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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와의 추억

케이와의 전쟁

 

 

 

 

 

며칠전엔 케이 때문에 제 무릎과 팔에 멍이 들고 까지는 일이 있지 않았겠어요.
고집 불통 딸내미와 가끔씩 치르는 전쟁 후유증이랍니다.


일전에 그 유명한 아프리칸 그레이 '알렉스' 연구조사에 관한 포슽에서도 제가 언급한 바 있지만.
앵무들의 지능지수는 인간아기의 5-7세에까지도 이르고
감성지수 (EQ)는 2살배기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대충 케이와 저의 파워스트러글 발생 원인을 이해하실런지요. ㅋ


암튼 그 날 오후의 제 집 거실 풍경은,
티비 앞 안락의자에 흔들흔들 온몸을 맡기며 늦은 오후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던
프로타거니스트인 엘리가 있고,  그 앞 테이블 위 미니놀이터 횃대 위엔
동시상영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안타거니스트 케이가 있는 모습입니다.


케이의 미니놀이터를 보자면, 한가운데 T 자형 횃대, 그리고 바닥엔
횃대에서 먹다 떨어지는 먹이 부스러기라던가 케이 응가를 받아낼 수 있도록 받쳐진
넓직한 네모 나무받침이 있습니다.


어느땐가부터 케이의 '위생관념'에 문제가 생긴것이,
전에는 이 놀이터 바닥에 있는 음식찌꺼기를 마치 백설공주 바퀴벌레 바라보듯 해왔음은 물론,
쌀 두톨만한 제 응가와 마추칠라치면 혹여 발이라도 더럽힐새라 그 위를 폴짝 건너뛴다던가
옆으로 삥 돌아 다니곤 해서 '거참 깔끔도 해라' 하는 찬사를 한 몸에 받곤 했었는데,


아, 이지지배가 얼마전 저 혼자 꽝알 미혼모가 된 다음부터는 몸빼바지 아짐이 되야 버렸는지
그 위생관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새장이든 놀이터든 바닥에 뭔가 떨어져 있다 하면
눈빛 반짝, 입맛 쩍 하는 겁니다.


과자부스러기가 응가와 범벅되어 있던 말던 고걸 콕 부리로 일단 찍어보고
응가맛이 나면 그제서야 에잇 퇫! 퇫! 하는거지요. 
야야, 그걸 꼭 찍어먹어봐야 된장인줄 알긋냐.


그런 이유로, 가능하면 케이 주변의 바닥엔 아무것도 없도록 항상 청소를 해두는 편이지만
시점을 놓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아먼드 먹다가 열심히 졸고있는 케이

 

 

좌우지당간, 그런 거실 풍경속에서 문득 꾸벅꾸벅 졸고있는 케이를 렌즈에 담아야겠단 생각이 들어

케머라를 살그머니 집어 들어들고는 케이를 향해 줌 인을 하기 시작했지요.
찰칵 찰칵 셔터누르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깬 케이, 한동안 멍하니 날 쳐다보더니
갑자기 뭔가 레이다 망에 잡힌 듯  고개가 바닥을 향하는 겁니다.
엉거주춤 바닥으로 돌진해 갈 기색인걸 보니 보나마나 바닥에 뭔가 구미당기는 먹이 부스러기가

눈에 띄였던게 분명합니다.  


손가락으로 uh-oh! 하며 어림도 없다는 싸인을 보냈지만, 봤는지 못봤는지 그냥 바닥으로 돌진합니다.
큰 소리로 질러대는 No! 소리에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 다시 횃대로 후다닥 원상복귀.
조금 지나자, 예서 포기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또 내려가는 케이,
한층 더 높아진 음소리로 I said No! 하는 나, 
다시 쪼르르 원대복귀하는 케이.


이러기를 몇 차레, 다시 렌즈에 몰입하고 있는 잠잠한 틈을 타
케이가 눈치를 보며 또 바닥으로 슬금슬금 내려갑니다.
그러더니 왠걸, 이번엔  No! 고함에도 눈하나 깜짝않고 순식간에 바닥에서 뭔가를 낚아채 입에 물고는
횃대로 또르르르 올라가더니 바로 우걱우걱 씹기 시작하는 겁니다.
가만보니 엘리가 두 손으로 무거운 케머라를 얼굴에 들이대고 있느라
자길 저지할 여력이 없을거라 판단했던게 틀림없습니다.


oh no....
너무나 순식간 일이라 급한 마음에 한손엔 카메라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장님마냥 더듬더듬 쭉 뻗어 케이 손에 든 걸 빼앗아 보려 끙- 용을 쓰지만
catch me if you can~  약 올리기라도 하듯 케이는 조금씩 뒷걸음질 칩니다.


끄응... 조금만 더.. 조금만 더 ... 팔을 한껏 뻗어 드디어 케이 몸에 닿을랑 말랑 하는 순간,
안락의자가 앞쪽으로 와르르 무너지면서 내 몸이 앞으로 꽈다당...  고꿀 고꿀.
그 와중에도 손에 들고 있는 케머라를 온몸으로 사수하려는 일념으로 인하야
이마가 테이블에 까지고마는 희생까지 동원되었습니다.
아, 밤탱눈 면한것만 해도 어디.




 

 

그 북새통에 피난이라도 가듯 케이는 푸드득 거실 저쪽끝으로 홀짝 날라가 버립니다.
커튼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려서는 까진 무릎과 팔꿈치를 호호 불며

열받은 황소마냥 콧김 쒹쒹 내뿜고 앉아있는 날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쯧쯧, 별거 아닌걸 가지고 왠 난리법석을 떨더라니... 하듯.

 

제가 케이에게 완전 KO패 당한거... 맞죠?  헐.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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