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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랑교육이랑

시험치는 아이들 II

 

 

 

 

물리 과목 시험이 시작되고 15분쯤이 지났을까, 한 남학생이 손을 번쩍 들며 화장실을 청한다.
"안돼."


시험 시작 후 최소한 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화장실 사용이 가능하도록 한 규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년에 있었던 한 한국인 학생 화장실 휴대폰 불미 사건("시험부정행위와 한국인 학생들")을 계기로
아예 해당 과목 시험이 종료될 때까진 화장실 출입을 되도록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시험장 내에선 필기구와 검열을 거친 개인 lucky charm 외의 어떤 물건도 소지할 수 없게 돼 있고,
특히나 휴대폰은 시험장에 들어서자마자 임시 반납하도록 하고 있지만
학생들 양심에만 맡길 뿐, 그렇다고 학생들 신체를 더듬어 검사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작정하고 몸 안 깊숙이 무언가를 숨겨놓는다면
우리 감독들로선 그걸 찾아낼 방도가 없는 것이다.


십 분쯤이 더 지나자 아까 그 학생이 다시 손을 든다.
암래도 배에 탈이 난 것 같다며 울상을 하고 있다.

어쩌겠나 저리 급하다는데.
"Empty your pockets."
옷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음을 재차 확인하고는 화장실을 허락했다.
배를 움켜쥐고 급히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니 녀석, 안 보내줬으면 큰일 치룰 뻔 했겠다.

 

 

 

 

 

수험생들의 긴장모드는 이처럼 전에 없던 과민 반응을 신체에 일으키기도 한다.
평소 두드러지지 않았던 틱(tics) 장애 증세가 시험 도중 심해지는 학생도 있다.
무언가 질문을 하고는 있는데 도대체 턱이 끊임없이 위로 젖혀져 의사소통이 쉽지가 않는 거다.
안타까운 마음에 일부러 모른척하고 따뜻이 대꾸를 해주지만
본인으로선 얼마나 고역일까.


어떤 학생은 시험 시작과 함께 심한 감기몸살이 덜컥 걸려
초여름을 웃도는 요즘 날씨에 두꺼운 담요를 시험 내내 뒤집어쓰고 있는가 하면,
뜬금없이 시작되는 콧물 엘러지 반응으로 티슈를 옆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는 학생들도 있다.


수업 때와 다를 것 없이 시험 치르는 모습에서도 학생 개개인 성격은 쉽게 드러난다.
이곳 시험은 특정 페이퍼를 제외하곤 모두 주관식 논술이라
답안 필기용 두툼한 answer booklet (답안책자)들이 각각 주어지는데,
고치에서 실 뽑아내듯 뚝딱 답안지를 채우고 일찍 시험장을 나가는 타입,
planning(초안)을 거쳐 썼다 지웠다 주어진 마지막 일 초까지 꼼꼼히 사용하는 타입,
브레인 스톰에 시간을 내내 보내다 마지막 순간에 시간이 모자라 허겁지겁하는 타입이 있다.


또한, 규칙과 지시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숙지해 빈틈없이 답안작성을 마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매번 뭔가 한 두 가지를 빠트리거나 잘못해 감독교사의 지적과 수정을 단골로 받는 학생도 있다.


시험에 임하는 포즈도 다양해서,
잠을 자는 양 책상 위에 고개를 눕히고 수평으로 답안을 쓰는 학생도 있고.
삐딱한 자세로 앉아 끊임없이 몸을 뒤척이는 학생,
불특정 시선 고정으로 감독교사와 눈이 자주 마주치는 학생도 생긴다,

 

 


 

 

시험 시간은 과목당 한 시간에서 세 시간까지 진행되는데,
수험생이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시험을 마쳤을 경우 손을 들어 이를 알리고
감독교사는 답안지 작성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를 검토해준 후 퇴실을 허락한다.


며칠 전, 일찌감치 답안지 작성을 끝낸 한 여학생이 손을 들기에
답안지 작성을 살펴본 후 퇴실해도 좋다는 신호를 준 후 뒤돌아 걸어 나오려는데
웬걸, 저만치 시험장을 빠져나가고 있는 녀석의 한 손에
책상 위에 놓여있어야 할 자신의 답안지 꾸러미가 덜렁덜렁 쥐어져 있는 거다.
깜짝 놀라 그녀를 다급히 불러 세우려는 순간,
그녀도 동시에 꿈에서 깬 듯 화들짝 놀라 나를 향해 달려온다.


"I'm so sorry; I didn't know what I was doing."


벌게진 얼굴로 당황해 하는 표정에서 그 실수가 결코 고의가 아니었음을 감지했지만,
만에 하나 그녀가 답안지를 들고 몽유병 환자처럼 시험장 밖을 한 발짝이라도
걸어나갔더라면 어쩔 뻔 했는가.
시험 탈락이라는 대형사고로 마감됐을 일이다, 휴....

 


 

 

시험이 오늘로써 그 순조로운 여정을 모두 마쳤다.
긴장된 근육 탓으로 쥐가 나는 손목과 손가락을 맛사지해가며 하루 6~7시간씩 답안지를 채우던 당사자들에게나,
순간순간 긴장감을 잃지 말아야 하는 감독 교사들에게나 5월 한 달은 내내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그들이 목표하는 세계 유수 대학에 진출하고 나아가 분야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한
중요한 초석을 만드는 순간임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노력한 만큼의 큰 결실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 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