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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얘기저얘기

아무데서나 요리판, 자제하기를

 

 

 

화창한 날씨 놓칠세라 게잡이 장비를 매고 우리 부부 물가로 향했다.
여느 때와 다르게 플랫폼이 사람으로 웅성웅성해 보이는 것이 무슨 잔치가 벌어진 듯했다.
다가가니 아니나 다를까 그 좁은 플랫폼에선 음식냄새를 풍기며 단체로 먹자판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그 시끌벅적한 대화 언어는 한국어였다.


서너 명만 크래빙 그물을 던져도 꽉 찰 그 좁은 공간에
예닐곱 넘는 사람들이 크래빙 그물 딱 하나 던져 놓고선
휴대용 개스스토브를 여기저기 켜 놓고 음식을 먹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게다가 그나마 남은 공간엔 마치 '구역 완전 접수'라도 선포하듯
자신들의 빈 의자들을 쭈욱 펼쳐 놓은 모습이다.


아내의 끓는 모드를 감지한 남편이 대신 악역 맡기를 자청한다.
"이곳은 인근 주민들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히 와서 낚시하다 가는 곳입니다.
크래빙 하실 분만 남고 나머지 분들은 이 공간을 비워 주심이 어떨지.
이웃에 시끄러운 소음으로 인한 불편 끼침도 그렇고,
나무로 된 floating deck (수상 갑판) 위에서 개스스토브를 사용하다 자칫 화재라도 난다면
당장 이 낚시터가 폐쇄될 게 분명하고,
그러면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누가 다 보게 되는 겁니까."


그 소리에 '오케이, 오케이'가 몇몇 작게 들리는 듯싶더니
개스버너를 슬그머니 뒤로 돌려, 하던 요리와 먹기를 마저 하는 눈치다.


뿐인가, 그물에 걸려 올라온 게 대부분을 규격도 안 재보고 바스켓에 집어넣는 걸 봐서는
포획 금지인 암컷이나 허용규격에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크레빙 라이센스'가 있는지를 물으니 금시초문이라는 듯 서로를 번갈아 쳐다본다.
"최대 4마리까지만 가능하고, 규격이 안되는 넘들과 모든 암컷은
무조건 다시 놓아주어야 하는 게 이곳 크래빙 규정입니다."


그 말 끝나기 무섭게 무조건 '예스, 예스'를 하고 보는 모양새가
남편 말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건성으로 듣는구나 싶었지만
내가 나서서 이해시켜 줄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옆에 서 있는 나를 긴가민가하는 눈빛으로 탐지하던 그들,
곧 한국사람이 아닌가보다, 혹은 한국말을 못 하는 사람인가 보다로 결론을 지은 양
저희끼리 마음 편히 내 남편 뒷담화를 하기 시작한다.


"하이구, 외국 사람들은 왜 글케 남의 일에 참견하길 좋아하는지 몰러."
"맞아 맞아, 그냥 무조건 너 잘났다 예스 예스만 해주면 돼, 따져봐야 복잡만 하니까."
"신고 정신이 만발한 외국인들이라 또 신고할지 모르니까 대충 그릇 챙겨 넣자."
"그래도 끓이다 만 건 마저 끓여야지."
"저 여자 한국사람 아닌가 본데 뭐."
"xx아버지~ 또 저x이 한소리 하기전에 후딱 마셔요!"

내 남편 흉보느라 모두 신이 나 있는데 그 옆에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모범을 보이기는 커녕
그야말로 잘못된 것만 솔선수범 가르치고 있으니 보는 내 낯이 더 뜨겁다.


조금 있으려니 크래빙 나온 한 팀이 또 도착했다.
한 그룹에 의해 이미 온통 '접수'가 돼 버린 플랫폼을 바라보며 모두 대책 없이 서 있는데
재주껏 자리를 마련해보라는 듯 자리 확보용 빈 의자들을 치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여기 빈 의자들 좀 한쪽으로 치워주실 수 있는지요."
남편의 연이은 쓴소리에 눈치가 보였는지,
가타부타 아무 소리 없이 언짢은 표정들로 하나둘 세월아 네월아 짐을 꾸리기 시작하는데,
그 옆에서 공간이 나길 기다리며 내내 서 있는 우리는 한숨을 쉬며 서로를 쳐다볼 뿐이다.


드디어 그들이 다 철수를 하고, 같이 서 있던 한 남성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자신은 이 근처에 사는데, 오늘 같은 상황이 처음 아니라며,
한국인들이 등장하면 종종 저들처럼 음식조리기구가 동원되고,
허용 마릿수든 새끼든 암컷이든 가리지 않고 휩쓸어가
다음 며칠간은 아무것도 걸려 올라오는 게 없을 지경이기도 한단다.


"저 파란 지붕이 제집인데, 작년에 불이 나 홀딱 다 타버릴 뻔했지요..."


그 사람 사연인 즉,
집 주인인 그 남자가 외출했다 막 돌아와 보니 자기 집 처마 끝에 불이 훨훨 타오르고 있더라는데,
알고 보니 크래빙을 온 한 한국인 가족이 플랫폼 위에서 먹거리 잔치를 벌이다
갑자기 내린 비에 허락도 없이 근처 그의 집 마당 (당시엔 울타리가 없었다고) 에 들어와서는
처마 밑 한 쪽에 아직 꺼지지 않은 개스버너를 올려놓고 요리를 해먹다
불이 그곳에 옮겨붙었다는 것이다.


그 일을 계기로 그 집 마당엔 높은 담장이 생겼고,
그 말을 들은 이웃들도 다 돌 울타리를 쳤다 하니
이거 국제적으로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잖은가.


"우리가 툭하면 촤xx즈 식이니 어쩌니 하며 손가락질하지만
솔직히 저런 일부 한국인들의 그런 몰상식한 행동 때문에
그들까지 도매급으로 더 덤터기를 쓰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다는 거야!"


몹시 언짢아진 아내의 기분을 눈치챈 남편이
"당신이 민망해할 필욘 없어,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든 다 있기 마련"이라며 다독거려준다.
사실 일전 크래빙때 만났던 한 한국인 부부와 자녀들은 얼마나 에디킷 바르고 멋졌던가,


그런 기억으로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던 나머지 하루였는데...
왠걸, 이틀 후, 이번엔 혼자 크래빙을 다녀온 남편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웬일로 빈손이냐 물으니, 헐, 그곳엔 그날도 또 다른 무리의 한국인들이 이미 와 있었다는데,
요리 기구 등장에, 서로를 부르는 고함 등의 광경은 그 전날과 큰 차이가 없었고,
게다가 이번엔 남편이 던진 그물 바로 옆에 자신들 그물을 연거푸 드리우는 바람에
결국 그물들이 서로 엉켜 남편 쪽에서 그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까지 일어났단다.


낚시하는 이들은 잘 알겠지만,
낚싯대마다 그물마다 존중되어야 할 일정 간격이 있다.
이미 누군가의 그물이 내려져 있다면 그를 고려해 일정 간격 떨어져 자신의 것을 던져야 한다.


이미 벌어지고 난 사고에 쓴소리를 해봐야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한 남편은
이번엔 아예 그들에게 낚시터 에디킷부터 크래빙 방법까지 초등학생 가르치듯 차근차근 가르쳤다 한다.
'에고, 속도 좋네 좋아...'

 

 

 

 

 

 

 

언젠가, 자신들 집 실내에서는 갑판의 크래빙 광경들이 쉽게 눈에 들어오는데,
잡은 게들 규격을 일일이 자로 재어보고는 바로 물속으로 돌려보내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보면 미소가 나오기도 하지만,
보기에도 한참 새끼인 게들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싹쓸이로 건져가는 사람들을 볼 때는
정말 눈살 찌푸려진다던 몇몇 인근 주민들과의 대화가 떠오른다.


모르는 건 죄나 흉이 아니지만,
그 모름이 당연한 듯 타인에게 끼치는 불편함이나 피해는 흉이 아닐 수 없다.
모쪼록 그 두 한국인 가족들이 유익한 레슨을 받고 돌아갔기를 희망해 볼 뿐이다.


새해를 맞아 한국 포털 사이트 곳곳에서 '배려'에 관한 자성과 다짐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
배려란 게 비단 갑과 을 관계, 그리고 한국 사회 내에서만 해당하는 것일까,
먹거리 문화, 잔치 흥은 한국 특유의 정서라 할 수도 있겠지만
매너와 정서가 다른 해외에서의 때와 장소를 벗어난 일부 사람들의 무분별한 요리판은
한국인의 이미지를 격하시키는 비상식적 행태일 뿐이다.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새해엔 저런 불편한 모습들이 공공장소에서
더는 눈에 띄는 일 없기를 바라본다.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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