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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

She

 

 

 

 

"같이 갈래?"
"어딜?"

 
몇 해 전, 지역 신문 한켠을 장식했던 사건이 있었다.
당시 환경 다큐 관계로 남편에게 스토리를 제공해 오던 한 프랜취 여성의 죽음이었는데
아파트 7층에서의 투신이었다.

 

필름과 관련해 긴밀한 교류가 있던 그녀이고, 또 불어가 가능한 남편이기에
프랑스에 있는 유족과의 소통과 마무리를 남편은 자청했고
모든 조사를 이미 마친 경찰 측은 이를 고맙다며 일임했다.


남편을 따라 조심스럽게 들어간 원베드룸 아파트,
삽 십 대 중반 그녀의 싱글 삶 흔적은 공간 구석구석 배어 있었다.
이곳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며 시 작품을 즐기던 그녀,
유품 속엔 아프리카 아동들과 교감하는 수많은 그녀가 남아있었고,
지구촌곳곳 전쟁과 굶주림으로 꺼져가는 작은 생명을 향한 안타까움과
너무 많이 가진, 그러나 타락하고 방관하는, 자들을 향한 질책과 울분이
그녀의 글과 시 속에, 낙서 속에 스며 있었다.


In the forests of evergreens, I heard the voice of the crying God.
Angels are still crying and My God suffers every day with his children.
My God died in Rwanda and Chile.

 

 


그녀 떠나던 그 해 10월,  그녀가 남긴.

 

 

외로움 속에 녹아든 고뇌,
오래간 홀로 지낸 외로움이 그녀의 고뇌를 가속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극히 휴머니즘적인, 그러나 흔하지 않은 그녀의 가치관을 공유할
특별한 누군가를 끝내 갖지 못한 허무였을지도 모르고,
가끔은 위를 쳐다보며 내는 무의식 본능에 심한 자괴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 지극히 소시민적이고 개인적인 불만과는 분명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잘못 청구된 영수증, 남편과의 티격태격, 제출기한 놓친 학생 과제물...


더러는 세상과 타협하며 나를 내맡겨 봐도 괜찮았을 것을,
울분은 우울증약에 의지해야 할 만큼의 깊은 절망으로 이어지고,
그 절망을 그녀는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이곳을 많이 사랑한 그녀.
간곡한 유언대로 그녀는 자신이 즐겨 찾던 이곳 밴쿠버 어느 강가에 재로 흩뿌려졌다.
유가족을 대신해 그녀를 바람 속에 훨훨 떠나보내고 돌아온 그 날,
나와 남편은 한참을 울적했다.

 

 

 


 

 

그녀의 영혼은 이제쯤 안식을 찾았을까.

 

지금은 내 컴 어느 켠, 사진으로 보관된 그녀의 공간과 유품들,
세상에나 이렇게 곱고 소중한 것들을 차곡차곡  챙겨 두고...


저희에게 유품 보내주시면서 혹 맘에 드는 거 있으면 가지셔도 되요... 
... 우리 딸도... 좋아할 거예요...


색 고운 접시, 정결한 앞치마, 알록달록 향수, 시그니처 랩탑, 쓰다 만 가계부...
에널러그와 디지틀, 여유와 외로움이 공존하는 30대 싱글 여성의 삶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래도 괜찮을지... 


머뭇거리며 그 중 액세서리 몇 개를 집어 들었다.
원래 즐겨하지도, 내 취향도 사이즈도 아니지만
그 속에 담겼을 그녀의 체취,
그 매개물에 녹아진 그녀 고운 마음이
수호천사 되어 왠지 나와 우리 부부를 오래 지켜줄 것만 같기에...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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