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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얘기저얘기

그녀의 노우즈 잡

 

 

 

두 달간의 여름방학이면 더 오뚝한 코와 더 큰 눈을 만들기 위해
자국이나 특정국을 방문하는 학생들이 더러 생기곤 한다.
이 중엔 90%가 아시아계 학생들이고, 특히 한국 학생들이 다수라 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급우를 따라 성형 선진 한국을 다녀오는 중국계나 일본계 학생들도 없지 않다.


미용성형은 더는 여성의 전유물이 아님을 증명하듯
새 학년 시작되면서 갑자기 세워진 콧대와 두 눈 위에 없던 쌍꺼풀을 두툼이 올려놓고는
괜한 쑥스러움에 고개와 시선 처리가 어색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어느 남학생,
대학을 한국으로 지원했는데 대부분 면접시 인상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란 항변이다.
이해가 쉽진 않지만 무턱대고 이상하게만 볼 수도 없는 일이다.
지원 수는 넘치고 좌석 수는 턱없이 모자란, 기형적 경쟁률이 낳은 서글픈 사회 현실 아니던가.


막무가내로 쌍꺼풀 타령을 해대는 딸내미를 하는 수 없이 한국엘 데리고 갈 참이라던 어느 한국인 지인을
한 달쯤 지나 아직 붓기 빠지지 않은 퉁퉁 부은 눈으로 막 돌아왔음 직한 즈음에 우연히 마주쳐
딸내미 수술 잘하고 돌아오셨냐 물었더니
수술이 맘에 안 들어 요즘 딸내미가 이불 뒤집어쓰고 세상 끝난 양 울고불고 난리가 났단다.

 

 

 

그러고 보니 학생 때 일이 생각난다.
절친히 지내오던 한국계 급우 하나가 평소 납작한 코에 대한 불만을 은근히 늘어놓더니만
방학 시작 즈음 그간 파트타임으로 모아놓은 돈으로
드디어 '노우즈 잡'을 하겠다고 내게 살며시 귀띔 한다.


매스컴으로만 보고 들어왔던 그 성형수술을 남도 아닌 바로 내 측근에서 시도한다니
호기심 반, 두려움 반, 복잡한 기분이었다.


시술할 성형의사가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한국계 사람이라
일반 성형금액의 70% 정도만 받고 해주기로 했다며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런 거 부작용도 있다던데 걍 자연대로 사는게 안 낫겠니...' 란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학교 프로젝트 때문에 동행 못 해줄 사정으로 그녀 혼자 병원엘 찾았고,
좀 이르다 싶을 무렵에 내 휴대폰이 삐리리 울린다.


"나 어떡해... (영락없이 흐느끼는 목소리다)"
"왜 그래? 수술이 아파서 그래? 울지만 말고 얘길 해 봐."
"코를 너무 높이 세워놔서 얼굴이 아주 이상해져 버렸어..."
"수술 직후엔 붓기가 심해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잖아. 의사는 뭐라는데?"


의사는 상담 때 서로 합의했던 사이즈 대로 시술한 것뿐인데 이제 와서 왜 딴소리냔다.
아무리 붓기를 고려하더라도 코가 너무 커 보이지 않냐고 간호사에게 살짝 물어보니,
'사실 좀 그런 것도 같다'고 하더란다. (에고 참, 그 간호사하고는!)


세상 다 산 듯 훌쩍이는 친구 녀석을 보다못해 의사가 제안 하기를,
붓기 빠진 다음에도 여전히 크다 싶으면 다시 작은 실리콘으로 바꿔 넣어주겠다고.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그 의사를 이제는 못 믿겠다는 거다.
자기 코를 이 지경으로 사정없이 크게 만든 그 실력 보나마나인데
거기다 또다시 실수를 한다면 그때는 정말 대책이 안 설 것 같기 때문이라나.


"그럼 어쩔건대...?"
"다른 병원에 가서 재수술 할 거야."
"지금 막 해서 아픈 코를 어케 금방 다시 수술을 하냐?"
"하지만 이대론 단 하루도 못 기다릴 것 같은데 어떡해. ㅠ"


다운타운 모 성형외과와 통화했는데 고통만 참을 자신 있다면 당장 재수술 해줄 수는 있다더란다.
그 대신 이미 수술한 거 다시 빼내는 작업을 해야 하니 비용이 $$$ 추가라나.

"그렇게나 많이?  걍 기다렸다가 붓기 빠지면 다시 해주겠단 그 의사 말을 한번 믿어보지그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미 퉁퉁 부은 수술부위에 기어코 다시 한 번 칼을 대게 하겠다니.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성형 의지는 강하다...? 고 했던가,
그 비스름한 사실을 아, 두 눈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 수술엔 꼭 내가 같이 가 줘야겠다며
코 피부를 가르고 뼈를 집어넣고 하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소름 돋아 있는 나를 한사코 병원 앞에서 만나자 조르는 통에,

그러마고 약속을 떡 해버렸다.


병원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자니
저 멀리 한 여름에 모자 푹 눌러쓰고 허연 마스크를 두른 그녀가 나타난다.
눈물방울이 아직도 맺혀있는 그녀를 병원 한켠 의자에 앉히니,
"함 벗어볼게 놀라지 말어." 하며 그녀가 마스크를 벗는다.


헉, 얼굴이 정말 이상하네....
코를 온통 감싼 하얀 붕대로 인해 코사이즈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높아진 코와 그 엄청난 붓기로 인해 양미간 피부가 콧대 쪽으로 무척이나 당겨져 있는 상태여서

마치 긴 눈 여우처럼 돼 버린 것이다.


"네가 보기에도 정말 이상하지, 그치?"
"글쎄... 아직은 붓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고. 우리 일단 의사 의견을 들어보자고."


말이야 그리했지만 사실 회복이 불가능하면 어쩌나 싶은 절망감에
불쌍하고 안스러운 마음이 들면서 자꾸 눈물이 나오려 했다.


의사에게 보이니 다시 열어서 실리콘 크기를 실제로 봐야 알 것 같다고 한다.
그녀를 수술실에 들여보내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으려니
스탭 한 명이 수술실에서 나와선 내게로 다가와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이유를 물으니, 환자 여성이 내 코 크기와 형태로 해줬음 한다길래 확인차 나온 것이란다.
평소 내 코는 쳐다도 안보던 녀석이 내심 제 눈에 안경이었던가 보다. 풋.


얼마나 지났을까...
콧등에 붕대를 감싼 그녀가 미라처럼 비척비척 걸어 나온다.
아까보다 훨씬 더 부은 상태라 이젠 쳐다보기조차 안타까울 정도다.


"많이 아팠어?"
"응. 수술한 자리에 마취주사 놓을 때가 제일 아팠어.  의사가 내 참을성에 감탄하는 거 있지."
“모습 하고는. 그래도 웃음이 나오긴 나오냐?  크기는 이제 맘에 들어? 의사가 뭐래?"


의사가 기존 삽입된 실리콘을 꺼내 친구에게 보여주며
사이즈가 조금 크긴 해도 그리 무리는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굳이 원하면 조금 작은 것으로 넣어줄까나 해서 그리하라고 했단다.


크기가 어떻든 간에 그래도 명성 있는 성형외과이니만큼
결과를 안 봐도 믿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며 안도하는 그녀 모습을 뒤로하고 집에 왔다.

 


 

너무 크네 어쩌네 그 날의 호들갑이 모두 시기상조 기우였음을 증명하듯
몇 개월 지나며 그녀 수술 붓기가 감쪽같이 빠지고,
콧대 쪽으로 잡아당겨 졌던 양미간 피부도 제 자리로 돌아가면서
붕대 풀린 콧잔등은 보기좋게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수술 전 많이 낮았던 콧대 탓에 얼굴이 많이 사각져 보였었는데,
이제 코가 높아짐으로 인해 얼굴 형태가 저리도 갸름형으로 변하니

본인 만족은 물론, 보는 나로서도 참 신기하기만 했다.


"이젠 맘에 들어?"
"지금 가만 보니, 좀 높았던 첫 번째 수술을 그냥 냅뒀어도 괜찮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

 +.,+


수술 후 훨씬 명랑해지고 더욱 자신감을 보이는 그녀를 보며
평소 미용성형에 대한 내 부정적 시선이 40%쯤은 희석된 듯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콧대가 좌우로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과
실리콘 넣어진 코는 낮은 기온에선 파르스름 변한다는 것, 그래서 겨울이 되면
그 파래진 코 때문에 과민해진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확인하게 되면서
내 부정적 시선은 어쩔 수 없이 얼마만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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