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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 해와 빛을 훔치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세상에 빛이란 게 없어 천지가 온통 캄캄했다는데
그때에 태어났더라면 지금처럼 성형이니 화장이니로 외모 꾸미기에 목숨 걸 일이 없지 않았을까.
           
다음 스토리 "레이븐(까마귀)이 해와 빛을 훔치다"는 캐나다 북서부 원주민의 하나인
Haida Gwaii(Queen Charlotte Islands)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고대설화로서, 
레이븐이 어떻게 해와 달, 별, 그리고 빛을 세상에 들여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레이븐은 까마귀과로 무지갯빛 광택이 나는 검은 털과 크고 묵직한 부리가 특색이며
   몸 길이가 56~69cm로 까마귀류 중 가장 대형 (갈까마귀와는 다름)

 
 
         
 

 

참고로, 레이븐은 북미원주민, 특히 레이븐이 최초로 인류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태평양 연안의 북서부 원주민 사이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창조주이며 주술적 신의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이들 설화들은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하찮게 여겨져서는 안될 그들 문화재산의 한 부분이기에
그들로부터 전해지는 이같은 이야기와 전설은 아주 풍부하며 또한 예민한 사안일 수도 있습니다.
 

이 신화의 근원지가 어디인지 말하기는 어려우나
북미 서부연안을 오르내리며 많은 변형된 스토리와 버전들이 있으며,
이들 모두 북서부 인디언의 정신적 믿음(spiritual beliefs)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태초에는 빛이라는게 전혀 없었다고 믿는 서방종교와 비슷한 면이 있다고나 할까요.
 

아래에 이어질 엘리버전 "레이븐, 해와 빛을 훔치다"를 깊게 음미해보면
이전의 제 스토리들에서 언급했던 레이븐이 상징하는 '특권'과 '어리석음' 두가지 성격외에도
북서부 인디언의 '창조주이며 주술적 신'의 성격을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레이븐, 해와 빛을 훔치다

 
아주 오랜 옛날엔 지구 전체가 어둠으로 덮여 있었단다. 
칠흑 같은 어둠이 세상을 뒤덮고 있어 아무도 사냥이나 고기잡이, 식량으로 열매를 주우러 갈수가 없었으니.

 

어느 시냇가 옆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그 딸이 아주 아름다울수도, 아니면 아주 못생겼을 수도 있지만 노인에게 그게 뭐 대수겠는가, 
어쨌거나 어두워서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일 테니 말이다.
 

노인은 아주 커다란 비밀을 하나 가지고 있었는데, 세상이 어두컴컴한 이유와 관련이 있던거다.
그 노인에게는 상자가 하나 있었다. 
그 상자 속에는 다른 많은 상자들을 담고있는 또 다른 상자가 들어 있었고,
맨 마지막 상자 속에는 우주의 모든 '빛'이라는 보물이 숨겨있던 것.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 당시에 존재했던 그 짓궂은 주술신 레이븐(까마귀), 
참견 많은 그 성격에 여기저기 부딪혀가며 어둠속을 더듬거리는 그런 상태의 세상이 재미가 있을턱이 없었겠지. 
급기야 더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던 어느 날, 바로 그 노인의 오두막 근처에서 더듬더듬 어슬렁거리던 레이븐은
노인이 자신의 상자들에 대해 중얼거리는 소리를 엿듣게 된단다.  
 

'허, 이런 재미난 일이!' 
그 '빛'이 숨겨있는 상자를 훔치리라 대번에 결심을 하게 되지만
어떻게 그 오두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가 문제로고.
 


 
                              
  
그 노인의 어린 딸이 물을 가지러 매일 시냇가로 가곤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레이븐은
자신을 자그마한 미나리 잎으로 탈바꿈시켜 그 소녀의 양동이 속으로 살짝 흘러 들어간다. 
그리고는 자신의 주술적 마술을 조금 사용하여 소녀가 목마르도록 만들어
그녀가 물을 마실때목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간다. 
따뜻한 그녀 몸속으로 흘러 내려간 레이븐은 다시한번 자신을 작은 인간생명체로 탈바꿈시킨 후 아주 긴 긴 낮잠을 자기 시작.
 

'자신에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알길이 없는 소녀는 아버지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긴 낮잠을 마친 레이븐은 작은 남자아기로 소녀 몸을 살짝 빠져나온다.
누군가 캄캄한 속에서 그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기만 하다면 
그 아이가 긴 부리같이 생긴 코와 여기저기 듬성듬성 나 있는 깃털하며, 
틀림없이 반짝거렸을 까마귀 눈을 가진 기이하게 생긴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소녀와 그녀 아버지는 새 식구가 생겨남에 너무나 기뻤고, 시간가는줄 모르고 날이면 날마다 아이와 놀아주었다. 
아기 모습으로 주위를 온통 헤집고 다니던 레이븐은 마침내
구석에 놓인 커다란 상자속에 그 '빛'이 숨겨져 있음이 틀림없다고 믿는다. 
 

아이가 상자를 열려 하는 시늉을 하자 노인은 그를 보고 심하게 야단을 쳤고
이에 대응하여 아이는 온갖 성질을 부리며 꽤액 꽤액 울부짖었다. 
노인이 태어나서 한번도 보지 못한 괴이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손자를 사랑하는 마음에 노인은 제일 큰 상자를 놀잇거리로 아이에게 건네준다. 
덕분에 잠시 그 오두막엔 평화가 찾아왔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마지막 상자 하나만 남을 때까지 레이븐은 계속해서 그런 술수를 썼다.
 

온갖 방법으로 아이를 달래고 구슬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노인은 손자에게 "딱 한번만 가지고 놀아야 하니라!" 하는 약속과 함께
마지막 상자에서 '빛'덩어리를 꺼내 아이에게 건네주고 만다.  
 

그 빛덩어리가 손에 건네지기가 무섭게 그 아이는 바로 레이븐으로 둔갑하여 부리로 그 빛을 낚아채
연기구멍(smokehole)을 통해 재빨리 하늘높이 날아올랐다.


  
                                                                                 
 1900년 한 부족의 hut(오두막).
구조물 맨 꼭대기 천으로 덧댄 부분이 바로 연기구멍(smokehole) 과 덮개.  (사진출처: 위키피디아)
  

 

일순간에 세상에 영원한 변화가 왔다.  
밝은 하늘아래로 산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림자들은 강과 바다위에서 이리저리 뛰놀았다. 
저 멀리 독수리 (Eagle)가 깨어 일어나 하늘높이 솟아 올랐다. 
그의 목표물이 눈앞에 선명히 드러났다. 
 

새롭게 드러난 눈부시게 밝은 천지의 모습에 몹시 흥분한 레이븐,
독수리가 자신을 향해 치솟아 날아오는 것을 미처 알아챌 겨를이나 있었을까. 
쭉 뻗은 날카로운 발톱을 피하기 위해 급히 방향을 틀다가
아뿔싸! 레이븐은 거의 빛덩어리 반을 지구 위로 떨어뜨리고 만다.
  


                                
 
 
바위 투성이 땅에 떨어진 빛덩어리는 큰 조각 하나와 수많은 작은 조각으로 산산히 부서져 
이들 빛 파편들 중 많은 부분은 하늘위로 되 튀어올라 하늘에'달'과 '별'들로 남게 되었고,
일부는 바위와 돌 사이에 끼게 되었는데 돌멩이 두개를 부딪힐때마다 불꽃이 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단다.
 

독수리는 세상 끝까지 계속해서 레이븐을 따라 다녔고, 
길고 긴 추격에 온통 지쳐버린 레이븐은 급기야 아직까지  남아있던 빛덩어리 나머지를 놓아 버렸다.  
구름위를 우아하게 둥둥 떠다니던 빛덩어리는 지금의 해가 되어
동쪽 산위에서 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침 첫 태양 광선이 오두막의 연기구멍을 통해 들어왔다. 
너무나도 소중했던 최대의 보물을 잃은 슬픔에 흐느껴 울고 있던 노인은 고개를 들었고

처음으로 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그녀, 아.... 너무나도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이제 더이상 슬프지 않았다.

 

 

 

- 엘리 -

 

"불펌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