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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랑교육이랑

국적 바꾸는 아이들

 

 

"태어난 조국이란 너희들 원하는 대로 그렇게 뚝딱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모국명과 모국어를 그렇게 바꾸고 싶으면 모든 법률서류 수정해서 다시 교육청에 제출하고 와."
결국, 이 따끔한 한마디를 듣고서야 수정 요구들이 살그머니 철회된다.


국적이나 주언어를 비롯한 법적 개인정보를 요하는 고 3 디플로마
시험 등록 절차가 있는 매년 이맘때면 종종 연출되는 이런 상황은
캐나다나 미국 같은 멀티컬츄럴 국가에서는 더이상 보기 드문 일이 아니다.


시험 등록서류에 기재해야 할 신상명세에는
제1국적(1st Nationality) 과 제1언어 (1st Language)  가 포함돼 있다.
시험등록 시 자동으로 등록서류에 출력되는 이 기본 정보는
학생이 학교 입학 시 제출한 법적 서류에 근거하여 교육부에 등록된 내용이기에
가장 사실에 근거한 공식적 자료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자신의 정체성에 살짝 덧옷을 입히고자 하는 철없는 학생들이 종종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한다.


1st Nationality (country of birth) :  Republic of Korea --> Canada
1st Language (native language) :  Korean ---> English


이런 탄생국적 기피 현상은 유독 한국과 중국인 학생에서 집중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중에서도 한국인이 80% 이상으로 단연 으뜸이다.
그런 모습이 썩 아름답게 보일 리 또한 없다.
그런 황당한 요구를 하는 학생 중에는 학생비자로 들어온 유학 몇 년 차도 있어 더 어이없게 만든다.

 

 

 

 

 

 

 

제1 국적이란 일반적으로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말하며,
이민 등의 형태로 취득한 국적을 제2국적으로 대개 분류한다.


또한 언어에서도, 언어학 관점에서의 차이는 각각 있긴 하지만
Native language, 1st language, Mother tongue 등으로 일컫는
'제1 언어 (Language 1)'의 가장 보편적 개념은
'탄생 직후부터 언어 형성과 개발의 가장 중요한 성장기에 사용한 주 언어로서
가장 최초로 습득한 언어, 원어민임이 식별되는 언어,
가장 잘 구사하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에 두고 있다.

 
한국같이 단일민족/ 단일언어인 환경에서야
'Mother tongue = Native language = 1st language = 제1언어'의 공식이 자연스럽겠지만,
사실 이민 자녀 2세가 점점 많아지는 이곳 북미나 유럽에서의 mother tongue 이란
엄밀히 말하면, 현지 주언어가 어떤 것이냐와 별개로
성장하면서 가정 내에서 부모/엄마로부터 자연스럽게 접하고 배우게 된 언어,
말 그대로 '엄마 나라의 말' 모국어를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 엄마나라 말인 한국어가
가장 잘하고 주로 사용하는 제1 언어일 확률은 극히 낮을 수 밖에 없고,
그를 여기서 논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어를 훨씬 잘하고 한국어가 더 편한 이민 1.2세쯤 되는 자녀나 유학생들 경우엔 다르다.
이들이 제1과 2 언어의 구분이 요구되는 특정 분야의 시험을 치를 경우,

인권 보호및 평등에 입각해 특정 목적이나 이유없이 출신국가명이나 성별, 나이등을 물어선 안되는 일반적 규정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 배경을 구체적이고 정확히 명시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예외적으로 있음은,
예컨대, 영어가 한국어보다 훨씬 서투른 학생이 시험 시
모국어를 영어,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하여 시험을 치르는 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임을 해당 수험자 학생들이 모를 리 없다.
해가 거듭되다 보니 그 속이 척하면 십 리쯤은 들여다보인다.
철이 없어 그러려니 하다가도 매년 반복되는 양상에 문득 괘씸한 생각이 드는 거다.


다수 외국 시민권을 취득한 가정일수록
모국명과 모국어에 '한국'과 '한국어'가 설 자리는 더욱 없어진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한국인 학생이 캐나다 유학 신청서에 탄생국적을 미국으로 기재했다가
대학 입학서류에 학생의 '출생증명서' 첨부가 요구되어
뒤늦게 국적과 언어 기재사항을 정정하느라 발에 땀 나는 해프닝이 생기기도 함은
웃지 못할 일이다.

 

 

 

 

 

 

귀납적 추론의 은유인 'Duck Test'란 게 있다.
"If it looks like a duck, swims like a duck, and quacks like a duck, then it probably is a duck."
한국인처럼 생기고, 한국인처럼 행동하고, 한국말을 하면 아마 한국인이 맞을 것인데
자신만 전혀 아니라고 우기는 격이다.


복수국적 불허 때문이든, 골라 잡은 새 나라 시민권 때문이든,
자신을 입양한 양부모가 나를 낳아준 친부모로 바뀔 수는 없는 것처럼
원래 국적을 포기했다 해서 자기가 태어난 나라의 존재와 본질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 낯선 엄마땅 조국행을 힘들게 결심하는 해외 입양아들,
정체성에 덧칠을 하려 애쓰는 일부 학생과 부모들 모습이 그 위에 오벌랩된다.


Orson Scott Card 의 대사처럼,
우리가 아무리 흉내 내도 진짜 그 사람이 되지 않는 한  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Perhaps it's impossible to wear an identity without becoming what you pretend to be.")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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