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얘기저얘기

데이트 비용도 문화차이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커피샵에 그가 웬일로 혼자 나타났다.
단짝처럼 붙어 다니던 그 여자친구는 어찌하고 혼자 왔느냐고 우리 부부 물으니
"우리 헤어졌어."


흠마, 우리 집 게요리 파티에서 열 손가락 쪽쪽 빨아가며 서로 게살을 발라주는 모습을 보고
에그 디러버라 했던 게 불과 두 주쯤 전인데... 그새 헤어졌다고?


"아니 어쩌다?"
비록 서로 결혼 약속이니 뭐니 했단 소리를 우리에게 아직 한 적 없지만,
꽉 찬 나이에다, 연애모드 뜨겁지수 최고조인 교제 한 달 차 그 둘이라
청첩장은 시간문제로 모두 믿고 있던 참이기에
그들의 뜬금없는 결별은 우리에게 좀 의외일 수밖에 없는 거다.


며칠 전 그녀가 그에게 쭈뼛쭈뼛 뾰로통 그런 말을 하더란다,
"원래 밥값이나 데이트 비용은 다 남자가 내야 하는 거 아닌가..."


이제 겨우 이민 2년 차 새내기인 터어키 출신 그녀,
캐나다에서 2세로 태어나고 자란, 그야말로 무늬만 터이키인인 그의 정서에 대한 이해부족이었을까,
데이트 비용을 남자가 전담하는 분위기인 터어키 스타일과는 달리
꼬박꼬박 반반씩 부담해 온 그와의 더치데이트 방식이
그녀에겐 영 이상하고 찜찜했던 모양이었다.


몰랐으면 몰라도 그 말을 들은 바에야,
어쩔 수 없이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모두 부담하기 시작했지만,
비용을 떠나서 왠지 무언가 의무적인 걸 내는 기분인 거라,
그 작렬했던 열정이 왠지 사그라져 버리더란다.
 

이쪽은 이쪽대로, 저쪽은 저쪽대로 그렇게 뭔가 어긋나고 있음을 어쩔 수 없이 감지하면서
관계에 대한 의문이 각각 생기기 시작했을 테고,
근래 들어 말문을 닫는 일이 많아진 그녀에게 그는 이유를 묻고,
그녀는 아무래도 자신은 그에게 '착한 아내'감이 못 되려나 보다며
해어질까란 말을 꺼내기에 이른다.


그녀 입에서 나온 자칭 '착한 아내감'이라는 왠지 성차별적 톤이 느껴지는 그 표현은
그렇잖아도 편치 않던 그의 마음에 결국 last straw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니,
"그러자 그럼!" 으로 남자는 망설임 없이 동의표를 던졌다,
둘은 그렇게 각각 딱 한마디씩 하곤 그 길로 관계에 종지부를 찍은 것.


"하이구야, 어쩜 관심을 더 끌어보려고 한번 해 본 투정이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다짜고짜 야멸차게 끝내버리면 어떡해."


안타까운 마음에 쯧쯧거리며 한마디 해보지만
여자의 결별 제안이 단순한 투정였든 아니든 그게 더는 중요치 않았음은
그녀에 대한 그의 애정 충분지수가 그걸 극복할 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지 싶다.
'관계 굳히기'에 아직 몇%쯤이 부족한 관계에서
이처럼 데이트 비용 부담에 관한 커플 풀이법은
종종 deal breaker나 game changer가 될 수도 있는 듯.

 

 

 

 

 


 

사실 알고보면 데이트 비용 부담에 얽힌 세계 곳곳 에피소드들은 심심찮다.
최악의 발렌타인데이였다는 어느 여성의 경험담;
"내 친구 리사가 드디어 어느 남성과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는 꽤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리사를 안내했고,
둘은 몇 가지 코스로 된 식사를 즐기고 와인도 한 병 마셨다.
모든 게 완벽했다.
식사가 끝나고 웨이터가 계산서를 가져왔다.
계산서를 훑어보던 남자는 그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반반씩 나눠 당신은 현금으로 낼래요, 아님 카드로 낼래요?'"


남자 측 비용 부담이 마치 묻지 마 법칙처럼 당연시 자리 잡은 일부 국가들도 있지만,
그게 아니라도 사실 이 여성처럼 남자가 데이트를 신청하면 비용 또한
남자가 부담해야 한다고 믿는 여성들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의외로 많다고 한다.


성차별 없는 평등을 부르짖는 요즘 시대에
왜 아직도 일부 옛 관행에 매달려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약 17,000 여명의 남.여를 대상으로 최근 설문조사가 이뤄졌는데,
그 조사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84%의 남성과 58%의 여성이 '음식값을 내는 쪽이 주로 남성'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3분의 2에 가까운 남성이 여성도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가 보다.
그와 비해 같은 생각을 하는 여성은 44%에 불과했다고.

 

 

 


 

데이트 시 밥값 내야 할 시점이 되면 어찌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한 남성,
"내가 내겠다고 합니다, 아니면 내가 내도 되겠느냐고 묻던지요." 라 대답한다.
밥값 내겠다는 그의 제안을 거절한 여성이 있던 적 있느냐는 물음에는
"아뇨,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라고.


문화적 특성도 물론 한몫을 한다.
수단 출신의 남자와 데이트를 몇 번 나가게 된 이 여성,
둘은 건너편 지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탔다.
목적지에 도착해 남자가 주머니를 뒤적이고 있는 사이
여성은 마침 손에 들고 있던 자신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 요금을 내는데,
남자는 기사로 하여금 받은 돈을 그녀에게 되돌려 주게 하고 자신이 요금을 냈다.
차에서 내리자 남성은 자신을 무안하게 만들었다며 여성에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집중되는 사람들 이목에 여성 또한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예민해 하는 걸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고작 미화로 십 센트 정도밖에 안 되는 택시비용을 그녀가 낸 것 때문에
자칫 경찰서 신세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을 연출하는 그가 너무 황당했다고 한다.


또 한 여성은 "내 파트너는 이집트인였어요,
그는 데이트 때 비용을 내가 낸다거나 반반씩 부담하자고 하면 무척 거부반응을 일으켰더랬죠.
이탈리아인하고도 데이트를 한 적 있었는데, 그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마지막 데이트 상대는 영국인이었는데요, 

난 항상 반반씩 부담하자 했고, 그도 그걸 받아들여 매번 그렇게 반반씩 냈지만,
사실 그가 사겠다고 고집한 적은 우리 오랜 연애기간에 딱 두 번밖에 없었달까요.
한번은, 밥을 내가 사겠다는 제의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자신이 사는 거라 우기길래 내가 지갑을 도로 집어넣었지 않겠어요,
그런데 몇 분 지나서 청구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던 그가
'그럼 밥값을 좀 내줄 수 있겠어?' 라 하더군요."


자치 '구닥다리'라 칭하는 한 저메이카인 남성,
"당근 제가 돈을 냅니다.
데이트를 최소한 여섯 번쯤 한 후면 모를까, 그전까진 각자 부담이란 건 아예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데이트 두어 번 쯤 후에 여자 쪽에서 밥을 사겠다고 할 경우
내가 못 내게 막을 거란 얘긴 아니거든요."


데이트 상대와 연인 관계에는 차이점이 있기에,
자신이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좀 더 깊이 있는 연인관계에 놓여있다면
자기 역할 분담을 하는 게 공평한 일 아니겠느냐고 그는 덧붙인다.

 

 

 

 

 


 

밥값 문제로 관계에 금이 간 그 친구 커플을 보며
그깟 밥값 누가 내면 어떻다고... 하던 궁시렁도 잠시,
남편과 연애 시절 그가 학생 주머니를 탈탈 털어 내 밥값까지 책임지곤 할 때
나 역시 얼마나 기분 든든했던가를 생각해 보면
별날 것 없던 그녀의 기대치를 탓할 일만도 아닌 듯하다.


이 문화는 어떻고 저 문화는 어떻고 하며 아무리 잣대를 들이대도
개개인의 성격이나 가치관을 조금씩 절충하고
상대에 대한 애정지수에 플러스알파를 첨가한다면
끝내 극복 못 할 문화차이란 결국 없지 않겠는가.

 

 

- 엘리 -

 

 

 

 

 

'이얘기저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스터 꽃다발과 벌새  (0) 2015.04.12
시어머니의 딜레마  (0) 2015.03.25
아무데서나 요리판, 자제하기를  (0) 2015.01.04
게들아 노올자~  (0) 2014.12.03
어느 설문 조사  (0) 2014.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