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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랑교육이랑

Karen 은 어디에나 있다

 

교아님의 산속에서 만난 캐런 이야기를 읽다 보니

여름방학 써머프로그램이 시작될 무렵의 어느 날이 떠오른다.

 

대체로 써머프로그램은

그 교육구에서 매해 번갈아 지정한 특정 학교에서 모두 진행되기에

담당 교사들과 수업을 등록한 모든 타학교 학생들도 해당 학교로 출석을 한다.

 

내가 여름방학을 쉬기로 했던 그 해에는

우리 학교가  써머프로그램 진행 학교로 선정되었고,

내 교실도 수업 장소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수업을 맡은 타 학교 교사가 오기로 돼 있던 몇 시간 전,

교실을 비우기 전에 정리를 좀 해 놓고자 혼자 남아 케비넷 정리를 하고 있자니

어느 여성이 들어온다.

 

헬로우 하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내 교실에서 이번 방학프로그램을 진행할 초면의 타학교 교사였다.

장소도 알아두고 미리 수업준비도 해놓을 겸 일찍 들렀단다.

 

나도 이름을 밝히면서 내가 누군지를 말하려는데

듣기도 전에 대뜸 그녀가 이런다,

 

건물 청소하는 분인가 보죠?”

 

순간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청소하는 직업을 하대해서는 아니다.

태어난 곳보다 더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보냈음에도

단지 눈에 보이는 표면적 아이덴터티로 인해 당해야 하는

복선 깔린 은근한 케런질이 어디 이번뿐이던가.

 

교육계라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인들이라고,

예외일 순 없다. 

 

I’m sorry?

하며 도발적으로 그녀를 쳐다보니

여기 탁자도 좀 닦아줄래요?” 한다.

 

“What makes you think I’m a cleaner?”

 

날 청소하는 사람으로 생각한 이유가 뭔지 물었다.

예기치 않던 질문이었던지 잠시 멈칫하더니 당당한 표정으로

내가 케비넷을 닦고 있는 걸로 보였기에 그랬단다.

 

'착각'과 '착각을 가장한 케런질'을 구분 못할만큼 둔한 내가 아니다.

 

종종 쌈닭으로 돌변하는 나 이지만,

이렇게 착각으로 밀어붙이며 무죄 표정을 짓는 사람에겐,

더구나 다시 봐야 할지도 모를 같은 교육구에 몸담고 있는 동료 스탭이기에

끝까지 화를 내기도 딱히 애매하다,

 

설마 청소하는 분이 허락도 없이 남의 교실 케비넷을 이렇게 뒤적거리고 있겠어요?”

 

내 도전같은 물음에, Oh, I’m sorry 하면서도

말과는 다르게 그 표정엔 다른 감정이 섞여 있다.

내가 누구인지, 내 담당 필드가 무언지를 듣고 나서야

무례가 묻어나던 그녀의 톤이 조금은 다소곳해진다.

 

자신이 누구의 territory 에 와 있는지를 그제야 깨달았던 걸 수도 있고,

케런질 하기엔 고분고분한 상대가 아니란 걸 느꼈을 수도 있다.

 

 

 


 캐런(Karen) 이란, 교아님이 이전 포슽에서도 설명하셨듯

백인 우월주의에 빠져 쉽게 화를 내고 특권을 주장하며 뭐든 자기 맘대로 하려는

인종차별주의적 중년 백인여성에 대한 경멸적 은어다.

 

코비드가 픽에 달하던 몇 달 전,

인터넷과 메스컴을 뜨겁게 달궜던 유튜브 영상이 있다.

전형적 캐런이다.

 

 

미국 뉴욕 센츄럴파크에서 birdwatching(들새 관찰)을 하고 있던 한 남성,

공원에서 자신의 개를 목줄도 없이 산책시키던 한 백인여성에게

공원규정이 그러하니 개에게 목줄을 하라고 말하자

뜬금없이 극도로 흥분한 그녀가 다짜고짜 흑인남성이 자신의 생명을 협박한다며

휴대폰으로 경찰을 부르는 상황이다.

 

‘I’m gonna tell them there’s an African American man threatening my life.’

“어떤 아프리카계 흑인 남자가 내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찰에게 말하겠어요!”

 

그러고는 숨이 막혀 켁켁거리는 강아지를 손에 대롱대롱 매단채

그 남성에게 대들며 케머라를 치우라고 흥분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한 말이라곤 그저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것뿐이었는데,

그녀는 경찰과의 통화에서 계속 흑인 임을 강조하며

그가 자신과 개에게 협박을 하며 녹음하고 있다고 제멋대로 말한다.

 

이 영상이 순식간에 퍼지면서

이후 그녀 Amy Cooper는 동물보호 단체로부터 동물 학대로 공격당한 후

자신의 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자신의 직장인 투자금융회사로부터도 레이시즘으로 해고됐다.

 

뒤늦은 후회를 하며 자신은 결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말하지만

스스로 케런임을 인정하기가 그리 쉬운가.

 

캐런은 그 색만 다를 뿐,

어디에나 있다.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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