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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

사고뭉치 아내

 

 

 

 

이른 저녁을 마치고 티비 앞에 막 앉으려니 띠릿 남편 휴대폰에서 메시지 도착 신호음이 들린다.
휴대폰을 잠시 들여다보던 남편은 갑자기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누군가와 통화 연결이 되고
통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얼굴에 조금씩 심각한 빛을 비추기 시작하더니
펜을 집어들고는 종이에 무언가 숫자를 받아 적어 내려간다.
650, xx, xx...


남편이 간간이 던진 질문에 수화기 건너편의 답변이 신통찮았던 듯
"됐다, 다른 사람과 다시 통화하겠다"라는 남편의 저음 한마디로 통화는 종료된다.


"무슨 일이야?"


'저 큰 숫자가 설마 무언가 깜빡한 미납금액은 아니겠지.'
각종 고지서 납부를 비롯한 대개의 재정관리는 남편이 맡고 있고
난 그저 매니저나 되는 양 모든 게 제때 납부된 상태인지를 가끔 묻는 정도였지만,
어쩌다 한 번씩 날짜를 헷갈려 낸 걸 또 낸다거나
앗차 대드라인에 겨우 대는 식겁한 일 아니면 특별히 신경 쓸 일은 고맙게도 그간 없었지 않나.
같은 고지서를 반복 납부하여 오히려 회사 측에서 '제발 너무 많이 내지 마라' 며
초과분에 대한 크레딧을 (붙은 이자와 함께) 몇 달 내내 거꾸로 공제해 내려간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쳐다보며 남편이 묻는다.
"혹시 이번 달에 아이폰으로 영화나 비됴 같은 거 많이 다운받았어?"
순간, 머리에 벼락이라도 꽂힌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엉? 으응…  근데 왜?"
"뭘 그리 많이 봤길래 빌이 일케나 많이 나왔다니?"


헉, 숫자 650은 이번 달 휴대폰 사용금액이었고, 그 주인공은 그가 아닌 나였던 거디다.


평소 쓰는 량이 주어진 용량의 10% 정도인 몇백 MB가 겨우라
특별가인 월 기본요금 $70(7만 원) 마저 아까워하던 내게 $650(65만 원)은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날 숫자였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열 배나 나와?"


Unlimited Talk and Text 라 통화와 문자는 문제 될 게 없고,
폭탄이 떨어진 건 data plan 초과 사용분이었는데
단위별로 그 overage charges(초과요금) 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학교선 시간도 없었을 텐데... 혹 하이웨이를 달리며 출.퇴근 운전 중에도 영화 본 거야?"
"으...응...."

 

 

 

 

그랬다 정말.
지난 한 달 여 동안 학교 점심시간이건 출.퇴근 시간이건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듯 틈만 생기면 휴대폰을 켜 놓고
Netflix로 Youtube로 정말 미친 듯이 온갖 영화를 섭렵했던 거다, 것도 high def.(고화질) 으로.
특히나 고속 운전 중 동영상 시청은 휴대폰이 3G 시그널을 끊임없이 잡기 위해
더 많은 용량이 소모된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었을 리 없다.


더 바보 같았던 건, 집안에 설치된 wifi 시그널이 위치에 따라 약하거나 막혀
수시로 wifi 에서 3G 모드로 바뀌곤 한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해
주말이나 휴일엔 내내 3G 모드에서 휴대폰으로 별별 걸 다 한 셈이다.
스마트폰 유저라면 잘 알지 않는가,
카우치나 안락의자에 몸을 뉘고 휴대폰 버튼 몇 개로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는 일이 얼마나 편하던가를.
바로 손만 뻗치면 닿을 넷북과 랩탑을 그저 찬밥 신세로 전락시키며
내 휴대폰 오.남용 시대 역시 그렇게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안과 후회로 고개가 푹 꺾여진 내 모습을 보며 남편이 따뜻한 말을 건넨다.
"괜찮아, 자기 잘못 아니야. 순전히 내 실수야."


사실 이 일이 생기기 한참 전,
내 6G짜리 data plan이 구체적으로 얼만큼의 사용량일까를 궁금해 하던 내게 남편은
넷플릭스나 유튜브로 영화를 매일 수 시간씩 다운받아도 다 못 쓸 정도니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라는 말을 하긴 했었다.


그 말을 아내가 스마트폰 사용 지침서처럼 가슴에 꼭 품고
열심히 스마트한 기능을 남용.폭용할 것을 어찌 짐작이나 했으리.
스마트폰을 좀 스마트폰답게 적극적으로 이용해보라는 추궁 아닌 추궁을 가끔 당할 정도로
전화의 기본 기능에만 충실해 오던 아내였기에
데이타 용량 초과니 어쩌니는 애당초 해당 사항 없으리란 남편의 생각였던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게 순전히 자신의 실수였음을 지금 내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 번쯤의 중간 점검 없던 경솔한 내 행동을 난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다.
남편: 너무 걱정 마, 암리 사용자 잘못이라 해도 이 금액을 다 낼 순 없는 일이지.
나:   글두 쓴 건 쓴 거라서... 뭐라고 함서 깎을 건대?
남편: 뭐라고 하긴! 울 집 사고뭉치 초딩 꼬마가 저지른 일이니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사 빌어야짓!


우헤헤헤!
둘 다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다.


Usb 분실 사건으로 발 동동 구르던 게 바로 그 전 주말 아니었던가.
이어진 주말을 이번엔 또 다른 사고로 안절부절 보내게 되었으니, 에굿 사고뭉치 초딩 딱이다 딱.
어쨌거나 단 몇십 불이라도 깎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외출서 돌아온 남편은 다시 이동통신사로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대화를 잠시 주고받던 고객서비스 담당 직원은
청구액 디스카운트 문제는 자신의 권한 밖이라며 대신 부서 수퍼바이저와 연결해주고,
남편은 무언가 숫자를 또 간간이 적어가며 한참 통화를 하더니 마침내 수화기를 내려 놓는다.


"뭐래?"
"내부적으로 검토해보고 전화 다시 주겠대."

 

시장 물건값 깎듯 간단한 일은 아니겠지.
규정이란 게 있는 것이고, 예외가 있다 해도 내 경우엔 적용할 명분도 마땅챦을 테니.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이틀쯤을 보내고 있으려니 수업 중간 휴식 중 남편으로부터 문자가 와 있다.
"그간의 신용을 인정해 $220으로 낮춰줌.  다음달 부터는 기본료도 70에서 50불로 깎아줌."


야후~
$430씩이나 감해주고, 게다가 매달 사용료마저 덤으로 팍 깎았다니!

 

"더 밀어붙일 수도 있었지만 걍 말았어."
라비스트나 법조계 쪽으로 진로를 바꿔보는 게 어떠냐 할 정도로 교섭솜씨가 좋아
종종 지인들로부터 사업 협상 테이블 조인 부탁을 받기도 하는 남편이기에
이번에도 내 세자릿수 휴대폰 빌을 거뜬히 두 자릿수로 낮춰보리란 장담을 하긴 했었다.


"그 정도만도 됐어. 생각 없이 사용한 내 잘못도 인정은 해야지 뭐."


소소한 일로 아내 궁시렁을 자주 듣는 입장이면서도
이렇듯 한 번씩 치고 마는 아내의 대형사고에는 항상 마음 넉넉한 남편, 그는 dumber 임에 틀림없다.

 

 


 

 

휴대폰 사용 내역과 결제마저도 남편에게 일임해 왔던 내 그간의 안일함이 컸구나 싶어
이번 기회에 휴대폰 사용 디테일을 구석구석 점검할 수 있는 앱을 당장 설치했다.
설마 큰 차이 있으랴 싶어 대충 구매해 사용해 오던 제 맘대로 wifi 라우터도
이참에 좀 더 가격 투자하여 활발하고 성실한 넘으로 장만했음이다.


사고 뭉치 아내, 이만하면 완전무장이다.

^__^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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