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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랑교육이랑

난 그렇게 생각했었지

 

 

 

 

 

캐나다 서스캐치원의 Shelley Wright 라는 어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의  고백성 글이
교원들 공감과 감동을 얻으며 글에서 글로, 이메일에서 이메일로 교원사이에 퍼지고 있습니다.
교직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그리고 한번쯤은 이같은 번민이나 딜레마에 빠져 보았을 법한 그런 글이 아닐까 싶습니다.

 

 

 

 

난 생각했었지,
개학 첫날 숙제를 내주는 일이 그들 최선이 요구되는 엄격한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수업분위기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젠 깨달았네, 내가 한 일이란 그들이 더 열심히 하겠지,  내가 그일을 맡은 사람이란걸 알게 되겠지 하며 

내 학생들을 겁주려 해왔던 것임을.


난 생각했었지,
이상적인 학생이란 품행이 단정하고 말 잘 듣는 학생이라고.
하지만 지금 난 걱정이 되네,
성적 'A' 를 받는 일이 이 현실세계에서 정말 어떤 큰 의미가 있을 거라 믿는 아이들이 걱정이 되고,
자신들 학업성취로 인해 성공적 삶이 쉽게 보장될거라 믿는 아이들이 걱정이 되네.
학교에서 잘하는 것은 학구적으로 제법 괜찮음을 의미할지는 몰라도
그 밖의 다른 많은걸 보장해 주는건 아니라는 걸 난 깨닫기에 이르렀네.


난 생각했었지,
읽기란 고등학교 교사인 내가 가르칠 일이 아니라고.
이제 난 생각하네, 학생들이 유치원부터 고3에 걸쳐 이들 전략을 배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난 생각했었지,
어떤 학생들은 학교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게으르고, 동기 부여가 안되고, 학업에 뒤떨어지거든.
마치 공부를 잘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나 하듯 말이지.
이제 난 깨달았네, 문제는 바로 그 재단된 듯한 학교라는 것을.
우리 아이들은 배우기를 좋아하지, 아주 자연스럽게 배우거든.
단지 내가  납득시키려는 것들을 그들이 믿지 않을지 모른다는 것.


난 자기 통제가 무엇인지 배웠다.
자기 통제란 자신의 학습과 행동을 평가하고 컨츄롤 하는 과정으로 정의되어 있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배움을 비평적이고 정밀하게 반영할 수 있는 학습자들이 바로 자기 통제된 학생들인 것이다.


연구조사를 살펴보자면:
자기통제가 강조하는 것은, 정보 습득과 전문기술 확대, 자기계발이란 목표를 향해
행동을 모니터하고 지휘, 조정하는 개인에 의한 자율과 통제이다.


특히, 자기통제된 학생들은 그들 학업의 강점과 약점을 인식하고 있는 학생들이며,
그날 그날의 도전적 학업과제와 씨름하는데 적절히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 학생들은 지적능력에 대해 노력을 통해 능력이 증가된다는 향상믿음을 가지고 있고

(고정믿음과는 대조적인), 그들 성공 혹은 실패를 자신들의 통제에 담긴 요인들 탓으로 돌린다.


자기 통제된 학습자인 학생들은,

어려운 과제를 떠맡고 배움을 실천하며, 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증진시키고
노력을 기울이고 하는 기회들을 통해 학문적 성공을 낳을 수 있다고 믿는다.
어느정도는  이들 특징들이 왜 자기통제된 학습자들이 대개 높은 ‘자기옹호감’을 보이는지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교육심리학 문헌에 의하면, 연구조사가들은 이들 특징들을 학교

그리고 그 외의 곳에서의 성공과 연결짓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8개월 전까진 자기통제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이 유치원부터 고3에 걸쳐 우리 학생들에게 개발시켜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란 것을 이젠 안다.

 

 

 



 

더 이상 꾸역꾸역 주입하지 않기


난 생각했었지,
교사로서 내가 할 일은 학생들에게 내가 가진 지식을 채워주는 일이라고.
그 전날밤  인터넷을 뒤져 막 수집해 낸 지식이라 할지라도 말야.
강의는 내 교실에서의 주된 작업방식이었거든.


난 지금, 탐구적 수업이란 '힘을 북돋아주고' '해방시켜 주는 것' 두가지 다라고 믿는다.
내가 내 학생들에게 시범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술은
'학습방법'과 '학습에 대해 논하는 방법' 인 것이지.
내 학생들을 요란한 빈수레로 보는게 아닌, 변화 능력을 가진, 나 자신의 배움에도 줄게 많은
반사적 학습자라고 믿게 된거야.  그들 자신이 능숙한 탐구인들임을  학생들 스스로 증명해 낸거지.


난 생각했었지,
내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고.
물론 이것이 훈육과 품행 문제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이제 알았네, 교과과정 선택에서부터 과제물 창작과 평가 기준 공동제작에 이르기까지
내 학생들도 우리 학습환경의 공동디자이너가 될수 있다는 것을.


난 생각했었지,
컨텐츠는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헛, 내가 웃겼던거지.  구글세상에선 내가 한때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정보들 대부분을
단 몇초만에 찾아낼 수 있는 것을.  정보 제공자 역할을 별 쓸모없게 만들면서 말야.
지금의 내 생각은 어떠냐 하면,  예컨대 협동이라던가 비판적 사고, 풍부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는
그런 기술같은 것이 훨씬 더 중요하더란 말이지.
그래 난 지금 기술들을 가르치기 위한 컨텐츠를 이용하고 있는거야,
난 하나의 기술 제공자.


난 생각했었지,
참여가 저조하다고, 공부에 관심이 없다고 학생들을 야단침으로 해서 긍정적 반응을 얻을 것이라고.
이제 난 깨달았네, 만약 우리시간과 노력를 투자할 가치가 있을만한 어떤 프로젝트에
우리가 열심히 공을 들이고 있다면, 굳이 누군가의 꼬드김을 받을 필요가 없쟎은가.
학생들도 마찬가진거야,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하면 그들은
우리가 애초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모든걸 쏟아 부을 거라는 거지.
학생들이 종종 우리 기대에 반항을 하는 건 우리가 그들에게 그럴 기회를 주기 때문일거야. 


난 생각했었지,
숙제란 건 참 중요하다고.  
이제는 느껴, 내가 그간 내주었던 숙제들 대부분이 내 학생들 배움에 별 효과가 없었던 걸.


난 생각했었지,
에세이란 영어수업의 성배와 같은 거라고. 

지금의 난 진심으로 믿는다, 내가 가르치는 의사전달 수단중에 제일 쓸모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적어도 다섯 단락 형식의 에세이란 걸.
난 여전히 내 학생들이 주장을 설득력 있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지만,
그들은 비쥬얼과 오디오 형식을 이용해가며 블러깅과 소셜미디아를 통해 그 방법을 터득하고 있쟎은가.

 

 

 

 

82% 가 진정 의미하는 것이란?


난 생각했었지,
성적은 중요하다고.  아무리 잘해야 모두 임의적인 것일뿐이란 걸 지금 난 깨닫는다.
82%가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내 학생들에게 질문을 해봤지. 그들도 모른다네,
사실은 나도 잘 모른다는 것이지. 나도 성적이란걸 모두 없애버렸으면 좋겠어,
그리고는 순전히 피드백으로 옮기는 거야.
피드백이 구두로 받을 수 있는거면 더 좋겠지.
내 학생들이 성격형성에 필요한 피드백을 많이 받는다면 자신들이 학습자로서 어느만큼 와있는지 알 수 있을거야.
그러면 그건 곧 배움에 관한 것이 되는 거지, 점수와 등급이 아닌.


난 생각했었지,
학교 최고의 학생들에게 AP나 IB수업을가르치는 일은 고등학교 교사들 경력에 있어서의 절정이라고.
이제 난 알았네, 그간 난 구속복(straitjacket)을 입고 있었던 것을.


난 생각했었지,
테크널러지라는 것은 단원 끝날때쯤의 프로젝트에 검색용도로 이따금씩 사용되는 것이라고.
이제 난 알았네, 그것은 실로 학습과정 모든 단계에 접목되어야 한다는 것을. 


난 생각했었지,
시험은 모든 단원이 끝날때 필수적인 거라고.
이제 난 알았네, 깊이있는 학습이란 너무나 복잡한 것이어서 이런 형식으론 제대로 담아낼 수 없는 거라는 걸.
학습은  장기간에 걸쳐 여러 형태로 표현될 필요가 있다는 걸.


난 생각했었지,
K-12(유치원부터 고3까지) 로 된 현재의 구성방식이 잘 통한다고.
이제 난 알았네, 그것때문에 너무나 많은 우리 학생들이 실패를 했다고.
교사의 페이스에 맞춰 안간힘으로 읽기를 배우고 있는 초등 1, 2년생들을 좀 봐바,
그 작은 브레인이 아직 준비가 다 안된 아이들도 일부 있쟎아.

그들에게 필요한 건 오직 좀 더의 시간뿐인거지.


이것이 어디 초등학생들 뿐이던가, 고등학생들 중에는 추상적 사고가 개발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수학이라던가 다른 추상적 개념들에 힘들어 하는 학생들도 있거든. 
사실 나 자신만 해도 고등학생때 화학을 잘 이해하지 못했쟎은가.
하지만 지금 난 그걸 가르치고 있는 거다. 대학에서 그걸 배웠고, 성인이 되어서야 내 두뇌가 준비가 된 것.

 

 


 

잘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난 생각했었지,
아, 난  꽤 괜찮은 교사라고.
지금 난 깨닫는다, 내가 가진 지식으론 최선을 다했지만 내 많은 학생들에겐 몹시도 부족했던걸.
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갖춰주지 못한 것이다.


지난 6개월간 여러 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변형.대안교육 학생들로 부터 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이들은 소외된 아이들이며, 시키는 걸 제대로 따라 하지도 못하는 아이들이다.
그중 많은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될 때쯤이면 학교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또는 배움이란 것에 대해서 썩 좋은 감정을 갖지 않게 된다는 것.

불행히도, 많은 아이들이 중도탈락한다. 
소위 "평범한" 아이들이 더 잘하기 위해 우리 학교들을 필요로 하는 것 만큼이나
이들 아이들 또한 훨씬 더 달라지기 위해 학교를 필요로 하는 것인데...


그들이 성장하고 배우며, 자신스스로에 대해 보다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그런 환경이 모든 학생들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난 깨닫게 되었다.
모든 아이들은 성공하고 싶어한다.
그  방법을 그들이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인 것이다.
지금 난 믿는다,  내 학생들은 내가 그들의 정확한 질문들을 경청하고 대답해 줄 시간을 갖기만 한다면
자신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내게 보여줄 능력이 충분한 아이들이라고.

 

I'm becoming a better teacher by giving up a lot of what I used to think.
나는 점점 더 나은 교사가  되어가고 있다,  내가 생각해왔던 많은 것을 버림으로써....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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