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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랑교육이랑

서열 부추기는 사회

 

 

 

얼마 전 인터넷으로 시청한 어느 예능프로그램에 무척 황당해 한 적이 있다.

Project Runway, Face Off, X-Factor 같은 경연성 쇼를 즐기는 편이라
신인 걸그룹을 뽑는 <프로듀스 101> 이란 그 예능 프로그램은
얼핏 내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시청 초반부터 기대치 않은 장면들이 등장한다.
참가자 순위를 그야말로 일등부터 꼴등까지 하나하나 나열하며
열댓 명쯤도 아닌 100여 명 참가자에 일일이 등수를 붙이는 거다,


학점 매기듯 A~F 등급을 구분해 참가자들을 몰아 넣지를 않나,
60위권 명단을 공개한다며 1등부터 60등까지를 일일이 꼼곰하게 호명해대는데
한 시간 넘는 방송시간을 이름 부르는 것으로 채우다시피 하는 진행방식에
그만 짜증이 나 스마트폰을 닫아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연습생 101명을 대상으로 국민 프로듀서 온라인 투표제를 시행하여
선택된 극히 일부만을 데뷔시킨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지만,
이건 도대체 등수의 적나라한 공개로 참가자들의 극도의 불안과 과열경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가학성 쾌감을 제공하려는 게 그 목적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참가자들 등수나 점수를 공개하는 예능프로그램이야 어느 나라에나 있고,
더러는 수위가 몇 수 더 높은 것도 있지만,
관객이나 참가자의 주연령층에 따라 각각의 필터를 적용하고 있지 않은가.


매회 등수를 매기고 투표수를 공개하고,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는 같은 그룹 멤버 내에서도 점수를 거침없이 비교해
참가자들 간 경쟁과 갈등을 끝판왕으로 부추기며 일궈내는 높은 시청률의 서글픔.

 

 

 


 

 

심사위원들은 또 어떤가.
경연참가자를 두고 '예전에 얘는 어땠고 쟤는 어땠고' 식의
사담인지 심사평인지 모를 지극히 사적인 맨트들을 날리는 심사위원들을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한국적 정서와 문화를 십분 고려하더라도
때와 장소 구분없이 출연자들끼리의 형,누나,선배님 호칭이 당연지사로 만발한 장면에는
눈이 찌푸려질 때마저 있다.


참가자들을 놓고 누가 가장 예쁜지를 투표하는 시간도 갖는다.
그들 사이에서도 미모가 튀는 참가자들은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인 게 역력하다.
고무줄 잣대를 이용한 심사기준도 보인다,
한국의 '걸그룹'이란 게 가창력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모르진 않지만 
춤이, 목소리가, 얼굴이... 등등의 이유를 대며 모호한 기준을 대는 건
그 신뢰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격이다.


외모지상주의, 성적지상주의, 이로 매겨지는 결정적 서열주의가
바로 대한민국 지상파라는 매체가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오히려 보란 듯이 선봉에 나서서 조장되는 우리 한국 사회.


궁금하다.
저런 장면들을 보며, 저런류의 프로그램을 보며 우리 한국 시청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실까,
민망과 거부감은 비단 나 혼자만의 느낌일까.
거부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방송 매체를 향한 물음표를 던져보기는 할까,
아니면 그저 누가 꼴등이고 누가 일등인지에 대한 호기심만 만땅해 있을까.

 

 

 

 

 

 

 

 

 

 

 

 

엄마 거위가 고슬링 삼형제를 돌보는 동안 그 옆에 서서 가족의 가드 역할을 맡고 있는 아빠 거위.

 

너무 가까이 접근한다 싶은 사람들에겐 날개를 활짝 펴며 대번에 방어태세를.^

 

 

 

 

 

"우리 아이가 반이나 학년에서 몇 등인지 알 수 있나요?"
주로 한국 학부모들에게서만 접할 수 있는 질문이다.
이곳 교육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신 때문이겠지 하며
여기선 학생들 등수 같은 건 매기지 않는다고 답변을 해드리지만
돌아서는 뒷모습에서 '설마 그런 게 없을 수가 있겠어' 하는 미심쩍음이 엿보일 때가 많다.


학생 등수를 무 자르듯 일괄적으로 매길 수는 없는 일이다.
수학이나 과학, 미술 경시대회같이 평가 기준이 명확한 경우면 몰라도
재능있는 분야가 다른 학생들을 어디 학과 성적 한가지만으로 딱 잘라 평가할 일인가.
더구나 개개인의 특성과 재능을 최대 활용시킬 수 있는 보다 개선된 평가 방법에
나날이 공과 비용을 들이는 이곳 교육 시스템에서 말이다.


물론 성적 우수자들을 위한 우등상 수상이 이곳에도 있다.
그렇다고 등수 위주로 그 대상을 뽑는 식은 아니다.
디테일이야 이 지면으로 다 말할 수 없지만,
예컨대 주 정규 과목 점수가 기준점 이상만 되면
대개가 다 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처음 이곳 시스템을 접한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우리 애 말로는 오늘 강당에서 우등상 수여식이 있었는데
수상자들이 전교생 반쯤은 되는 것 같다 하더라고요. 설마 아니지요?"
란 문의를 받기도 한다.


특권의식이 보상되는 성적경쟁에서의 승리라 하기엔
그들에겐 그 수상자가 너무나 많은 것이리라.
상이란 모름지기 잘하면 더 잘하란 응원, 모자라면 더 분발하란 격려의 의미가 커야 한다.
최상위권이라는 희소성 충족의 매개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아니, 무슨 저런 프로그램이 다 있어.'
구시렁거리며 처음 몇 회분 이후로 <프로듀스 101>시청을 포기했지만
지금도 여전한 포멧인지, 어디쯤 가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일말 나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는 후련함과 뿌듯함보다는,
갈등과 불안을 과장스럽게 조명하고 부추기는 악마적 편집을 일삼으며
과당경쟁에 대한 문제점들을 흥미로 포장시키는 그런 예능프로그램들의 희생자가 되어
그야말로 루저란 불명예로 공개 스크린을 떠나야 하는 어리고 여린 참가자들,
심지어 일부에겐 자칭 "개망신"이 된 그 오디션이
평생 어떤 형태로 그들 인생에 스카(scar) 를 '프로듀스'할지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다.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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