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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랑교육이랑

죽을권리와 살릴의무

 

 

 

최근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한 여성과 어느 단체의 '존엄사(death with dignity)' 승인 청원이

각각 법정에 올라 이슈화 되면서 안락사에 대한 논쟁에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소송인측의 '개인의 존엄성있게 죽을 권리를 앗아감은 위헌이다' 와 '가설일 뿐이며 법적지위가 성립되지 않는다' 며

이에 맞서는 주정부의 법적 공방이다.  

* death with dignity(존엄사) : euthanasia(안락사)의 완곡한 표현


"그것이 설사 자신의 삶을 마감하여 오랜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픈 의지가 담긴것일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의학적 치료에 참견할 합법적이고 당연한 시민의 권리이기에"
안락사를 반대하는 캐나다 법에는 엄밀히 따지면 그에 대한 권리 침해가 담겨있다란 해석도 있다.
법의 순수한 의도가 인정된다 해도 말이다.


최근 소송중인 63세, 테일러(Taylor)란 이 여성의 경우 루게릭병 (Lou Gehrig's disease)을 앓고 있는데,
루게릭병이란 특히 심각한 신경장애의 하나로, 운동신경세포만 선택적으로 사멸시켜
서서히 사지가 위축.쇠약되고 결국 호흡근 마비로 수년 내에 사망에 이르게 되는 치명적인 질환이라 한다.

이 여성은 이미 오른손 사용능력을 잃었고, 현재 발과 발가락 근육위축과 함께 호흡 곤란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

루게릭병의 특징은 온몸이 다 망가져가도 오직 정신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기에 그게 더 환자를 고통스럽게 만들며,

생명유지장치로 그들 삶을 연장시킨다 해도 5년이내에 호흡곤란이 와 목숨을 잃게된다는 것.


이 여성은 소송에서 '어느 누구든 누군가의 자살을 도울 경우 최고 14년형' 이라 한 안락사금지 정부의 법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사지 사용이 이미 힘들어져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죽을수도 없는 상황에 놓인

그녀의 절박한 처지를 도우려는 사람에게 그런 호된 벌을 감수케 하는 것은 공평치 못한일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케이스가 1993년경에도 있었다는데, 루게릭병 말기환자였던 비씨 주의 어느 여성 역시
존엄사 승인 청구를 한적이 있었고, 이 케이스는 대법원까지 거슬러 올라갔지만
존엄사를 승인받지 못한채 결국 그녀의 죽고자 하는 소망은 어느 익명의 의사에 의해 이뤄졌다 하니,
알 파치노가 열연하여 에미상을 받았던 영화 "You Don’t Know Jack" 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어느 유명 일간지에서도 언급했듯이, 삶과 죽음은 신의 뜻이나 자연의 법칙에 맡겨야 한다는
종교적 믿음이나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많고, 그들 나름대로 존중되어야 함에 이견은 없다.
어느 상황에서건 안락사나 도움받은 자살을 선택자유로 만들고자 캐나다의 의료법이 바뀌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되며, 의술과 생명연장을 위한 최대의 노력이 선호되어야 할 것임에도 두말없이 찬성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다른 선택이 절실한 사람들의 권리를 막으면서까지 끝까지 분투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권리만을 한편으로만 손들어 주는 것은 법의 남용일 수 있다는 것에도 한표를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 말처럼, 관념적으로만 반대하기는 쉬울수 있는것이다. 그게 종교적 믿음에 뿌리를 둔 반대건,
고귀한 삶의 가치를 평가절하시키는 지름길이 될까하는 두려움에서의 반대건.
가장 중요한 것은, 고통받는 이들의 처절한 소원을 반대만 하여 끝이 안보이는 극심한 고통을 그들에게 계속 강요만 할 것인가가 아닐까.

 

 


 

이런 법적 공방과 더불어, 얼마전 시아버지의 임종을 겪으면서 어떤 것이 과연
환자 당사자를 위한 최선인지에 다시한번 물음표를 가져보지만 아직은 답이 나오질 않는다. 


수년간 몇차례 심장수술을 거친 합병증으로 어느날 새벽 갑작스런 혼수상태에 빠져 응급실에 실려 간 시아버지.
전신마비에 반쯤 허옇게 치껴뜬 눈으로, 그래도 말소리만은 알아듣는,
그렇게 반 식물인간 상태에 놓이길 몇 주, 그래도... 라는 한가닥 희망을 차마 놓치지 않고 있던 가족들에게
담당의사가 드디어 심각한 얼굴로 회의를 소집한다.


오늘밤이 될지 내일밤이 될지... 만약 환자가 꺼져가는 호흡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긴급상황이 생기게 되면
병원측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를 결정해 달라는 거다.
꺼져가는 호흡을 다시 소생하기 위해 CPR (심폐소생술) 을 사용하길 원하는지,
아니면 마지막을 편하고 덜 고통스럽게 보내드리길 원하는지...를 선택하란다.
CPR 로 호흡을 되돌릴 수 있을진 모르지만, 그분 상태로 봐서는 소생술 과정에서 갈비뼈나 기타 장기가
손상을 입게 될 것이고, 소생한다 해도 그로 인해 더욱 심한 장애 상태에 빠질 확률이 아주 크다는 말을 덧붙인다.


'정신만 또렷히 산 채 죽은듯 평생 누워산다는 것은 죽음보다 못한일 이라며 평소 고개를 저었던 그분의 성격을

우리가 누구보다도 잘 알지 않느냐...' 는 의견과
'CPR은 의미가 없다, 고통을 더해드리지 말고 가시는 길이라도 편하게 해드리자.'
'기적이란 흔하지 않지만 전혀 없지는 않다. 희망을 버릴수 없다.'
'그래도 후회없도록 가족으로서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해야 한다'  등으로 각각 나눠졌다.


약속이라도 했듯 바로 그날 밤, 그분은 더 큰 혼수상태에 빠져들었고,
담당의사는 산소호흡기와 수많은 링거바늘들을 하나 둘 다 떼내어, 가족 모두가 힘들게 결정한대로

그렇게 그분 마지막 가는길이 조금이라도 더 편할 수 있도록 '도와'드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그게 정말 '최선의 선택' 이었는지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거다.
단지, 가시는 길이 덜 힘들었길 바라고, 또 그랬으리라 믿을 뿐...

 

 


 

 

이상은 제가 작년인 2011년 8월에 쓴 글입니다.

그런데 존엄사 소송의 한가운데 있던 그런 그녀(Taylor) 가 일년후인 올 10월, 얼마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그간 그녀가 힘들게 싸워 얻은  '죽을권리'를 직접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합병증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임종이었긴 하지만, 그녀 자신이 그처럼 원했던 "good death" 로 잠들었다고.


그녀가 죽기전인 올 6월, 비씨대법원에선 의사도움을 통한 안락사가 인권자유헌장에 의해
보호받는다는 판결을 내렸으며 테일러씨에게 그 안락사를 허용하는 개인 면제를 결국 승인했었지요.
이에 연방정부는 테일러씨에 허용된 면제 및 판결에 항소를 제기했고,
비씨상소법원은 면제를 끝까지 옹호했습니다.


현재 처리중인 세 건의 남은소송이 비씨상소법원에 올려져 있으며 내년인 2013년 3월에 심리가 잡혀있습니다.
의사의 역할, 연장자와 장애자의 권리, 그리고 의사원조 안락사를 허용하는 그밖의 사법권을 다루고 있기에
이 케이스는 캐나다 전역과 해외의 주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 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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