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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랑교육이랑

선입견

 

 

 

 

"저도 아이비 클래스에 들어가고 싶어요."
자그마한 몸집으로 중얼거리듯 수줍게 묻는 남학생이 있었다.
강한 엑센트에 어눌한 영어구사력으로 보아 신규 이민자인 듯했다.


영어 원어민 학생들에게조차도 만만치 않은 수준의 공부를
저 정도 언어력으로는 보통 무리가 아니지 싶어
"이곳 캐나다에선 얼마나 오래 공부를 해왔니?" 물었더니
모국인 중국에서 9 학년(중3)을 마치고 지난 10학년 초에 이곳에 와서 지금
일부 ESL성 수업을 병행해 듣고 있단다.
현지 영어를 접한 지 이제 몇 개월 밖에 안되었다는 얘기다.


지난 성적표를 보니 여러모로 양호하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모국인 중국에서의 학업이고,
이제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그것도 모국어도 아닌 영어권 국가에서의 커리큘럼이란
완전 다른 이야기 아닐런가. 더구나 지금 ESL 수준에 아이비 클래스라니.


아무래도 보통 역부족이 아니겠다 싶어 생각을 철회하도록 충고를 했다.
아무렴 학생 당사자에게 조금이라도 손해나 불이익이 되는 선택을 학교에서 권유하려고.
그런데 그 녀석, 곱상하고 내성적인 듯한 모습하곤 달리 그 고집이 여간 아닌 거다.

아이비란 게 깊고 광대한 수준의 본토 영어실력을 요하는 프로그램이라 
비영어권 출신 학생들에겐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게 될 거라 겁을 주어도,
모자란 영어실력은 일 년 내로 남만큼 끌어올릴 자신이 있다며 막무가내다.


할 수 없이, 녀석 마음이 바뀌거나 지치길 기다릴 요량으로
클래스 인원이 찬 상태니 함 기다려 보니라 했더니
이 녀석, 하루에도 몇 차례 두 달여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찾아와 상황 체크를 하고 간다.


내가 졌다, 그래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함 해봐라.
이미 몇 개월 뒤처진 진도를 따라잡는 건 순전히 본인의 몫임을 주지시키며 녀석을 클래스에 합류시켰다.
녀석에게서 아뿔싸! 하는 후회의 소리가 머지않아 들리리라.


사실 교육열과 학구열이 상대적으로 높은 아시아 국가 출신들이
이런 '차별화된' 학습에 열의를 표하는 일이 그리 드문 건 아니다.
특히 '수학' 같은 경우, 한국과 중국은 그 평균 실력이 세계 으뜸으로 서로 선두다툼을 하는 수준이라
영어가 다소 부족하더라도 수학 과목 정도는 아이비 수업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는 언어가 일정한 수준으로 점차 늘기까진
영문표현의 질문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해 제 실력 발휘를 못 하게 되는
초반 억울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고,
그 초반 과정이나 시행착오를 거치기엔 상급생으로선 이미 시간이 너무 없는 것이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녀석의 아이비 클래스에서의 1년 반이 지나고,

이제 12학년을 맞아 내가 맡을 학생들의 지난 학년말 성적을 꺼내 재검토하던 중이었다.


문득 그의 이름이 눈에 띈다.
맞다, 이 녀석이 있었지.  내 담당 학년이 아니었기에 그간 잊고 있었다.
이제 아이비 가장 중요관문인 12학년 과정을 끝까지 버틸 수나 있을 텐가 하며
별 기대 없이 시니클하게 성적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점점 내 동공이 커지기 시작한다.

 

Mathematics (수학) : 100
Biology (생물) : 100
Chemistry (화학) : 100
Physics (물리) : 99
Spanish (스페인어): 98
CAS (체육활동 및 사회봉사) : 100

 

 

 

 

이럴 수가, 거의 모든 과목이 모두 만점에 육박하는 것이다.
언어라는 게 공식처럼 단시일에 달달 외워지는 것도 아니기에
B를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리라 했던 English 마져도 놀라운 성적이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알고 보니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교사경력에 그런 학생은 처음이라는 교사들의 이구동성이었고,
이는 비단 불과 1년 반 사이에 쌓아진 성적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
특별활동이나 사회봉사 같은 모든 비정규 교과과정에서마저도 솔선수범에 창의력이 돋보이는

비범한 리더쉽도 포함된 것이다.  심지어는 재즈기타 실력까지 그룹 리더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방과 후 따로 학원이나 개인교습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그의 집안이 넉넉한 것도 절대 아니다.


그의 타고난 천재성 몇 %쯤을 제외하곤
순전히 악착같은 개인 의지요, 노력의 결실이 아닐 수 없었다.
머리가 띵 해왔다.
어설픈 영어에 내성적 품새만으로 그를 시작 전부터 열외 시키려 했던 내게
그는 그런 식으로 보기 좋게 펀치를 한 방 가한 셈이었다.

 


 

선입견이란 참으로 불공평한 것이다.
성인사회에 가서는 그 사람의 외적 조건이나 유형 자산만으로
인격을 평가하는 오류를 우리는 종종 범하게 되고,


배움터에 있는 어린 학습자들에 이르러선
단지 언어가 충분치 않단 이유만으로 지레 기회를 막아 버린다거나,
성적이 부진하다 하여 그를 흠집난 인격쯤으로 평가절하시키는 등 우린 얼마나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가.


12학년이 시작된 지도 두 달,
이미 여러모로 내게 놀라움을 전해주고 있는 그를 위해 나는 세계명문대를 향한 추천서를 쓴다. 
아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한마디 더도 덜도 아닌, 진실 그 자체가 화려하고 대단한.
He has my highest recommendation 라고.

 

**

 

 

- 밴쿠버 False Creek 을 따라 -

 

 

 

 

 

 

 

 

 

 

 

 

 

 

 

 

 

 

 아뉘, 공공장소에서 버젓히 애정행각을?

 

  어 야아, 사람들 본다. 예의를 지켜!

 

헛.... 그녀에게 또 다른 연인이?

 

 아, 나 뽀뽀했다~~ 너무 좋아~~~~~

 

 아 행복해 ~~

 

 드디어 한 여성을 둔 삼각관계의 결투를!

 

켁켁, 기권!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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