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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랑교육이랑

시험부정행위와 한국인 학생들

 

 

 

 

 

시험 도중 화장실이 급하다기에 보내줬더니 어째 시간이 좀 걸리는 듯싶다.
아무래도 직접 가 확인해 봐야겠다 싶을 즈음에 녀석이 쭐래쭐래 온다.


시험장과 연결된 건물 내부에는 화장실이 있고, 그 이용 가능 시간과 방법은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하는데,
학생이 손을 번쩍 들어 허가를 청하면 시험감독은 규정 내에서 이를 허락하고
학생이 용무 후 제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감독의 눈초리를 멈추지 않는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녀석이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내 예민한 '육감'이 갑자기 발동한다.
"Empty your pockets." (주머니 털어 봐봐)
"왜...왜요?"
"글쎄 털어보라니까."


벌게지기 시작하며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녀석 얼굴.
쭈뼛쭈뼛 주머니에 손을 넣어 뭔가를 꺼내놓는데, 이런! 휴대폰이다.


일단 시험장 안에 들어서면 필기구와 마실 생수 외에는 그 무엇도 일체 허락이 안 되는 엄하디엄한 규정이 있다.
특히 휴대폰 소지에 대해선 두말할 나위 없고,
이미 2주째 진행되고 있는 시험에 때마다 주지시키는 그 중대한 규칙을 녀석이 모를 리 천만부당이다.


녀석이 주머니에서 꺼내놓은 휴대폰엔 아직도 불이 들어와 있었다.
맹세코 화장실에서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녀석의 다급한 변명이 있었지만
고의든 실수든 휴대폰을 몸에 지니고 있었단 그 사실만으로도 이미 규정 위반인 상태였다.


학교 최고간부회에 연락이 가고, 압수된 휴대폰은 간부회 손에 넘겨졌다.
학생 당사자 주장처럼 화장실에 있던 시간 동안 휴대폰이 전혀 사용된 바 없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조사 결과, 해당 시험과목 출제문제와 관련된 정보가 인터넷에서 조회된 근거가 확연히 드러났다.


지금 이들이 치르고 있는 시험은 학기 말이나 중간고사 같은 학교 기반 일반시험이 아니다.
대학 수준의 고난이도 수업을 받는 아이비 프로그램에 있는 수재.영재급 학생들이
그간 몇 년간 피나게 공부했던 노력의 결실인 '디플로마'를 따는 최종 관문이 되는 시험으로써
명문대 입학과 장학금 최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칠 아주 중요한 것이다.


학칙에 따른 근신이나 정학 같은 학교 징계가 가능하다면 학생 처지에선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시험성격이 그러하다 보니 학교나 교육청에선 손을 댈 수 없는
스위스 아이비 본부의 결정을 기다려 그에 따를 수밖에 없다.
해당 과목 점수가 무조건 '낙제'로 매겨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렇게 되면 내내 공들여온 디플로마는 수포로 돌아가는 것.

 

 

 



클릭 몇 번이면 온갖 정보가 우르르 쏟아지는 인터넷이 가능한 스마트폰이 주류를 이루면서
소위 '커닝페이퍼'라 속칭되는 'cheating paper'는 차라리 애교로 봐줄 정도로 이미
한참 구세대적 시험부정행위 방법이 돼가고 있는 요즘 현실이다.


취딩(커닝) 페이퍼는 그래도 만드는 과정에서 나름 요점정리라도 하는 최소한의 수고를 투자해야 한다지만
손가락 운동 몇 번만으로 깔끔한 박사급 답변을 찾을 수 있는 스마트폰은 그 차원이 다르니
그만큼 리스크를 감수한 학생들의 유혹도 만만치 않을터.


그뿐만 아니라 이젠 전자계산기도 거의 소형 컴퓨터와 맘먹는 기능이 가능한 까닭에
어느 계산기에 어떤 엄청난 기능이 탑재돼 있는지 시험감독교사들이 일일이 손에 꿰고 있을 방법이 없어
계산기가 필요한 물리나 화학, 수학과목 시험 시엔 정해진 계산기류만이 허용되며,
시험 실시 전 이들 계산기의 초기상태를 감독들이 일일이 검사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수준 높아져 가는 테크널러지에 학생들의 눈속임 작전도 함께 진도를 맞추면서
이를 방지하고자 하는 주최 측의 시험규정도 점점 날카로워져 가는 것이다.

 

 

 

 


지난 학교 중간고사 때에도 스마트폰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시험 도중 아이폰을 허벅지 위에 몰래 열어 놓고
위키피디아 내용을 열심히 베끼고 있던 현장을 담당교사에게 들킨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에긋, 또 한국 학생이란다.
올 학년 들어 한국학생들만 벌써 몇 번째다.


이렇듯 시험 부정행위로 적발되는 학생 중 한국인이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이유는 무얼까.
한국에서 어느만큼의 초등과정을 거치고 온 이민 자녀에게서 상대적 발생 비율이 높음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나.


윤리와 도덕을 도외시한, 결과 최고주의의 한국 정서가 과한 교육열과 맞물려
아이들로 하여금 학생의 도덕과 정직에 큰 가치를 두는 이곳 문화.교육분위기 적응 과정에서
심각한 부작용을 겪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부모의 마음으로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 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