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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얘기저얘기

캠핑, 갈수록 태산

출발 하루 전

 

그렇다고 이번 캠핑의 프리마다나인 낚시 & 보트를 포기할 순 없는 일이다.

맞춤형 특수 개조까지 하며 준비 내내 아이처럼 들떠 있던 그가 아닌가.

 

Ferry와 캠핑장 예약금을 모두 날리더라도

방법을 찾을 때까지 출발일을 좀 늦출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묘책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다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떠 올랐다. 

U-Haul!

그래, 바로 이삿짐센터. 이사용 대형 밴을 렌트하는 거다.

 

남편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부랴부랴 U-Haul로 향하고

그리하여 우리의 프리마다나는 이삿짐 칸에

이삿짐 아닌 이삿짐 되어 무사히 구제될 수 있었다.

 

 

 

드디어 출발

 

파란만장한 준비과정도 끝나고 드디어 출발이다.

오전 8시로 예약해 놓은 ferry를 향해 일찌감치 출발했다.

 

코비드로 화장실을 제외한 모든 시설은 closed 상태라

사람들은 2시간 남짓 항해 동안 대개가 차 안에 머물렀다.

 

마침내 밴쿠버 아일랜드의 Nanaimo에 도착하고

이제 4시간여를 운전해 Port McNeill까지 가야 한다.

그곳에서 또다시 훼리를 45분쯤 타고 Malcolm Island의 Sointula 빌리지에 도착해

거기서부터 또 10분쯤 운전하면 우리의 목적지인 Bere Point 캠프그라운드가 나오는 거다.

 

집에서 목적지까지 거의 8시간 소요되는 장거리 루트다.

 

 

 

중간중간 쉬며 네 시간 넘게 운전해 도착한 Port McNeill 항구에서

Sointula행 훼리를 탔다.

 

훼리가 Sointula에 도착할 즈음,

셀펀을 들여다보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나지막한 비명을 지른다.

 

“Oh my god....”

 

뭔가 일이 크게, 아주 아주 크게 틀어졌을 때 나오는 그의 표정과 음성을 난 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머리를 두 팔로 감싼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무심코 캠프사이트 예약 디지틀 영수증을 오픈했는데

예약 영수증 맨 밑에 삽입된 깨알 문구가 이제야 눈에 띈단다.

 

- 도착 예정일 하루 전 반드시 예약 재컨폼하기 바람. 

그렇지 않으면 예약금 미환불과 함께 예약 취소될 수 있음 -

 

왜 이 문구를 놓쳤을까, 왜, 왜.

금방이라도 울음 터져 나올 듯 좌절해 하는 그를 위로하기엔

내 머릿속도 이미 하얘지기 시작했다.

 

달랑 하나 남았던, 복권 당첨 같았던 우리의 스팟은 이제

이제나 저제나 애타하던 행운의 누군가에게 두말없이 넘어갔을 테고

그렇게나 고생하면서 준비한 지난 몇 주가 순간 스쳐 지난다.

 

어쩐다.

머릿속으로 플랜B를 재빨리 구상해 본다.

 

다른 멤버들은 우리 보다 이미 하루 앞서 가 있는 상태다.

그들 캠프사이트 한 귀퉁이에 꼽사리 끼거나,

최악의 경우 화장실도 없는 이름 없는 외딴 어느 곳에 차를 파킹하고

이삿짐 컨테이너 안에서 홈레스처럼 지내다 오는 길이다.

 

 

 

훼리에서 내리자마자 일단 목적지로 직행했다.

원래는 중간에 마을을 들러 캠프화이어용 firewood와 식수를 살 작정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

 

30여분을 지옥 같은 마음으로 달려 캠프그라운드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새 오후 다섯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캠프 관리사무실을 찾았으나 이미 퇴근한 건지 아무도 없다.

관리자라도 있다면 어떻게 애걸이든 협박이든 해 볼 텐데 이젠 남은 희망마저 없다.

 

아니, 그렇게 중요한 컨디션을 그렇게 깨알 같은 문구로 맨 밑에 숨겨 놓으면

몇 사람이나 그걸 읽겠어! 정말 예약 취소된 거면, 나 고소 할 거야!

이건 내 진심이었다.

 

일단은 우리가 예약했던 사이트에 가 볼밖에 없다.

 

입구를 지나 잘 정리된 나무숲 사이사이

각각의 예약번호와 이름이 쓰인 팻말과 함께 지그재그로 드러나 있는 캠프사이트들을 지나

두리번거리며 우리 예약 번호를 찾아 들어간다.

 

한참을 들어가니 저만치 우리 예약번호가 보인다.

한 발짝 두 발짝...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입구에 다가서는데

 

아...

공간은 비어있었다. 그리고...

입구에는 우리 예약 번호를 단 남편 이름이 쓰여 있었다.

 

순간, 누구랄 것 없이 동시에 부둥켜안은 채 우린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렇게나 행복한 순간이 언제 우리에게 있었을까.

 

 

 

정신 차리고 앞으로 눈을 돌리니 와우! 그야말로 장관이다.

선별의 여지없이 딱 하나 남았던 스팟이기에

그저 길 옆이라도 괜찮으리란 소박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웬걸, 이건 전경 탁 트인 패러다이스 수준 아닌가.

 

그래, 시작이 어찌했든 끝은 창대하리라.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 좋다던 화장실과 샤워 시설은 안 보인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코비드 때문에 모두 closed 라는 거다.

 

대신 이동 화장실과 물 꼭지 달린 대형 물탱크들이 안내문과 함께 군데군데 배치돼 있다.

- 코비드 안전을 위해 물에 소량의 표백제를 탔으니 손 세척에만 사용할 것 -

에휴...

 

몇 가지 짐을 내려놓은 남편은 

캠프화이어용 firewood와 식수를 구하기 위해 섬 시내로 출발하고,

난 그사이 혼자 끙끙거리며 기어코 텐트를 쳐 낸다.

 

탁 트인 바닷가를 앞에 두고 헤드폰을 끼려는데

우리보다 하루 먼저 와 있던 친구 일행이 어떻게 알고 우릴 맞으러 들어온다.

 

남편은 나무와 물을 사러 갔다는 내 말에 친구들 왈,

“에구, firewood는 여기 캠프 관리자한테서 10불이면 한 수레나 살 수 있는데.”

 

우리의 그간 에피소드와

UHaul 이삿짐 밴을 몰고 온 사연에 한참 배꼽들을 잡고는

남편이 돌아올 즈음 다시 오겠노라며 친구들은 자신들의 사이트로 돌아갔다.

 

조금 있으니 어느 나이 지긋한 여성이 나타났다. 

캠프관리자다.

예약 번호와 이름을 확인하곤 내게 웰컴인사를 건네는데,

우리의 혼비백산했던 순간을 전해듣곤 정중히 사과한다.

상투적인 문구란다.  예약금까지 낸 캠프사이트가 취소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단다.

 

띠웅.

 

열심히 텐트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을 옆 풀숲에서 빠꼼히 쳐다보는 있는 사슴 한마리 .

 

남편이 시내에 갔으니 캠프사용료 받으러 나중에 오라며 그녀를 보낸 후,

한참을 오디오북에 빠져있다 고개를 들었을땐 벌써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글구보니 시내로 나간 남편은 아직 무소식이다.

꼬르륵.

 

다녀갔던 친구들이 다시 왔다.

“엉? 아직도 안 돌아왔어? 왕복 30분이면 충분할 거리를.”

 

또 오겠다며 돌아간 친구들이 두어 시간 후 다시 들렀을 땐

이미 9시를 향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틀림없다!

친구들은 섬 시내를 향해 급히 차를 출발했다.

 

사방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고,

얇은 옷차림의 내 몸은 훌쩍 낮아진 기온에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큰 바닷가 아닌가.

 

셀펀 리셉션도 없는 곳이다.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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