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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

열받는 딱지

 

 

 

 

 

며칠전 지인 병문안을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환자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아 저희 부부 모두 몹시 우울한 기분으로
이런 저런 얘길하며 도로를 달리던 중이었는데
문득 사이드뷰 미러를 보니 경찰차가 뒤에 바싹 따라오는 겁니다.


안전운전을 하고 있던터라 뭐 찔릴일도 없고 해서
그냥 그대로 하던 얘길 심각하게 이어가며 계속 달렸습니다.
그런데 웬걸, 그 경찰차가 거의 영화특급 테일게이팅 수준으로 한동안
따라오다가 이젠 옆차선으로 옮겨 바로 우리차 옆에서 나란히 달리더군요.


그래 우리 둘, 갸우뚱거리며 멀뚱멀뚱 서로 쳐다만 보다가 드디어 끄덕끄덕,
그 경찰차가 우릴 '수월히 추월할 수 있도록' 속도를 서서히 줄여 달렸습니다.
그런데도 그 차는 우릴 앞지를 생각 안하고
계속 우리와 같은 속도로 오른쪽에서 나란히 달리는 겁니다.


우리 뭐 잘못한거 있나?
아니, 그런거 없는데.....


약간 앞서기 시작한 그 경찰차 리어뷰 미러를 힐끗 훔쳐보니
역시도 우릴 열심히 쳐다보고 있던 그 경찰.
서로의 눈이 대번에 마주쳤습니다.


아.. 뭔진 모르지만 우리에게 용무가 있긴 있는가 보구나...


차를 갓길로 세웠습니다.
그 경찰차도 따라 섭니다.


영문을 몰라 궁금한 얼굴로 쳐다보는 우리에게 경찰;
“달리다가 왜 갑자기 속도를 줄이느냐.
이곳 최하 속도가 얼마인지 모르느냐.
생각없이 가던길 가는 중였는데 우리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는 바람에
그게 본인의 눈에 한마디로 찍혔던 거다.”


우리도 여차여차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쪽이 내내 우리 꽁무니를 따라왔고
이어서 옆으로 와 나란히 우리와 속도를 같이해 달렸고.
그래서 우리가 생각키에, 급한 공무집행 있어 우릴 추월하려는가 싶어
길을 내어주려 오히려 일부러 속도를 줄여줬던 거라고.


So what?!


우리 설명은 듣는 둥 마는 둥, 아주 성나고 거만한 목소리로 그 경관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글쎄 우리더러 뜬금없이 "스피딩"을 했다는 겁니다.


아니 방금까지만 해도 우리가 갑자기 줄인 속도때문에 조용히 가던 본인 눈에 덜컥 띄었던거라 해놓고,
이제와선 우리더러 과속을 했다는 건 또 뭐랍니까.
아마도 갑자기 속도를 줄인 이유가 자기 경찰차를 보고 우리가
'뭔가 찔려서' 그런거려니 혼자 지레 짐작을 했던가 봅니다.


기막혀 말도 안 나왔지만 뭐 잘 아시쟎아요,
이럴때 막무가내인 교통경관에게 한마디라도 덤볐다가는
또 어쩌구 저쩌구로 고마운 보너스 티켓을 몇장 더 끼워줄까봐
댓발 나온 입으로 암소리 않고 주는대로 걍 티켓을 받아왔습니다.


아..날씨도 찌는데 마음은 더 찌더라고요.....


당연히 dispute(논쟁) 해야지요.
하지만 기한 마지막 날까지 한달간 두고는 볼 생각입니다.
자신도 양심이 정말 있는 경관이라면 설마 코트에 나오겠습니까?

 

 

 

이런일이 있은후 그 다음해,
그간 저희의 바쁜일정으로 인해 계속 차일피일 재판일자를 미루다
드디어 이 dispute에 관한 청문 (hearing)으로 교통재판소(traffic court)에 출두하게 됐습니다.
기본양심이 적어도 있는 경관이라면 설마 법정에 나올까 싶었는데
(상대가 참가를 안하면 자동적으로 우리측 승리) 기어코 나왔더라고요.


재판관이 자초지종을 우리에게 묻습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그때의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였지요.
"우리차가 경관 자신의 시선을 잡았던 이유는 바로 고속도로에서의 '서행' 때문이라 했다.
물론 그 서행도 그 경관의 지나친 테일게이팅으로 인해
길을 비켜주기 위해 속도를 일부러 줄였던 것이었고,
그런데 결국 우리가 받은 티켓은 '스피딩 티켓'인 것이다.
그게 앞뒤가 맞는 것인가."


객석에서 작은 박수소리까지 들렸습니다.
우리측과 경관측의 추가 진술을 각각 더 들어보던 재판관,
이젠 감이 잡힌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
'경관은 두말 말고 우리에게 사과를 하는게 좋겠다'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사과는 하지 않더라고요. 자존심 때문이겠지요.
사실 캐나다 경찰들은 일부 악명높은 일부국가 경찰들에 비하면
아주 친절하고 깨끗한 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굴에 띄는 미소는 미소대로, 법은 법대로 철저히 집행하는 사람들이지요.
그날따라 저희 부부 운이 나빴기도 했고,
그 경관도 자존심 쓸데없이 세우느라 그랬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묵었던 체증 내린 듯 개운한 하루였습니다.

 

 

 

이상은 몇해 전 어느날에 있었던 일이구요,
어제는 짝지랑 어디좀 가느라 사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쿠웅...하더니 저희 차가 잠시 움찔하는겁니다, rear-ended 당한 거지요.

순전히 상대측 과실이고, 가벼운 접촉일 뿐이긴 하지만
바빠지는 요즘 범퍼수리에 들여야 할 시간을 생각하면
이 더운데 또 한숨이 나옵니다. 에혀.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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