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랑교육이랑

시험치는 아이들 III





시험 셋째 주에 접어들었다.
오전 시험 벨이 울렸는데 여학생 자리 하나가 아직도다.
늦잠을 원망하며 지금쯤 눈썹 휘날리며 달려오는 중일까.
2주간 내리 진을 뺐으니 피곤하기도 할 거다.


늦잠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과목을 한 달 내내 하루 대여섯 시간씩 치르다 보면
수험자 고도의 긴장이 가끔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 나가기도 한다.
중간 휴식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 녀석을 교내 확성기로 수배하기도 하고,
구내식당에서 급우들과 우걱우걱중인 녀석을 검거해 오기도 한다.
이 중요한 시기에 정신줄을 놓다니 하며
자업자득식으로 시험을 망치게 놔둘 수만은 없는 일이다.


천하태평 늦잠을 잔다거나 급우와 수다를 떠는 그런 여유 아닌 여유가 부럽게도 느껴지고
어찌 보면 정신과적 측면에선 차라리 나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보는 것이,
어느 시험 때던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시험지가 갑자기 백지로 변하면서
바로 책상 위에 얼굴 묻은 채 기절하고 만 적 있을 만큼
시험 기간이면 거의 test anxiety 수준으로 예민해지던 내 학생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적당한 긴장감은 오히려 뇌 활성화에 좋은 역할을 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시험이란 말에 긴장감 전혀 없을 사람은 없겠지만,
너무 지나쳐 test anxiety (시험불안증) 수준에 이른다면 그건 분명 아킬리스건임이 틀림없다.
시험불안증이 있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급우들에 비해
백분위수가 약 12포인트 낮아진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반대로, 시험 불안감하곤 전혀 거리가 먼 듯 보이는 녀석도 있다.


성인 체격의 훨칠한 키에 성숙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 이 녀석은
안타깝게도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 장애) 스팩트럼이 있어
수업이든 시험이든 좀 차분히 장시간 앉아 있는 법이 없다.
시험 도중 절대 허락 없이 자리를 떠선 안 되는 사전 주의사항은 어디로 가고
쥐죽은 듯 조용한 시험장에서 뜬금없이 우당탕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화장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한다.


손을 먼저 들라고 했니 안 했니?

엄격한 얼굴로 주의를 주면 녀석은 마치 꾸중 들은 초등생처럼 멋쩍은 얼굴을 하고는
대번에 자기 자리로 쪼르르 달려가 앉아
다시 어느새 초등생이 되어 씩씩하게 저요 저요! 팔을 번쩍 쳐든다.


그뿐인가, 간혹 시험 도중 녀석과 눈이 마주칠라치면
장난스런 표정으로 내게 윙크를 날려 날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뜬금없이 thumbs-up을 보여 날 어리둥절 하게 한다.
하는 짓은 천방지축이어도 이거이 도저히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가 없는 녀석이다. 컥.


사실 이처럼 학교환경에는 ADHD 스팩트럼을 가진 학생들이 의외로 꽤 된다.
ADHD 스팩트럼은 여학생보단 남학생에게 압도적으로 많은데,
개중엔 교육적 측면의 정신과 치료를 병행시켜야 할 만큼 도수가 높아
일반 수업을 들을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이 녀석처럼 차별화된 고난도 프로그램에 들 만큼 아이큐와 학업 성적이 탁월한 경우도 많아
그 일부 장애증세만으로 학생을 차별하거나 격리시켜서는 안되는 것이다.

 


1920년대 12학년(고3) 졸업반 학생들 앨범




급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아직도 자리가 비어있는 그 학생의 부모였다.
지난 며칠간 시험이 잘 안된 것 같다며 밤새 고민하는 듯하더니
아침에 이르러선 차라리 나머지 시험을 포기하리라는 딸아이를
조심스럽게 다독거려 지금 함께 오는 중이라는가 보다.
 

다행이다, 그래도 그 정도의 일이어서.
시험결과가 목표치에 이르지 못할 거란 두려움은
수험생으로 하여금 자해까지 하게 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어 왔기에
너무 늦어버리지 않는 한에서의 지각은 차라리 다행이다 싶은 거다.


Do your best and don't worry.
무수한 시험을 치러왔고 또 치러갈 우리 성인들에게 조차도 결코 쉽지 않은 말이지만,
그래도 '시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란 동시대를 완전 엇나간 울림 없는 격려보다는
조금은 더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이곳 캐나다에선 근래 한층 더 심화된 전인적 교육을 위한 새 커리큘럼을 도입한 상태다.
시험이란 걸 완전히 없앨 이상적 대안이 아직 없는 바에야
찍기식 암기위주가 아닌 이해와 깨달음이 우선시 되는
보다 깊이 있는 평가방법을 적용해 보자는 것이다.
 

아래 어린 아들의 시험 불안증 사례를 다룬 한 어머니의 스토리가 있다.
이 스토리를 대하며 나 자신 과연 그녀의 선택이 정말 옳다고 기꺼운 박수를
쳐 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해 본다.


***


How test anxiety affected a young boy 
(시험 불안증은 한 아동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 : 원문)

By Kathleen Muthler


정확히 3년 전, 제 아들이 초등 3학년이던 무렵였어요.
아이가 생전 처음 PSSA (펜실베니아 학교 평가 시스템) 를 치르기 직전,
좀 초조해 한다는 게 느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시험 바로 전날 밤, 아들은 자신이 시험 치를 준비가 돼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집니다.
자신이 느끼기엔 시험에 필요한 모든 걸 다 알고 있지 않다는 거지요.


우린 아이에게 괜찮을 거라고, 이 테스트들은 별 의미가 없는 것들이며,
시험에 관계없이 4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음을 확신시키느라 새벽까지 깨어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기 선생님과 학교가 모두 자신에게 잘 할 거란 기대를 하고 있단 걸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꼭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지요.


이후로 역시 매년 이런 일이 생겼어요. 4학년과 5학년에 가선 더 심해졌는데요,
시험 준비에 있어 알고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이 해마다 점점 더 일찍 시작됐습니다.
5학년에 이르러선 거의 모든 과제물과 수업 걱정을 했습니다.
시험 전날 밤마다 아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엄마인 나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아들은 지금 6학년예요. 

이제는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를 모든 시험에서 손 떼도록 공식적 결정을 제가 내린 상탭니다. 
더는 아무 시험도 보지 않습니다.
공부에 대한 아이의 태도가 요즘엔 아주 달라졌지요.
시험의 서곡에 해당하는 그 불안감이 아이에겐 더이상 없습니다,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낄 필요가 없단 걸 아이가 알기 때문이지요.


PSSA시험을 치르기 전 수년간 학교생활과 공부를 그리 사랑했던 아들,
그런 예전의 내 아들을 되찾았음이 엄마로서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모릅니다.
아이에게서 작은 변화가 느껴졌고, 아이의 공부에 대한 자세가 조금씩 달라지는 걸 알 수 있어요.
아이가 개념 파악을 금방 못한다 싶으면 함께 의논하여 해낸답니다, 공포와 불안 없이요.


아들의 높은 성적이 학교의 AYP(아동낙오방지법에 의거, 학생 평가 테스트를 통해 달성해야 하는
각 학교의 "연간 적정 향상도")에 일조하고 하곤 했는데 이젠 그렇지 못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압니다,
엄마로서 내 아이와 아이의 앞날에 가장 최선이 되는 일을 제가 하고 있다는 것을요.



시험치는 아이들 I

시험치는 아이들 II



- 엘리 -




'문화랑교육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열 부추기는 사회  (0) 2016.05.08
복(複)임신  (0) 2016.02.08
아이와 사병  (0) 2015.12.20
결혼 후 성씨(姓) 를 바꿀 것인가  (0) 2015.05.03
특혜  (0) 201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