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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

아내의 행방불명

 

 

 

 

화날 때면 갓질라마냥 어마무시한 면도 있지만
어딜 가든 아내 걱정하는 일 없도록 가능하면 자신의 행선지와 연락처를 알려주는
사뭇 자상한 편의 남편 성격과 달리,
용건만 초간단히, 혹은 휴대폰 본래 용도에 무감각하기까지 한 아내인지라
'휴대폰을 사수하라' 같은 에피소드가 이로 인해 생기기도 한다.

 

 

 

 

 


언젠가의 일이다.


친구 하나가 어느 호텔에서 인포세션이 있다며 함께 가잔다.
퇴근 후 딱히 별다른 스케쥴이 없어 그러마고 그녀를 따라 나섰는데,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휴대폰을 학교에 두고 온 걸 알게 된 거다.
'M(남편)이 여긴 온 걸 아직 모르고 있는데...'


"여기 내 셀로 M한테 전화해."
"됐어. 퇴근 후 어디 잠깐 들렀다 오는 줄 알겠지 뭐."
남의 휴대폰 빌려 쓰는 걸 많이 꺼리는 내 성격 탓도 있다.


대충 한 시간 쯤이면 충분할 거로 생각했던 세션이 예상보다 좀 길어진다.
'끝나는 대로 전화해 줘야지...'


어느새 두 시간도 훌쩍 넘어간다.
옆에 있는 친구가 오히려 더 걱정스러워 하는 눈치다.
"M이 걱정하겠다. 글지 말고 전화 해주지 그래?"
"이제 곧 끝날 테니 바로 가면 될 거야."


친구 말대로 남편에게 간단히 전화 한 통화 해줬으면 될 일을
그날따라 왜 그렇게 고집을 부렸는지 지금 생각하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세션은 결국 날이 어둑어둑해지고서야 끝이 났다.
전화하기엔 이미 늦어버린 것 같은 죄책감을 뒤로 하고
수 시간의 지루함을 해소할 겸 근처 팝에 들러 맥주 한 잔씩까지 하고 나니,
팝을 나설 즈음엔 이미 밤이 다 된 시간이었다.


그제서야 첫 전화를 시도하니 통화 중이다.
아내 전화가 학교에 혼자 남겨진 것도 모른 채 줄전화를 하고 있구나 싶어
슬슬 미안함이 들기 시작한다.


부랴부랴 차를 몰아 집(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입구에 웬 경찰차가 보인다.
어디에 도둑이라도 들었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문에 키를 넣으려니, 어라, 문은 이미 열려있고
글구보니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방문손님이 있나 보다.
헬로우~ 하며 고개를 디미는데... 헉, 거실에 경찰 두 명이 와 있다.
그 옆에 서 있던 남편,
나를 보자 무슨 죽은 사람 살아 돌아온 마냥 내게 달려와 나를 와락 껴안는다.
그리곤 울먹이는 목소리로 "괜찮은 거야?  아무 일도 없던 거야?"


알고 보니 오후 내내 연락 끊긴 아내가
누군가에게 납치라도 당한 것임이 틀림없다 생각한 남편은
경찰에 missing person으로 실종 신고를 했던 거다.


사실 아내란 사람의 퇴근 후나 일상 스케쥴이란게 대개 일정하고,
모임이 있을 때라도 예외를 제외하고는 부부가 함께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날처럼 사전 귀띔 없이 어두컴컴해지도록 연락 깜깜인 상황이 되고 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남편생각)'아내에게 분명 무슨 뜻하지 않은 변고가 생긴 게 분명하다 믿었던 것.


미안함은 둘째치고, 생각지도 않게 크게 벌어지고 있던 그 상황에
나의 무배려적 무심함이 연락불통의 진실이란 말이 차마 나오지 않는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설픈 변명을 하느라 버벅거리고 있으려니,
"됐어, 설명하지 않아도 돼, 이렇게 무사한 걸로 됐어." 하며 혼자 뚝뚝 감격한다.


하마터면 실종자가 돼 경찰 수배를 받을 뻔 했던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 뜨끔하고,
그저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누군가를 향해 두 손 모으던 남편의 모습은 아마 앞으로도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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