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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

시어머니의 유언장

 

 

 

 


재작년 시아버지가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후
더욱 활발해진 시어머니의 커뮤니티 봉사 활동과 친구 모임에 가족들은 내심 안도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던 그분이 요즘 들어 부쩍 외로움을 호소하신다.
우리 부부 주말이면 당신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다 오곤 하지만
반쪽을 먼저 보낸 후 점점 휑해지는 마음 한켠은 어쩔 수 없으신가 보다,
당연한 일일 테지.
 

그러더니 일전에 만들어 두신 자신의 유언장을 다시 손봐야겠다시며 남편을 부른다.
그 일로 변호사와 법률사무소를 왕래하느라 한 달여를 바삐 보내던 남편,
드디어 모든 법적 절차가 어제 완료됐음을 내게 알린다.


가족 모두 균등하게 유산이 배정되었고,
남편은 executor (유언집행자) 로 임명되었다.
Executor 란 고인의 유언 집행에 관한 모든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유산 처분방법과 절차, 상속시기 등,
고인을 대신해 유언과 관련된 모든 걸 결정하고 집행하는 큰 힘을 가진다.
분배된 재산 처리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가족 간의 불협화음을
단 한마디로 일축할 수 있는 조커 같은 것이다. 


주어진 파워도 그렇고 언젠가 돌아올 적잖은 자신 몫 하며, 생각이 사뭇 많은 남편 눈치다.
"없는 듯 걍 잊고 살아, 얼마나 먼 훗날의 일인데."


아직 한참 젊은 연세이니 앞으로 최소한 이.삽십여 해는 우리 곁에 계시지 않겠는가.
그걸 염두에 두고 기다렸다 무언가를 계획하기엔 세월과 기회가 우리 부부를 
마냥 기다려 주지만은 않을 것임을 남편에게 슬쩍 주지시켰다.


"나도 엄마가 오래오래 사시길 누구보다 원하지만,
현대인의 평균수명을 무조건 무시할 순 없는 일이지,
더구나 아버지 돌아가신 후 부쩍 아픈 데가 많아지신 상황이고..."


하기야 엊그제만 해도 시어머니는
자신의 콧등 근처에서 풍기는 정체불명의 냄새 때문에 담당 의사를 만났고,
폐 염증으로 인한 것일 수 있다 하여 정밀 검사 날짜를 받아 오시긴 했다.
그렇게나 건강하시고 에너지가 청춘 못지않던 분이...


갑자기 가슴이 아려온다.
시아버지와 친정어머니, 세상에서 내가 그리고 나를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 둘씩이나 연달아 내 곁을 떠났기에
더 이상의 이별 준비란 절대 쉽지 않음이다.

 

 

 


"있잖아, 엄마 유언장에 자기 이름도 들어가 있는 거 모르지? 아부지 유언장도 그랬었지만."
아내의 눈가가 젖어옴을 눈치챘는지 남편이 화제를 바꾼다.


"그래? 어떻게?"


시부모께서 며느리인 내게도 세 자녀와 더불어 균등한 몫을 상속하셨다는 거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시부모란, 며느리란, 부부란... 헤어지면 남인 것을.

젖은 눈가가 더 젖어온다...


"거봐, 울 엄마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시어머니께서 남편에게 물으시더란다,
만약 우리 부부 이혼이라도 하게 될 경우엔 나에 대한 상속 자격을 어찌하겠느냐고.
자신과 이혼한다 해도 상속은 그대로 유효하게 해달라 했단다.


감동의 마음 안으로 접은 채, 그를 향해 씨익 한번 웃어 주었다.
서로의 검딱지 같은 우리 부부,
시시때때 '장미의 전쟁' 을 치르곤 하지만
하늘이 두 쪽나도 헤어지는 일만은 절대 없을 거란 걸 남편도 나도 알고 있음이다.
난 너 없으면 못 살아, 너도 나 없으면 클나구...


자신의 짚신 한 짝을 각각 잃으신 후 삶 열정이 많이 사그라진 듯한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
유산도 좋고 상속도 좋지만,
그냥 자식들 곁에서 건강히 오래오래 사심으로
그 최고 선물을 안겨 주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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