남편,
"이게 뭐지?"


What? What? 하며 고개를 디미니
바퀴 안쪽에 붙은 무언가 허연 것이 그제서야 내 눈에 들어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삼 분의 일쯤 접힌 부분에 접착제가 발라진 네모 플래스틱이 타이어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다른 바퀴들에도 이쪽에 한 개, 저쪽에 두 개
너 댓개가 타이어 여기저기에 마치 바람개비처럼 붙어 있는 겁니다.
탱크 굴러가는 소음의 범인이 바로 그 녀석들이었습니다.


요즘 그 부근 도로 단장을 하면서 에스펄트를 새로 막 깔아 놓은 후라
정식 차선이 아직 그려지지 않고 대신 손바닥만한 반짝이 탭 (barrier flex tab) 들을
일렬로 접착제 발라 차선 구분용으로 쭈욱 붙여 놓은 상태였는데,
그 반짝이 탭들 위를 가로지르며 차선을 바꾸는 과정에서
일부가 내 타이어에 덥석 달라붙어 따라온 겁니다.

 

 

 

 

 

하하, 그런 줄도 모르고.
그래도 그렇지, 그 작은 플래스틱 탭 몇 개가 타이어에 달라붙어 연주해 내는 소음이 어찌 그리도 크던지.
암튼 별거 아닌 것으로 하마터면 피오나 공주 간이 떨어질 뻔했던 오후였습니다.
차분히 타이어를 살펴보지 않고 부랴부랴 구조대부터 호출한 호들갑 댓가는
오는 주말 슈렉 손톱 손질로 치를 예정이라는데.^

 

 

 

 


 

 

꼬마들 파티에 낑겨 몰래 파티~를 즐기다 파파라치에게 현장을 찍힌 Mr. & Mrs. 모글.

 

 

 

 

 

 

가을이 점점 무르익는 시월의 주말입니다.
편하고 즐거운 시간 되시길...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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