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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

시아버지 코곯기 사건

 

 

 

 

 

사업과 관련해 캐나다 아랫동네 미서부쪽을 방문할 일이 잦았던 시아버지 짐(Jim)을 따라 주말을 이용해

몇차례 나선적이 있더랬습니다.  친정부모님과  큰시누이부부 사는 곳이 그쪽 근방이라 문지방이 닳은 동네긴 하지만
그도 또 다른 기분이라 바람도 쐴 겸 쭐래쭐래 몇차례 따라간 거지요.
그 중 에피소드를 하나를 소개해 볼까요?

 

앗싸자, 스피커 발륨을 높여주세요~

 

전날 저녁에 도착해 하루 묵고 다음날 오전 미팅에 참석 후 귀환하는 1박 2일 일정이었습니다.
국경통과 지체로 오후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을 즈음엔 이미 해가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정해진 스케쥴이라 숙소 예약을 미리 하지 못하고 급히 출발한 관계로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숙박할 곳부터 찿아 다녔습니다.


여기저길 둘러봐도 우리에게 필요한 룸 두개는 커녕, 아예 하나도 없거나 아니면 더블베드만이 가능한 상황인 겁니다.
작은 동네여서 그런지 큰 호텔은 보이지 않았고, 또 있었다 해도 다음날  아침 일찍

짐 미팅이 이뤄지는 곳관 거리가 있을 듯 해 굳이 찾아나서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이곳 저곳 문 두드리다 드디어 한 작은 호텔이던가 모텔이던가에 방이 하나 딱 남은걸 찾아냅니다. 

트윈배드 - 아쉰대로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숙소를 가까스로 정하고 나니 배가 출출해져 옵니다.
저녁시간을 숙소잡느라 다 보내고 난터라 시간은 이미 많은 음식점들이 문 닫기 일보직전,
할 수 없이 타이누들과 싱글 핏자 몇조각을 테이크 아웃으로 숙소로 들고와  침대 위에 쫘악 펼쳐놓으려니,
어느새 준비하셨는지 한아름 고운 꽃다발을 건네주시며 Happy Birthday~~~! 하십니다, 
어쩌다보니 제 생일이 낀 날였거든요.
짝지와 가족들이 함께 왔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던 순간였습니다.^^

 

선물주세요

 

일단 배를 채우긴 했는데 둘 다 졸음 올 기색은 안 느껴지고...
근처에 있는 카시노에 함 가볼까나 하고 둘이 나섰습니다.
그렇다고 울 둘 중에 누군가가 하다못해  '빙고' 라도 끄적여 볼 정도로 겜블링에 관심이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구요.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서비스로 주는 무료 칵테일과 음료수만 축내며 어슬렁 거리다보니
눈꺼풀이 서서히 껌벅껌벅해지기 시작합니다.


졸리면 먼저 드가 자라는 짐을 뒤로 하고 혼자 숙소로 돌아왔지요.
그런데 침대에 누우니 웬걸, 오던 잠은 어느새 다 달아나고 이생각 저생각에 말똥말똥 죄없는 천정만

뚫어지게 구멍이 납니다.

 

이것 참... 암리 시아부지와 며늘사이가 다정한 친구같다 하지만
그래도 한방서 잠을 잔다는거이 쪼매 안 불편스럽지 않진 않겠어요?

 

엎치럭 뒷치럭 하다보니 자정이 지나고, 마침내 짐이 들어오는 기척이 들립니다.
며늘이 아직도 안자고 있음을 알게 되면 혹 당신도 불편한 맘이 생길까 싶어
눈을 얼릉 감고 깊이 잠든 척을 했지요. 쿨쿨.


그렇게 조금 있으려니, 저짝 옆 침대에서 어느새 새근새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제서야  마음 편해진 저도 이제 눈을 붙일 준비가 됐습니다.

 

그런데...
짐의 그 새근새근 세레나데가… 드르렁 컥컥 헤비메틀로 변하면서
우르릉 쾅쾅 그  volume이 점점 커지는게 아닙니까.
코고는 소리에 익숙치 않은 저로선 그 소리가 정말 견디기 힘든, 아 말그대로 고통! 이었습니다.


안습

 

그러다가 갑자기...삽입된  intermission  중간휴식이라도 되는 양,

모든게 정지된 죽음같은  침묵이 갑자기 흐르는 겁니다.
드르렁 드르렁.... 크륵크륵...컥컥...  잠잠....................


헉! 오고 있던 졸음은 화들짝 다 달아나고 가슴에서 콩닥콩닥 방망이질 소리가 사정없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어릴적,  친정어무이가 한방중 중환자실로 실려가시던 날 밤,
평소엔 코를 거의 고는 일 없던 당신께서 그날따라 천둥같이 큰 소리를 내던 그 이상스럽고 무서운

코곯이 리듬과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왜 숨을 갑자기 멈추신거지... ?  콧구멍에 머가 막혀 숨을 못쉬시는건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제 머릿카락 하나를 쑥 뽑아 짐의 코앞에 살짝 갖다대어 봅니다.
그런데 머릿카락이 전혀 미동도 하질 않는거예요. 헉, 911!
거의 울상이 된 모습으로 이젠 제 귀를 아예 짐 코앞에 들이댑니다. 


그러자니 갑자기,
피이유우우우...........................  털털털 .....


에혀, 회오리 저리가랍니다, 하마텀 제 눈썹이 다 날라갈뻔 했습니다.


드르렁...컥컥...잠잠...피유우........ 드르렁...컥컥...잠잠...피유우........  ∞ 
베게로 양 귀를 꾹꾹 눌러 막아봐도, 이불속에 머리를 푹 파묻어봐도, 아무 소횽이 없었습니다,
한번 시작된 그 리듬과 템포로 짐의 코곯기 잔치는 밤새 이어질 기세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뿌잉2

 

반쯤 감긴 푹 꺼진 눈으로 뒤척이다보니 어느새 새벽 두시쯤 되었을까요,
안되겠다 싶어 비장한 결심으루 이불과 베게를 싸들고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차갑고 눅눅한 화장실 바닥에 이불 반은 깔고 반은 덮고 하며 불편함으로 얼마간 뒤척이다
짐의 천둥 코곯소리가 저 멀리 메아리처럼 페이드아웃되기시작할 무렵에야 드디어 잠이 들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얼마간 잠을 잤을까, 요란한 노크소리가 밖에서 들립니다.
"지금 해가 중천인데 아적까정 거서 잠을 자냐~ 일나라 일나~~"
매일 아침 일상습관인 새벽쟈깅을 이미 끝낸 짐은 아침 먹으러 가자며 펄펄 기운에 넘쳐 화장실 밖에서 외칩니다.
이궁.......


어쩝니까, 할수없이 아직도 졸음이 다닥다닥 들러붙은 꿈벅한 눈을 매달고는  팔 벌린 강시같은 모습으로

짐을 따라 근처 훼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했지요.
"여기 침대 메트가 별로 편치않긴 하더라, 그치?  그래도 그렇지 얼마나 불편했으면 침대에서 못자고

그 좁고 눅눅한 화장실로 피난을 다 갔다니... 츱."

 

헐


아침식사가 입에 들어가는지 코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대충 졸면서 먹고는 짐은 드디어 본래 목적인

사업관련 미팅장소로 가고,  저는 숙소에 바로 돌아와 침대위를  마구 누비며 드디어 실컷

나머지 잠을 청할 수 있었다는 해피엔딩 야급니다.

 

 

 

 


집에 돌아와 짝지와 가족들에게 그 사연을 얘기하니 모두들 데굴데굴 웃겨 죽습니다.
'쉬잇... 이거 우리끼리만의 비밀여, 영원한 비밀. 크크'  모두 핑키를 겁니다.
 

며늘의 특별한 사랑을 한몸에 받으신 시아부지 짐,
심장수술후 예기치 않은 합병증으로 작년 이맘때 가족곁을 떠나신지 어느덧 일년이 되었네요.
지금껏 혼자만 모르고 계시던 이 소중한 비밀, 저 위에서 내려보고 계시다 이 글을 보고 마셨을테니
이긍...  더이상 우리만의 비밀이 아닌셈이 돼 버렸습니다~ 히.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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