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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랑교육이랑

단 한번의 기회

 

 

 

 

 

사유가 어떻든 간에 내 학생이 징계를 당하게 되면
그 훈육과 무관치 않은 입장에서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 퇴학처분이 떨어지는 경우엔 내 자식 일처럼 가슴이 아리다.


아시겠지만 학생들의 결강에는 excused 와 unexcused 란게 있다.
Excused 는 부모가 학교에 직접 전화를 하거나 찾아가
그날 자녀의 결강 혹은 조퇴 사유를 미리 학교측에 통보함으로써 학교로부터 양해가 구해진 것이며,
unexcused 는 아무 사유 제시가 없는 학생의 일방적 '무단결강'이다.


등교하기 위해 아침일찍 일어나는 일이 학생 당사자들에겐 얼마나 고역인가,
행여 늦을까 싶어 발을 동동 구르며 별별 방법으로 이런 자녀들을 깨우기 위한
우리 부모들의 피나는 노력은 또 어떠한가.


결국 깨우기에 실패한 부모는 학교 오피스에 전화를 걸어
"우리 아이가 아파서 첫수업에 빠져야 할 것 같습니다..."
라며 무단결강만은 면하게 해주고자 하는 고슴도치 모성을 발휘한다. 
(굳이 모성이란 표현함은, 이런 역할자들 대개가 어머니들이기 때문)


뿐인가,
학생의 무단결강이 발생하면 즉시 해당 학부모의 모바일로 삐리리 보고가 들어가는데,
'아니, 이녀석이 수업엔 안 들어가고 대체 어디로 간거지?
아침에 학교앞에 분명히 내려주고 왔는데...'
상황 파악은 뒤로 미루고 학교 행정부에 전화를 걸어
"아이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식의 급조된 변명으로

 일단 수습부터 하고 보는 모성도 적쟎다.

 

 

 


 

이런 모성은 또 어떤가.
지난밤 해놨어야 할 과제물 완성을 못해 그 또한 수업에 빠질 구실로서
부모에게 핑계전화를 부탁하는 자녀,
'해얄 일을 못했으니 그 뒷감당 역시 본인의 몫' 혹은
'난 내 아이 부족함을 거짓말로 감싸주는 그런 부모는 절대 될 수 없다' 자세로
끝내 쓴약의 효험을 고수하는 신사임당 같은 모성도 있다.


고슴도치 모성도 이해가 갈 법한 일이고,
신사임당 같은 모성에는 더욱 박수 보낼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를 아예 개입시킬 엄두조차 못내고
학생 자신이 그 역할극을 맡기로 결심할 때인 것이다.


학교 행정부로 전화를 걸어 자신이 그의 부모인양,
예컨대, "우리애 xx가 오늘 병원진료 약속이 있어 수업을 빠지겠노라" 하는 것이다.


전화음성만으로 부모 진위 여부를 행정직원이 파악할 길이 없기도 하거니와
의심이 간다해도 그걸 일일이 비집어 볼 순 없는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육계에 몸담은 사람들로서 우리가
우리 학생들을 믿지 못하면 누굴 믿으랴, 는게 기본 마인드이기에
거짓말이 확연히 드러나기 전까진 일단은 믿고 보는 편인게 그 바탕일 것이다.

 

 

 


 

그런 학생본인의 역할극이 선을 넘어도 한참 넘는 불상사가 생겼다.

졸업반인 이 남학생,
무단 결강및 학습태도 불량으로 여러 과목 교사에게 지적을 그간 몇차례 받았고,
급기야 학부모 앞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서신이 우편으로 보내졌다.


학부모에게서 아무 반응이 없자, 교사는 학생에게서 받아낸 그의 부모의 이메일로 접촉을 시도하고
학부모에게서 답변 이메일이 온다.
그러나 그 부모와 이메일을 몇차례 교환하는 과정에서

이슈에 대한 부모의 반응수위도 그렇고 뭔가 석연치 않음을 교사는 감지한다.


학생을 불러 학부모와 직접 통화해야겠다며 전화번호를 묻게 되고,
수차례 시도끝에 학생의 아버지와 힘들게 연결이 되어 상담일정을 정하지만,
그는 상담일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학생에게 사유를 물으니
부모가 갑작스런 일로 현재 모두 사업차 해외에 나가고 없으며
수개월 후에나 귀국할 예정이라는 의외의 답변을 한다.


결국 이 케이스는 나를 거쳐 부교장에게 위임 되어 조사가 착수되었고,
역시 부모와의 접촉을 위한 온갖 시도 실패 후
결국 학생 자신이 학부모가 되어 서신, 이메일, 전화통화 등 그간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가로채거나 혹은 도맡아 한 것으로 그 진실이 드러났다.


재고의 여지없이 퇴학이 결정되었다.
부모를 실망시키게 될 두려운 마음, 그리고 설마 학교측에서 알아내랴,
알게 된다해도  설마 퇴학까지야... 하는 상황 과소평가가 낳은 결과였다.

 

 

 

 

"Everyone deserves a second chance"

(누구에게나 다시 한번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라는 말이 있지만,
학생 신분으로서 뉘우침을 통해 용서가 되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못하는 것이 있다.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학칙중에 가장 엄격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honesty(정직성)' 에 관한 것인데,
'표절'이나 '시험부정행위'등이 모두 이 범주에 속하는 것이겠으나
수개월간 부모를 사칭함으로서 부모를 속이고 교사를 속이고, 또한 학교 고위관리부까지
거듭 속이는 일이야 말로 학생이 해서는 안될 참으로 위험천만한 비정직 행위로
한번의 실수로 인정하여 한번 더의 기회를 주기엔 그 대담성이 선을 한참 넘은 것이다.


그간 수개월을 집과 학교간의 교신을 중간에서 가로채 스스로 부모 행세하느라
전전긍긍하며 불안한 떨었을 당사자 마음은 오죽했을 것이며,
믿거라 하던 자식때문에 졸지에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은 그 부모 마음은 또 어떠했을 것인가.
상황보고를 받고 허겁지겁 학교에 찾아와 울며불며 매달리는 학생 어머니를 아픈 가슴으로 대하며
과연 부모가 일조할 수 있는 가정에서의 옳은 자녀훈육이란 어디까지일까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온갖 혼란과 좌절, 방황을 끝내 극복하고
캐나다로 미국으로 유럽으로 아시아로 각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며
짬을 내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오는 졸업생들,
작은 기념 선물들을 건네주고 간다.
보람이란거, 바로 이런 기분일거다.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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