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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

중독

 

 

 

 

 

 

누구에게나 한두가지씩 쯤 있을법한 묘한 버릇, 그것이 내게도 있다,
것두 지나치게 '청각적'인.


하기야 따지고 보면 발을 덜덜 떤다던가 코를 씰룩씰룩 거리는 등의
시각.민폐적 여차여차한 버릇들 보다는 다소 양호한 참아줄만한 버릇 아니겠는가.

 

 

발댠

 

먼 기억에 아직 남아있는,
그 시절 '봉순언니'는 아니더라도 아마 대충 어느집의 그쯤은 됐을성 싶은 온냐가 있었는데
그 온냐 버릇이 아주 독보적이었던지라,
당사자보다 한참 손아래 동생뻘 되는 듯한 니들만 보면
무조건 붙잡아서 귓볼을 이리저리 잡아당겨 그 안을 요리저리 살핀후엔
무작정 자신 무릎위에 눕히고 보는 것이 일이었다.
그리곤 주머니에 일년 365일 보관돼 있었음직한 꾀재재한 성냥개비던가 뭐던가를
잽싸게 꺼내들고 긴밀히 굴착 작업개시를 한다.
 

아프다, 그만 하고싶다, 고 징징 보챈 넘도 있었고
간질간질 간지럼에 몸을 부르르 떨던 넘들도...
결국엔 두렴 반 못미덤 반에 울음을 터뜨린 넘도 있었던가.
그럴때면 다급해진 온냐, 부랴부랴 껌 하나를 꺼내 그 아이 손에 쥐어주고
중도 하차하는 낭패를 보기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 최악의 '운수 베린 날' 일 때 뿐이다.


행각이야 어찌됐던 특이할 만한 것은 온냐의 이런 막무가내 돌팔시술이
단 한번도 대형 사고로 매듭지어진 적이 없었다는 거다.
간혹, 사실은 아주 빈번히 '산삼'을 캐는 날이 있었고, 또 그럴때면
이봐라... 일케 큰 바위덩이가 귀를 꽉 막고 있었으니 니 하마터면 귀 먹을뻔 했쟈녀. 
그니께 담부턴 니가 알아서 이 누야한테 자주 와야 혀.


심 봤다를 외치며 사뭇 의기양양해 하던 그 '추저분스런' 모습에 이맛살 찡그리던 나 자신.
그 후 성장하면서도 가끔 떠올라 나도 모르게 입술 사이에
비싯 웃음이 새 나오기도 했던 것 같다.


'복덩어리' 내 이름과 별반 달반 수준였던 그 온냐의 별명은 '보골이.
아가였을때 보골보골 박꽃 피어나듯 통통.탐스럽다 해서 그리 불리워진 거이라는데,
암튼 보골온냐 보골온냐 참으로 열심히도 불러댔었다.


그런데...
난 애들만 보면 귓속부터 궁금해져 라며
유난히 지저분한 애들을 보면 손이 간질거려 못견디겠다던 그 온냐의 통통한 무릎위에
단 한차례도 내가 뉘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까닭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밀검사나 일단 실시해 보자며 내 귓볼을 잡아당겨 본적이 있던것도.


'이담에 시집가면 2세덜 귀는 우짠디야 쯧쯧...' 속으로 했었는데
아직도 늦디늦은 미혼을 즐기고 있단 그녀의 세월지난 어느날 소식이었다.

 


전갱

 

그런 뽀온냐 기억이 새삼스러워진건
바로 내게 그 괴기스럽고 '추저분스런' addiction이 언젠가 생기면서 부터다.
분명히 다른게 있다면, 그녀 중독 상대는 불특정 다수 꼬맹들였고
내 중독 상대는 바로 나 자신 하나라는 것.


연기를 줄담배로 뿜어내야만 일에 몰입이 잘 된다는 애연가들처럼,
뭔가 생각에 골똘해 있을땐 어느사이 귀후비개가 내 손에 들려있다.
사실 귀후비개가 우리집엔 여러개 있.었.다.
화장실엔 물론, 거실탁자위에도, 컴터 키보드 옆에도...
심지어는 침실 램프아래에도.


물론 내 귀가 베큠을 매번 요할만큼 더럽거나 뭐 그래선 아니다.
한 차례라도 빠지면 왠지 찌푸둥한 매일 아침저녁의 습관적 샤워처럼 ,
어려운 수학문제 앞에두고 저절로 굴려지는 손가락 사이의 지우개 달린 연필처럼.


(이쯤되면, 내게 청진기를 들이대며 그 중독/혹은 버릇이 언제부터 시작됐느니,

그럴때 기분이 어떠냐느니... 등 정신분석을 열쒸미 하려는 혹자도 있겠지만서도...

그렇다고 딱히 반론이나 역설을 뒷받침할 그 어떤게 내게 있는것도 아니니까 뭐.)


그런데 그것(작업 기구)들이 어느날 모두 사라져 버린 참사가 발생한다.
보다보다, 참다참다, 말리다 말리다... 못한 동거인, 즉 남편이 모두 수거해 가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서 쉽게 포기될 내 중독이 아닌 것.
모리통 큰 물기제거용 면봉도 사용해 보고,
미용실에서 강제로 얻어온 헤어 실핀도,
황에 독이있어 위험하단 성냥개비도 아슬아슬...


그러나 터늘에 수차례 붉은 흔적을 내던 이 아쉰대로의 대용품들 역시
어느 날 누군가의 손에 의해 감쪽같이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궁시렁 댈 처지는 사실 또 아니었다.

 


절쪙


그 쯤의 어느 여름.
말레이시아에 일이 있던 남편을 겸사겸사 따라간다.


일 마친 후의 여유를 즐기며 말레샤 어느 대형 백화점에서
잰 걸음으로 옆사람과 보조를 맞추고 있던 내가
한편으론 그리고 긴박하게 귀가 간질거려 참을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그 당시 수시로 소지품 검열을 당해야 했던 탓에 청소작업 툴이 내게 남아 있을 턱이 없었고,
그리하여 핑계김에 그 '지나치게 위생적인' 습관을 깨끗히 고쳐보리라며
시도 때도 없는 청소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귀 굴뚝의 때 지났음 신호를 애써 묵살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 지독한 금단현상을 무시하기엔 상황이 그리 만만챦았다.
핑키로 대충 달래질 상황이 절대 아니었던 거다.
눈을 크게 뜨고 360도 두리번 거리며 그 무언가를 찾아 헤매던 중,
드디어 판매대 구석의 면봉을 발견한다.


어찌어찌해 동거인의 눈을 따돌린 틈을 타 그 면봉 한봉지 값을 대충 치룬 나는,
그 중 한개를 꺼내 더블 오 세븐의 매직펜처럼 교묘히 남모르는 쾌감을 즐기기 시작한다.


참고로, 
그 면봉은 플래스틱 면봉이 아닌 나무 면봉이었고,
특히 그 나무끝에 돌돌말린 머리통들이 비교적으로 아주 작았다.
나무스틱은 작업도중 부러지면 귀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 있다해서 시판 금지고,
봉 머리통이 귀 터늘안까지 진입 가능할 정도로 작은 것 또한
안전규격 위반인 캐나다 위생안전 품질기준과는 다른거였다.


면두루마리가 얇상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던, 그래서 더 더욱 시원했던
그 면봉으로 눈치를 살금살금 보며 샤핑을 즐기던 중.
아뿔싸...


면봉이 갑자기 똑! 부러졌다.
면봉 끄트머리가 귓속에 박힌채로 나무 스틱이 부러져 버린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면,
깊은 우물에 빠져버린 밧줄끊긴 바가지처럼 부러진 나무 끄트머리만 조금 매단 면봉이
이미 손에 닿지 않을만큼 터늘 깊숙히 들어 박혔다는 것이다.


큰일났다...

천둥소리가 두려워 멈칫거리고 있을때가 아니었다.
침을 한번 꼴깍 삼킬때마다 터늘 속 압력으로 인해 그 부러진 면봉은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던 거다.


반쯤 울음을 삼킨 더듬더듬 내 고백에 남편의 안색도 덩달아 하얘진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선 그 사건의 대소를 막론하고
절대로 따지거나 큰소리 내거나 거론하지 않는게 그의 막강한 장점일 것이다, 다행히도.'


이미 울음보가 터져 버린 나끌고
해결책을 찾아 백화점 안을 누비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우스운지 빙그레 웃고만 있는 무정한 직원,
무슨 방법이 없을까...며 걱정스레 작은 손전등을 건네주는 직원,
손톱소재용 집개와 가위를 주며 어찌 해보라는 직원,
귀를 아래로 향하고 깡총깡총 마구 뛰어보라는 직원...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면봉은 내 터늘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고,
급기야 백화점 차를 타고 근처 병원으로 옮겨질때 쯤엔
눈물콧물 범벅범벅, 정신적 shock 상태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걍


큰 레슨을 그렇게 치룬 그날 이후로 내 인내심은 한동안 그 기능을 최대로 발휘했던듯 싶다.
하지만, 원래 망각이란게 존재하지 않았으면 반복적인 실수로 인한 그 고통을
우리 인간이 끊임없이 겪을 일 결코 없는 법.


궁하면 통한다.... 듯, 청소 툴은 여전히 내 눈과 손에 의해 발견.발명되고,
눈에 불을 켜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는 한집안 사람과의 보이지 않는 장기전이 암암리에 이어지고 있던 어느 즈음.
필요가 있어 신체 검사를 내가 받게 된다.


오랜만에 키도 다시 재보고 저울에도 올라서 보고,
알록달록 그림책 위의 나비, 원숭이도 외쳐보고..
무엇보다도 양쪽 합해 여전히 3.0 넘는 시력짱을 고수하고 있는 나 자신에 새삼 히유 안도를 하는데...


귀에 이상한 기구를 들이대던 이비인후과 닥터,
"이룬... 오랫동안 귓병을 좀 앓으셨었군요."


엥, 평생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아본적 없는 내가?
결코 그럴리가 없다, 며 박박 우기는 내게,
"그렇다면... 아마 자연적으로 완치가 된 모양입니다... 그런 운좋은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이어진 내 '중독' 고백에 그는

"지나친 귀청소로 바디가드 역할을 하는 그 속의 작은 솜털까지도
마구 밀어버리게 되면 바이러스 침투가 수월해져서 쉽게 귓병을 앓게 됩니다.
심하면 청력 손상까지 이어질수 있으니... "

 

 

대단환


지금은 정말 필요할 때만 베큠을 하려 노력중이다.
감시인 검열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니 굉장한 발전아닌가.
세살에 시작된 버릇은 아니었기에 다행히 여든 가기 전에 고쳐질 모양이다. 흐.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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